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업계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미국 대표지수 상품의 수수료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자 1위인 삼성자산운용이 하루 만에 이보다 더 낮은 총보수를 제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해외투자 ETF가 시장 성장을 이끄는 상황에서 해당 상품 수수료를 둘러싼 선두 업체 간 출혈 경쟁이 본격화되자 재무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은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7일 삼성운용은 해외 주식 ETF인 ‘KODEX 미국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KODEX 미국나스닥100’의 총보수를 기존 0.0099%에서 0.0062%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기획재정부의 세법 개정안 입법 예고로 분배금을 자동으로 재투자하는 해외 주식형 토털리턴(TR) ETF 시장이 사실상 폐지된 데 따라 투자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혜택을 주기로 했다는 게 수수료 인하의 표면적인 이유다.
삼성운용에 따르면 KODEX 미국S&P500은 지난해 44.31% 수익률을 기록해 동종 ETF 중 1위에 올랐다. 순자산총액도 해당 기간 417%나 늘었다. KODEX 미국나스닥100 역시 지난해 45.94% 수익률을 거두고 순자산을 196% 늘렸다.
박명제 삼성운용 ETF사업부문장은 “기존 투자자들의 비용 부담은 낮추고 배당금은 더 주기 위해 총보수를 낮췄다”며 “아직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 연금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 업계는 미래에셋운용이 전날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수수료를 연 0.07%에서 10분의 1 수준인 0.0068%로 대폭 낮추자 삼성운용이 같은 유형의 상품으로 단 하루 만에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했다. 삼성운용의 수수료가 미래에셋운용보다 0.0006%포인트 더 낮다는 점에서다. 일각에서는 박 부문장이 수수료 인하와 함께 “배당금을 더 준다”고 표현한 부분을 두고 미래에셋운용을 다분히 압박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미래에셋운용이 6일 총보수를 내린 두 ETF는 공교롭게도 올 들어 분배금을 대폭 줄인 상품들이다. 앞서 미래에셋운용은 지난달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분기 분배금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35.71%, 66.67% 적은 45원, 70원으로 안내했다. 상당수 투자자들은 이에 대해 “사전 공지도 없었다”며 “수수료 인하로 줄어드는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미리 배당금부터 줄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삼성운용이 최저 수수료와 배당금을 함께 언급한 점을 업계가 전략적 발언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미래에셋운용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분배금은 소득세법상 유보 가능한 이익을 제외하고 해당 연도 내에 투자자에게 모두 분배하도록 돼 있다”며 “외국납부세액 과세 체계가 정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4월 말 이후 초과수익률 부분을 적극 반영해 분배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운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수수료를 낮추자 미래에셋운용도 즉각 대응 전략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운용이 조만간 관련 상품들에 대한 수수료를 한 차례 더 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 간 수수료 기 싸움이 재점화하자 대응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운용사들은 벌써부터 위축된 분위기다. 미국 투자를 중심으로 올해 ETF 시장이 200조 원 돌파를 앞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던 각 사의 전략에 자칫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탓이다. 시장이 양강 운용사 중심으로 다시 한번 재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삼성운용이 ‘KODEX 미국S&P500TR’ 등 미국 대표지수 투자 ETF 4종의 수수료를 연 0.05%에서 0.0099%로, 미래에셋운용이 ‘TIGER CD1년금리액티브’의 수수료를 연 0.05%에서 0.0098%로 각각 내리자 한화·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 등 중소형사들까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수료 인하 대열에 뛰어든 바 있다.
중형 운용사인 A사 관계자는 “ETF 시장 경쟁이 너무 과열돼 규모가 작은 회사는 따라가기가 버겁다”며 “당장 실탄이 없어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 간 싸움을 지켜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형급 운용사인 B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운용이 수수료를 한 번 더 내리면 시장 판도가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해질 것”이라며 “ETF 인재 모시기도 힘든 판에 대형사들이 수수료 출혈 경쟁까지 펼치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이정훈 기자 enoug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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