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전 세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는 일단 유예됐지만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전문가들이 “트럼프가 적어도 4월까지 관세의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주요 국가들을 압박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한국도 언제든 공격 대상에 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4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구체적인 무역정책은 4월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며 “무역전쟁 그 자체가 트럼프의 목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 등 정부 부처에 “미국이 무역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해 보고하라”고 요구한 바 있으며 이 보고서의 제출 기한은 4월 1일이다. 4월까지는 관세를 무기로 벼랑 끝 협상을 이어가며 마약과의 전쟁 등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 전문가들은 고율의 일반 관세가 미국 경제에도 독이 된다고 보고 있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던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미국 대외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라며 “여기에 갑자기 고율의 관세를 매기면 인플레이션은 물론 미국 내 산업 혼란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1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에 ‘멍청한 전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캐나다·멕시코·중국은 지난해 미국의 1~3위 수입국이었다. 지난해 1~11월 누적 기준 미국이 이 세 나라로부터 수입한 상품의 금액은 1조 2453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42%에 달했다. 일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수입 물가가 급등해 소비자물가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전 본부장은 이 같은 무리한 카드를 밀어붙이는 트럼프식 ‘공포 전략’이 먹혀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모두가 관세 부과 예고는 허풍이고 이후 협상에 돌입할 것이라고 봤는데 1일 실제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냈다”며 “이후 정말 관세를 발효할지도 모르겠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면서 양보를 이끌어냈다. 협상 전문가 트럼프의 면모가 부각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일방적으로 마무리된 멕시코·캐나다의 협상과 달리 중국·유럽연합(EU)과의 협상은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직 요구 사항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데다 중극과 EU 내부의 정치적 구도가 트럼프의 요구 조건을 쉽게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사실상 항구적 정상 무역 관계 지위를 철회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며 “중국이 이 같은 조치에 쉽게 굴종하는 식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전 외교부 차관 역시 “캐나다와 멕시코와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관세 부과 조치를 취소한 것이 아니라 30일 유예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칼을 빼들지도 집어넣지도 않은 상황을 유지해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양국이 이번에 약속한 국경지역 군대 배치와 마약 대응 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질 경우 언제든 다시 관세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을 겨냥한 트럼프 정부의 요구 사항은 4월 이후 구체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실제 관세 부과 조치는 미국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품목과 세율을 면밀하게 조정할 것”이라며 “그 방안이 정리돼야 트럼프 정부의 무역정책이 본격화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차관도 “미국이 정말로 중장기적으로 부과할 관세 목록은 4월 이후에 나올 것”이라고 부연했다.
미국 측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전 본부장은 한국과의 협력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가 막대하다는 점과 에너지·AI·방산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강조해 한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격을 최소화하자는 내용이다. 그는 “한미 협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며 “기업 간 협력과 국가 간 협력 모두를 포괄하는 패키지 딜을 꾸려 트럼프 행정부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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