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부당 합병·분식회계 혐의 수사를 주도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재판에서 1·2심 모두 무죄가 나온 데 대해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나타냈다. 검찰은 최근 삼성전자가 경영적인 어려움에 빠지고 이 원장까지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인 상황에서도 기계적인 상고 절차를 밟고 나섰다.
이 원장은 6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활성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이 회장 항소심 결과를 거론하며 “판결과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공소를 제기했던 사람으로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전 직장(검찰) 얘기를 할 경우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입장 표명 등을) 삼가왔다”며 “(내가) 기소 결정을 하고 논리를 만들고 근거를 작성한 입장인데 이런 것들이 결국 법원을 설득할 만큼 단단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이달 3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4명에 대해 1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당시 이 회장을 직접 기소한 인물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였던 이 원장이었다.
이 원장이 이 회장 재판 결과에 관해 공식적인 사과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2월 이 회장의 1심 선고 때만 해도 “국제경제에서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그룹의 위상에 비춰서 이번 절차가 소위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자신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이 원장은 “이제 지위가 달라진 만큼 사법부에서 진행하는 재판이나 공소 유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며 말을 아꼈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이 원장의 이번 사과가 이 회장에 대한 상고를 자제하라는 입장을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검찰에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해석했다. 삼성전자가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 부담으로 인공지능(AI)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최근 실적까지 악화한 점을 고려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다. 나아가 사실관계를 다루는 1·2심과 달리 3심은 법률 적용과 법리 해석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서만 심리하기 때문에 하급심 결과가 뒤집히기 힘들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실제 이 원장은 이날 후배 검사들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3~4년 전 이미 (검찰을) 떠났는데 내가 수행했어야 할 공판 업무를 수행한 후배 법조인들이 최초 설계 과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사과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이 새롭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 국민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응원할 것이고 지원할 부분이 있다면 금감원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런 상황에서도 형사상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대법원 상고를 위한 절차를 시작한 것이다. 결과를 존중해야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이 회장 사건에 대한 검찰의 상고 기한은 이달 10일까지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이 이 회장 사건을 계기로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의 필요성이 더 확실해졌다면서 책임 회피성 발언을 내놓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사법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부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까지 법 문헌상으로는 주주 보호 가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물적 분할, 합병 등 주주가치 보호 실패 사례를 막기 위해 자본시장법 개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합병 등 자본거래에 한정해 상장사들이 일반 주주 이익을 보호하게끔 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상태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박호현 기자 greenlight@sedaily.com,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