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속세·근로소득세 등 세제개편안 관련 공개 토론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나아가 주제와 형식을 한정 짓지 않고 끝장 토론을 하자고 역제안했다. 사실상 조기 대선 채비에 들어간 여야 정치권이 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될 중도층을 겨냥한 정책 주도권 잡기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김대식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권 원내대표와의 토론을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 1대1로 무제한 토론하는 것에 동의하고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전날 “뒤에서 거짓말하지 말고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한 데 대한 응답이다.
김 원내수석대변인은 “형식은 자유고 주제도 자유다. 상속세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서 끝장 토론을 제안한다”며 “‘극우내란당’과 같은 막말이나 적대시하는 언어를 빼고는 기꺼이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측은 토론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형식을 두고서는 신경전도 이어갔다. 권 원내대표의 ‘1대1’ 토론 제안에 이 대표는 참석자를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까지 ‘3+3’ 회담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각자의 카운터파트와 함께 대화를 조율해서 정책으로 만들어낼 정책위의장까지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자 권 원내대표는 다시 1대1 토론 원칙을 견지하면서 공을 다시 이 대표에게 넘겼다.
상속제 개편과 관련해 민주당은 중산층 부담 완화가 목적이므로 근로소득세 완화와 함께 상속세 일괄 공제(5억 원→8억 원)와 배우자 공제(5억 원→10억 원)를 합쳐 공제 금액을 18억 원으로 올리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중견·중소기업의 가업상속 부담 완화까지 기대하려면 최고세율(현 50%) 조정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토론을 먼저 제안한 이 대표의 최근 실용주의 행보를 감안할 때 공제 확대와 최고세율 조정 사이에서 ‘빅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토론 의제 또한 권 원내대표가 ‘무제한 토론’을 제안한 만큼 세제개편 외에도 최근 정치권의 최대 화두인 연금 개혁이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등 다양하게 거론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토론과 무관한 ‘조건’이 추가되지만 않는다면 토론의 진의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이처럼 적극적인 정책 대결 의지를 드러내는 데는 탄핵 정국임에도 박빙을 이어가고 있는 양당 지지율 추이와도 관련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42.7%, 민주당은 41.1%로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 중앙여심위 참조).
양당의 지지율이 비등할수록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선택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금 추이로는 민주당이 중도층에서 우세 양상을 보이지만 보다 중도 지지층을 확장해야 향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업과의 접점을 늘리고 보수 진영이 대표했던 ‘감세’ 등의 이슈에 선점 대응하는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파열음도 없지는 않지만 당장 눈앞의 선거부터 승리해야 ‘우클릭’ 정책뿐 아니라 진보 의제까지 지켜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노동계 등 핵심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오히려 정책의 진의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중도층 민심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와야 탄핵이라는 불리한 국면에서도 반전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야당 때리기에만 그칠 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정책 주도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연금 개혁 등 거대 야당의 선제적 의제 설정에 ‘조건’을 붙여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영세 사업장을 찾아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현장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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