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최근 급격히 악화하면서 올 들어 단기차입금을 마련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기업 중 3분의 1가량이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는데 미중 무역 갈등 격화로 올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들의 단기차입금 증가 결정 공시 건수는 올해 들어(1월 2일~3월 4일 기준) 3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8건 대비 25.0% 증가했다. 2023년 같은 기간 30건과 비교해서도 16.7% 늘어난 수치다. 특히 코스피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기차입이 크게 증가했다. 올해 코스피 기업의 관련 공시는 17건으로 지난해 9건에 비해 2배가량 늘었으며 코스닥 기업은 지난해 18건에서 올해 19건으로 대동소이했다.
기업들의 단기차입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화된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돈벌이 사정이 어려워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까지 잠정·확정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기업 2159개사 중 771개(35.7%) 기업이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중 전년 대비 적자 전환한 기업이 163개사에 달했으며 434개 기업이 전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손실을 봤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CJ CGV가 기존 차입금을 상환하고 운영자금에 쓰기 위해 600억 원어치의 기업어음(CP)을 발행했고 한세엠케이도 채무 상환을 위해 지난달 2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만기 1년 이하의 사모사채 340억 원을 빌렸다. CJ CGV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4.8% 증가한 759억 원으로 집계됐으나 당기순손실은 17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 폭이 504억 원 확대됐다. 한세엠케이는 지난해 순손실이 384억 원으로 전년 63억 원 대비 497.6% 폭증했다. 이 밖에 241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한 AK홀딩스도 1000억 원의 단기자금을 차입했으며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고려아연은 단기사채 발행 한도를 1조 원 늘리기로 지난달 5일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문제는 올해도 경영 환경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고관세 정책으로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 전망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고환율 상황이 계속돼 기업들이 이중고에 빠지고 있다”며 “계엄 사태 이후 제대로 된 내수 진작책이 나오기 어려워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