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 호령에 나서고 있다. 특히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 인수합병(M&A)과 현지 기업과 제휴로 시장 경쟁력을 강화한 데 이어 14억 인구대국 인도 공략에 집중해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글로벌 가전·정보기기 시장이 수요 둔화로 성장이 정체되는 가운데 AI 기능을 갖춘 의료기기로 신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 의료기기사업부와 삼성메디슨 등 주요 삼성 의료기기 계열사들이 지난달 말 인도에서 전략회의를 열었다. 유규태 삼성메디슨 대표이사를 비롯해 주요 법인 임원과 현지 직원들이 총출동해 올해 AI 의료기기 기술 로드맵과 사업 계획 등을 논의했다.
삼성이 올해 의료기기 전략회의 장소로 인도를 택한 건 빠른 시장 성장 속도에 발맞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인도 의료기기 산업 규모는 2022년 110억 달러에서 2030년 500억 달러(약 72조 원)까지 5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급 진단·영상 기기를 중심으로 인도의 의료기기 산업 수입 의존도는 75%에 달한다. 연구개발(R&D) 비용이 미국과 유럽 대비 절반 가까이 저렴하고 영어에 능통한 인력이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의료기기 사업에서 글로벌 진출 범위를 활발하게 늘려가고 있다. 삼성메디슨은 지난해 10월 태국 최대 민간 헬스케어 그룹인 방콕두짓메디컬서비스(BDMS)와 전략적 협업 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BDMS는 태국 전역과 캄보디아에 걸쳐 59개 사립병원과 8727병상을 보유한 전 세계 시가총액 기준 상위 5대 헬스케어 기업이다. 최근에는 프랑스 보건의료 분야 공공조달 기관인 유니하로부터 350억 원 규모의 초음파 진단기기 주문을 수주했다. 프랑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유니하는 전체 공공병원 약 45%에 이르는 1347개 회원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은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 시절인 2010년 바이오·배터리 등과 함께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선정돼 집중 투자를 받았으나 삼성메디슨 인수 이후 10년 동안 세 차례 연간 적자를 기록하며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의료기기 사업의 중심축에 AI가 도입되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AI 역량을 의료기기 사업에 접목해 신사업 기회를 발굴할 기회가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삼성이 지난해 5월 프랑스 AI 의료기기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은 지난해 9월 성장 키워드 4개 중 하나로 ‘메드테크(의료기기와 기술 결합)’를 제시하기도 했다.
삼성이 벌이는 기존 사업과 연계할 부분도 많다. 삼성전자는 삼성 푸드플러스 등 AI 기반 건강관리 서비스를 가전 내 주요 솔루션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수한 휴머노이드 로봇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현재 복강경 수술 보조로봇 등을 비롯해 의료용 로봇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 의료기기 사업의 새판 짜기가 성공하면 삼성메디슨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 계열사와 함께 신수종 사업의 양대 축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메디슨은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4322억 원, 영업이익은 698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 15억 원의 영업 적자를 내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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