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발언에 국내 증시가 또다시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이달 3일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 발작’으로 코스피가 2.52% 떨어진 지 약 한 달 만이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실적 발표 후 급락하면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외국인의 이탈이 극대화했다. 외국인은 2월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7개월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고 이날 하루에만 1조 5576억 원을 내다팔며 2022년 1월 27일(1조 7142억 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대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이날 각각 3.39%, 3.49% 급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하루에만 코스피에서 73조 3297억 원, 코스닥에서 13조 4900억 원 등 약 87조 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2조 넘게 팔아치우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 현물 1조 5000억 원, 코스피200 선물 1조 6000억 원 등 현·선물 합산 3조 원 넘게 순매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관련 일정 발언을 번복하면서 선반영된 것으로 여겨져왔던 관세 우려가 재차 불거진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조치가 4월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가 발언 오류였다며 시행일을 3월 4일로 정정했다. 주식시장이 무너지자 비트코인 가격도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8만 달러 선 아래로 고꾸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비디아가 전날 장 마감 후 발표한 분기 실적에서 향후 이익 전망치가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왔고 반도체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이에 삼성전자(005930)(-3.20%), SK하이닉스(000660)(-4.52%), 한미반도체(042700)(-6.50%) 등 대형 반도체주들이 줄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외국인은 지난해 8월부터 이달까지 7개월째 코스피 엑소더스(대탈출)를 진행 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2007년 6월 이후 11개월 연속 순매도한 이래 최장 기록이다. 외국인은 7개월 동안 총 27조 4405억 원어치를 팔아치웠는데, 이 중 삼성전자를 순매도한 금액만 23조 2779억 원에 달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도 각각 1조 5805억 원, 1조 765억 원 팔았다. 매도액의 94.5%가 세 기업에 집중된 셈이다.
반면 순매수액 상위 종목은 SK하이닉스(1조 5934억 원), 네이버(NAVER(035420)·1조 3319억 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7435억 원)로 총금액이 3조 원에 못 미쳤다.
투자 전문가들은 ‘셀 코리아’의 가장 큰 원인이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라고 입을 모았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외국인 탈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기업들의 이익 모멘텀(상승 여력)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진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잘 만들어 중국 굴기를 따돌릴 수 있냐, 고관세가 붙어도 현대차가 차를 잘 팔 수 있냐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 발달한 일본은 관세정책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지만 우리나라는 주요 수출품이 첨단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어 미국 우선주의 타격을 사실상 가장 크게 받고 있다”고 짚었다.
올 들어 연기금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코스피가 반짝 상승한 것도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보다는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진 데 따른 저평가 매력이 부각됐기 때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연기금은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이날까지 40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렬을 이어오고 있다. 역대 최장 기록으로 이 기간 순매수한 금액만 3조 4186억 원에 달한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기금의 매수도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역사적 저점인 0.8에 다다랐다는 인식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업의 시가총액과 장부가를 비교한 수치인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매각했을 때보다 주가가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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