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전쟁을 통해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자 아시아 주요 증시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전망되는 상황에서 중국에 집중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던 1기 행정부와 달리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는 2기가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경고 속에 3일 한국 증시도 파랗게 질렸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2.52%, 코스닥지수는 3.36% 각각 빠졌다. 특히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8706억 원어치를 내던졌고 기관 역시 3734억 원을 팔아치웠다. 개인이 1조 1270억 원을 사들였지만 지수 방어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닛케이(-2.66%), 대만 자취엔(-3.53%) 등 아시아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도 전 거래일보다 14.5원 오른 1467.2원에 거래를 마쳤다.
대표 수출 업종인 반도체(-4.97%)를 비롯해 2차전지(-5.58%), 자동차(-3.58%)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특히 캐나다와 멕시코에 공급망을 구축한 LG에너지솔루션과 기아는 각각 4.40%, 5.78% 하락하며 관세 충격을 그대로 흡수했다. 반면 카카오는 9.00% 상승하는 등 딥시크에 이어 관세 수혜까지 볼 것으로 기대되는 소프트웨어 업종은 강세를 보였다.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반사이익 기대감에 현대비앤지스틸(6.25%), 유니온(27.27%) 등 희토류 관련 업종도 상승했다. 이날 코스피 상장 종목의 85.8%에 달하는 825개가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간) 이달 4일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는 기존 관세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간 ‘관세 무기화’를 공언해온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처음으로 미국의 1~3위 교역국에 관세 부과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에 캐나다와 멕시코는 즉시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맞불을 놓았고 중국도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에도 곧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무역 전쟁을 불사할 뜻을 거듭 강조했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관세 부과가 2018년 3월 관세 부과 때와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3월 한 달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69%, 나스닥지수는 2.88% 하락했고 코스피지수는 0.76% 오르는 데 그쳤다. 이후 외국인의 이탈이 커지면서 2018년 1월 2589.19까지 올랐던 코스피지수는 같은 해 10월 1996.05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한편 집권 2기가 시작된 올해 코스피지수는 연초 이후 추세적 반등세를 보이다 트럼프 취임 직후부터 줄곧 하락세를 걷고 있다. 특히 관세 부과 후 시차를 두고 지수가 빠졌던 1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예상보다 관세 부과 시기가 앞당겨졌고 폭도 커 투자심리가 빠르게 경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저금리 시대였던 2018년보다 금리 수준이 높은 것도 큰 차이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최대 교역국을 중심으로 25%의 관세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며 “그간 위협용으로만 여긴 카드가 현실화된 것으로 물가 부담마저 커 시장이 더 크게 반응한 것”이라고 짚었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도 “올 4월은 돼야 보편 관세를 시행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더 빠르게 관세를 부과한 데다 중국뿐 아니라 우방국까지도 영향권인 상황”이라며 “캐나다와 멕시코에 공급망을 깔아놓은 우리는 1기 때보다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변동성 확대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철강·자동차 등 품목을 집어서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 영향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며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율을) 줄일 수도 있는데 현재 이를 주도할 컨트롤타워마저 부재해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향후 증시는 관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업종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김 대표는 “일단 (정책 발표를) 강하게 한 후 추후 협상을 진행하는 트럼프의 특성상 3월까지 세부적인 관세 수준에 따라 시장도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며 “당분간은 관세 영향이 적은 내수주나 엔터주 등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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