‘슈퍼사이클’에 접어들며 지난해 놀라운 실적을 기록한 조선사들이 올해는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업을 직접 언급하며 이례적인 러브콜을 보낸 만큼 지난해 관련 수주 경험이 있는 한화오션뿐만 아니라 특수선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HD현대중공업도 본격적으로 수주 경쟁에 나서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 함정 MRO 시장 규모는 약 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MRO 사업은 함정의 정비, 수리·개조, 재생 정비 등을 포함하며 언제든지 작전에 투입될 수 있도록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MRO 사업을 통해 신뢰를 쌓을 경우 장기적으로는 미 군함 건조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의 어떤 발언이 이슈야?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MRO) 분야에 있어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존과 같은 상선 뿐 아니라 함정 관련 사업에서도 양국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 의회도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을 발의하며 미 조선업 재건을 위한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국내 기업인 중 유이하게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돼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김 부회장은 취임식 부대 행사에도 참석해 트럼프 2기의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크 루비오 국무부 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 등에게 한화오션의 사업역량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WOT 분석: ①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강점은 뭐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풍부한 특수선 건조 경험을 바탕으로 미 해군 MRO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양사는 한국 해군의 함정을 대부분 생산한 것은 물론 해외 함정 건조 계약도 꾸준히 체결하며 수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당장 HD현대중공업은 이달 초 페루에 수출하는 함정 3종(호위함·원해경비함·상륙함) 4척에 대해 건조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사업은 총 6406억 원 규모로 중남미 방산 수출 중 역대 최대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에서 초계함 2척과 호위함 6척을 수주한 실적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8척의 해외 함정을 수주한 바 있습니다.
한화오션 역시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 수상함 7척, 잠수함 5척 등 12척의 함정을 수출한 실적이 있습니다. 미 해군 MRO 사업에서는 HD현대중공업보다도 한 발 앞섭니다. 지난해 8월 4만 톤급 군수지원함 ‘윌리 쉬라’의 정비 사업을 수주했습니다. 해당 함정은 현재 정비 및 검사의 후반 단계에 있으며 1분기 내로 정비를 완료해 미국으로 인도할 예정입니다. 이어 수주한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급유함 ‘유콘’의 정기 수리 사업도 상반기 내로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SWOT 분석: ②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약점은 뭐야?
조선업계는 상선 분야에서 호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조선소가 3~4년치 도크가 꽉 차 있는 상황입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미 함정 MRO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추가 공간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한화오션은 수주가 더 늘어날 경우 거제 옥포 조선소 뿐만 아니라 인근 조선소 시설 활용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24일 회사는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열고 “기존 신조 함정 건조 시설이 침해되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만약 추가로 필요하다면 경남 인근 중소 조선소의 협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사업에 필요한 자격인 미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먼저 체결했지만 지난해 도크 부족으로 인해 MRO 입찰에 아예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회사는 올해 초반에 두 개 프로젝트가 제한 경쟁으로 발주됐지만 울산 도크 부족으로 이번 입찰에는 불참했습니다. 다만 앞으로 HD현대중공업은 최근 대형 함정들을 잇따라 건조하고 인도하면서 도크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는 입장인 만큼 올해는 다른 모습을 보일 전망입니다.
이외에도 양사는 미국 현지 투자에도 적극적입니다. 한화오션은 이미 필리조선소를 기반으로 현지 생산력을 확보했으며 HD현대중공업도 미국 투자 가능성을 검토 중입니다.
SWOT 분석: ③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기회는 뭐야?
가장 큰 기회는 올해 미 해군 MRO 사업 발주량이 10척 수준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입니다. 현재 미국 수륙양륙함 32척 중 절반이 훈련 및 작전 투입이 불가능한 상태로 추가 발주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양사도 올해는 적극적으로 수주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한화오션은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지난해 수행한 미군 해군 2척에 이어 올해도 활발하게 MRO 함정을 증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올해 5~6척을 수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예상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올해 2~3척 이상의 MRO 사업을 수주한다는 목표를 밝혔습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현재 미국 MRO 발주 일정, 수익성 등을 종합 분석하면서 첫 MRO 사업 진입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회사는 올해 특수선사업부의 수주 목표도 전년 대비 50% 이상 늘린 15억 6700만 달러로 설정한 바 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양사는 비전투함 MRO에 집중하고 추후 진입 장벽이 높은 전투함 시장 개척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SWOT 분석: ④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위협은 뭐야?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과격한 경쟁 구도가 미국 MRO 사업에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두 기업은 맞소송과 갈등을 벌인 지난해 호주 정부의 10조 원 규모 수상함 사업의 최종 수주전에 탈락한 바 있습니다. 반면 독일과 일본의 경쟁 기업들은 정부와 ‘원팀’을 이뤄 총력을 다한 것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에서 갈등이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대중공업과 개념설계를 맡은 한화오션은 선도함 수주를 놓고 경쟁 중인 상황입니다. 기존대로라면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이 선도함 건조를 맡아야 하지만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기밀 유출 문제를 제기하며 경쟁입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기업이 협력하지 못할 경우 해외 함정 수출 시장은 물론 미국 MRO 사업에서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올해 실적 전망은 어때?
상선은 물론 미 함정 MRO를 통해 특수선 분야의 역할도 커지며 내년 양사의 실적은 한 층 더 좋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4조 5865억 원의 매출과 7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HD현대중공업은 올해는 매출 16조 원, 영업이익은 두배 가까이 늘어난 1조 2219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한화오션 역시 작년 10조 3000억 원의 매출이 내년에는 11조 5000억 원으로, 영업이익은 1705억 원에서 5754억 원으로 3배 넘게 커질 전망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