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 철강에 이어 자동차·반도체·의약품에 고율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대응 카드를 놓고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개별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위기 수준이 아닌 만큼 민관정 협의체나 컨트롤타워가 세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의장이 이끄는 대미 경제사절단은 19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국내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사절단은 19~20일 미 워싱턴DC에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만나 관세를 비롯한 양국 통상 정책에 대해 논의하고 대미 투자 협력을 위한 액션플랜을 소개할 계획이다. 사절단 내에 반도체·자동차·철강·에너지 등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의 산업 대표들이 포함돼 관세에 대응할 다양한 협상 카드가 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시급하게 관세 부과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건 철강과 알루미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14일부터 모든 국가에 예외 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호주의 관세 면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국가마다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1기 당시 25%의 관세를 피하는 대신 대미 수출량을 연 263만 톤으로 줄인 바 있다. 철강 업계는 관세 부과 시 쿼터제가 사라지는 이점도 있기 때문에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미 현지에 생산 거점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 부문은 관세 부과일이 4월 2일로 언급됐다. 각 업체는 관세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정부 협상을 기대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는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가동·건설 중인데 추가 투자가 가능하다. 제약 업계에서도 셀트리온이 현지 완제 의약품 생산을 확대하고 SK바이오팜이 위탁 생산 업체를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차별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을 늘리는 카드가 부상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 정부도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통해 관세 폭탄을 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상외교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인 만큼 민관정이 짜임새 있게 한 팀을 구성해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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