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주도권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각자 수백조 원을 들여 관련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자체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형언어모델(LLM)과 범용AI(AGI) 등 차세대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국가AI위원회는 20일 서울 중구 회의실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3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AI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통한 국가AI역량 강화방안’ 등 3개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국가AI위원회는 지난해 9월 출범해 AI 정책방향을 정하고 2027년까지 최대 2조 5000억 원, 그래픽처리장치(GPU) 3만 장 규모의 인프라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이날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추진과 인프라 활용 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중국 AI스타트업 딥시크의 위협과 함께 미국이 720조 원, EU가 300조 원 규모의 대형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면서 우리 정부도 국가AI컴퓨팅센터 관련 후속조치를 서두르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컴퓨팅 인프라 확충을 통한 국가AI역량 강화방안’은 민간이 국가AI컴퓨팅센터를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LLM과 AGI 등 차세대 AI모델을 개발하도록 집중 지원하는 등 인프라 활용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과기정통부는 우선 GPU 자원을 집중해 새로운 LLM을 개발하는 ‘월드 베스트 LLM’ 사업을 추진한다. 오픈AI의 GPT, 구글의 제미나이 등 빅테크들의 LLM에 맞서 삼성전자, 네이버, SK텔레콤, LG AI연구원 등 국내 기업들도 자체 모델을 개발하고 있지만 지금의 각자도생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AI정예팀’을 선발하고 LLM 개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조만간 사업 기획과 예비타당성 조사 추진을 통해 예산 규모 등을 구체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LLM에 이은 차세대 AI모델로 꼽히는 AGI 개발을 위해 7년간 1조 원가량을 투입하는 신규 사업도 최근 예타 착수를 통해 추진한다.
인재 양성도 강화한다. 과기정통부는 기업과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해 AI 응용 분야 인재를 집중 육성하는 ‘AX(AI 전환) 대학원’ 신설을 추진한다. 국가AI컴퓨팅센터를 활용해 다양한 AX 서비스를 발굴하고 기업 연구자가 교원을 겸직해 학생들의 AI 실전 경험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과기정통부는 또 ‘흑백요리사’처럼 AI 인재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실력을 겨루고 AI 석학들이 이를 평가하는 경진대회 ‘글로벌 AI 챌린지’를 개최하기로 했다. 챌린지 입상자에게는 기업 채용, 월드 베스트 LLM 사업 참여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지난해 미국 뉴욕대에 개소한 공동연구소 ‘글로벌AI프론티어랩’은 프랑스 등 다른 국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맞춤형 치료‧건강관리 서비스, 창작 활동 보조 및 영상 편집 AI 서비스, 대국민 법률 정보제공‧서류작성 지원 및 전문가 업무보조 AI 서비스 등 분야별 AI 활용을 위한 선도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국회 협의를 통해 AI를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제지원을 늘리고 비수도권에 항만배후단지 등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6년 상반기까지 고성능 GPU 1만 8000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국가AI컴퓨팅센터의 국산 AI반도체 비중을 50%까지 늘린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7년까지 AI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사) 5곳 육성을 목표로 AI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는 ‘AI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AI 활용 확산방안’을 추진한다. 산업 분야별 특화 AI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모빌리티, 로보틱스 등 분야 수요기업들과 매칭해준다. 데이터 학습 지원을 위한 ‘데이터 생성 랩’을 구축한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는 제조 AI 전문기업 100개사를 지정해 최대 100억 원의 정책 자금과 인력 양성을 지원한다. 2027년까지 12개 업종별 200개의 제조 AI 과제를 수행하는 자율제조 선도 프로젝트도 확대해나간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데이터 개방을 위한 규제 완화를 맡는다. 그간 자율주행 분야에만 허용됐던 원본 영상 등 비정형 원본데이터를 여러 분야에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AI 연구에 필요한 기간동안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활용특례를 마련하고 범죄 예방 등 공익적 AI개발을 위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확대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글로벌 AI환경이 급변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민관이 힘을 모아 국가 AI역량 강화를 빠르게 추진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라며 “정부는 빠른 시일내에 세계 최고수준의 AI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고, AI 핵심인재 양성과 해외 우수인재 유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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