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양대 기업이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에 따른 추가적인 납세 부담을 지게 됐다. 관세 전쟁의 포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기업의 우려했던 세부담 가중이 현실화하고 있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날 제출한 감사보고서에서 10억 원의 글로벌 최저한세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달 4300억 원의 글로벌 최저한세를 베트남 과세 당국에 납부한다고 공시한 데 이어 국내 기업의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이 확인된 두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 측은 “2024년부터 시행되는 (디지털세) 필라2(글로벌 최저한세) 법률에 따라 각 구성기업이 속해 있는 관할 국가별 유효세율과 최저한세율 15%의 차액에 대해 추가 세액을 납부해야 한다”며 “자체 계산한 결과 폴란드 및 홍콩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종속회사를 제외한 연결실체 내의 모든 기업은 해당 국가의 유효세율이 15%를 초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해 SK하이닉스는 폴란드와 홍콩의 자회사들이 15% 이하의 세율을 적용받고 있어 최저한세율과의 차액분인 10억 2600만 원을 더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는 “외부 전문가와의 교차 검증을 완료했다”고 부연했다. 이번에 인식한 글로벌 최저한세는 2026년 6월까지 한국 국세청에 납부될 전망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폴란드에 R&D 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홍콩에는 메모리반도체 판매법인은 물론 해외투자를 위한 벤처투자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해부터 시행한 글로벌 최저한세의 적용 대상은 연결 매출액 7억 5000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자동차·이차전지 등 주요 산업의 수출 기업 200여 곳이 글로벌 최저한세의 사정권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결산을 끝낸 기업들이 속속 후속 공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최저한세 부과는 △소득산입규칙(IIR) △소득산입보완규칙(UTPR) △적격소재지추가세(QDMTT) 등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중 지난해 시행된 소득산입규칙은 해외 자회사가 저율과세되는 경우 모회사가 추가 세액을 모회사 소재지국에 납부하는 방식이다. 즉, 한국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 홍콩 등 실효세율이 15%에 미달하는 국가에 진출했을 경우 한국 국세청에 차액을 내는 구조다.
이보다 1년 늦게 시행되는 소득산입보완규칙은 모회사 소재지국이 소득산입규칙을 도입하지 않는 경우 해외 자회사들이 자회사 소재지국에 납부하는 방식이다. 아직 소득산입규칙을 도입하지 않은 미국 기업인 구글·애플 등이 소득산입보완규칙을 도입한 저율과세 국가에 진출했다면 해당 국가에 추가 납세 의무를 지게 되는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최저한세 무력화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도입한 적격소재국추가세는 소득산입규칙·소득산입보완규칙보다 우선 순위에 있다. 3가지 부과 방식이 경합한다면 추가세액에 대한 과세권을 모회사 소재지국이 아니라 자회사 소재지국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4300억 원의 글로벌 최저한세를 베트남에 과세 당국에 납부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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