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치명적인 질병을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적인 생리학자이자 시스템생물학의 권위자인 데니스 노블 교수가 24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유전자는 생명체의 청사진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진행한 특별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블 교수는 1960년대 세계 최초로 가상 심장을 구현해 현대 심장 전기생리학의 기초를 세운 생리학자다. 유전자(DNA)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넘어 생물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통합적 관점을 제시한 시스템생물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생명체를 세포, 조직, 환경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통찰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날 특별 강연은 노블 교수가 DGIST 의생명공학전공 제1호 초빙 석좌교수로 임용되면서 마련된 자리다. 노블 교수는 이 자리에서 유전자 중심 생물학의 한계를 설명하며 이를 토대로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주요 문제에 대해 철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유전자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치명적인 질병을 예측할 수도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인간 게놈을 해독하면 건강과 질병의 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과학계의 분자생물학 연구는 DNA나 단백질 등 작은 생물의 구성 요소를 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노블 교수가 이끄는 시스템생물학계는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주고받는 ‘상호작용’에 관심을 갖는다. 노블 교수는 강연에서 “유전자만으로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주요 질병을 설명할 수 없다”며 “단순한 유전체 분석이 아닌 다중 규모 생물학을 통해 질병 치료법을 찾는 방식으로 연구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전자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생체 시스템을 고려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곧 ‘자기 계발의 가능성’을 의미한다”며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창의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유전자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 의미와 삶에 대한 그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노블 교수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신념은 버려야 한다”며 “이러한 생각은 이기적인 경제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신 인류는 상호 연결된 존재이며 협력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가치관을 강조해야 한다”며 “인간이 더 협력적으로 행동한다면 사회는 더욱 연결될 것이며 이는 긴급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많은 선진국들이 직면한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 간의 균형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이윤은 사회에 기여한 실질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돼야 하며 환경 및 건강에 대한 피해 비용도 포함해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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