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에너지 3법(전력망확충법·고준위방폐장법·해상풍력특별법)’이 힘겹게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입법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망확충법의 경우 안정적인 전력망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지만 ‘전자파 포비아’를 겪는 지역 주민들의 소송전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찮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역시 관련 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부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입지 선정, 유치 지역 보상 등과 같은 민감한 사항들을 모두 정부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떠넘기면서 향후 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8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진행 중인 주요 전력망 사업 31건 중 12건은 지역사회의 반발과 소송전에 휘말려 당초 계획보다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배곧신도시를 잇는 345㎸ 송전선로 매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전력공사는 2020년 공사를 시작해 2028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했지만 시흥시가 주민 여론에 떠밀려 한전과 소송전을 벌이느라 공사는 3년 가까이 표류했다. 부천 상동호수공원 내부에 154㎸ 변전소를 건설하려는 당국의 계획도 주민 반대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반년 가까이 표류하던 경기 하남시 동서울변전소의 경우 지난해 한전이 행정심판에서 승소한 덕에 3월에나 첫 삽을 뜨게 됐다.
업계에서는 전력망특별법이 통과됐지만 고질적 문제인 공사 지연이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주민들의 반발이 여전한 상황에서 전자파에 대한 비과학적인 반감이 해소되지 않는 한 전력망 확충 사업의 만성적인 지연 현상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지역 의견 수렴 절차별로 기한이 명시되고 각종 인허가 절차가 간소화돼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지역 주민의 반대로 소송에 휘말리면 공사가 지연된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의 적용 대상이 345㎸ 이상인 설비에만 적용된다는 점 또한 한계다. 국회 관계자는 “동·서해 축의 고압 송전망 외에 154㎸ 이하의 지역 전력망에서는 기존의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며 “중저전압 전력망에서도 주민 수용성을 높일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번에 통과된 특별법은 206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 최종 처분 시설 운영을 개시하라고 못 박았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사용 후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문제여서 부지 선정 및 건설 과정에서 격렬한 사회적 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정부는 1978년 고리 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후 울진·영광·부안·안면도·굴업도 등에서 총 아홉 차례에 걸쳐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추진했지만 지역사회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원전 운영국에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쉽지 않은 과제다. 전 세계에서 고준위 방폐장이 만들어진 곳은 핀란드의 ‘온칼로’ 한 곳뿐이다.
해상풍력특별법도 발전지구 선정 과정에서 일부 지방자치단제가 행정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전남 신안군 고위 관계자는 “어렵사리 집적화단지 지정을 준비했는데 또다시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해상풍력특별법상 발전지구로 지정받기 위한 사실상 중복 심사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정부의 사업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기존 서류와 중복되지 않는 평가 요소만 제출하게 하는 등 심사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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