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기술력과 자질이 있습니다. 한국의 훌륭한 기술과 서비스가 해외 시장에서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마노지 페르난도 누멘벤처스 창업자이자 파트너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투자자다. 과거 페르난도 파트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4년 동안 기업가정신을 강의하면서 여러 예비창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창업자들의 열정은 물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실리콘밸리의 잘 나가는 창업자 못지않게 훌륭해, 투자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35년 창업 경험 바탕 누멘벤처스 설립
페르난도 파트너는 지난 35년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창업자이자 투자자로 활동해 왔다. 총 7번의 창업을 경험했으며,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협업 솔루션 '라이트스케이프'와 스포츠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씨캐스트' 등이 있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총 7번 창업자 혹은 공동창업자로 기업을 설립해 운영해 오면서 3번은 좋은 밸류로 매각에도 성공했다”며 “여러 번 실패한 경험도 있는데, 이 또한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멘벤처스는 지난해 5월 미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설립된 벤처캐피털(VC)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지원기관 '씽크토미(Thinktomi)'를 운영했던 구성원들과 함께 창업했다. 씽크토미는 전 세계 다양한 국가 창업자,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창업 지원과 다양한 비즈니스 교육, 멘토링, 컨설팅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씽크토미는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창업 지원 역할을 해왔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누멘벤처스 구성원들은 미국과 한국에서 창업해 본 경험이 있고, 또 투자를 통해 좋은 성과를 낸 전문가들이 모여있다"면서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최적의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한국에서 씽크토미를 운영하면서 쌓아온 투자 네트워크도 누멘벤처스 펀드 운용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는 씽크토미를 운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스타트업으로 '토도웍스'를 꼽았다. 토도웍스는 일반 휠체어를 전동 휠체어로 만들어주는 의료기기 스타트업이다. 휠체어 사용자들의 일상을 돕는 사회적 역할은 물론 수익성 측면에서도 좋은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토도웍스와 같이 ICT 기술을 활용해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으로서 수익성도 탁월한 스타트업들에 주로 투자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50억 펀드 결성핸 韓 ICT 스타트업 집중 투자
누멘벤처스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전용 펀드 결성도 추진 중이다. 목표하고 있는 펀드 약정액은 50억 원 규모이며, 전액을 초기 창업 단계에 있는 한국 ICT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펀드 조성을 위해 해외 주요 기관들은 물론 한국 기업과 정부기관 등과 출자 협의를 진행 중이다. 펀드는 국내 자금 60%, 해외 자금 40%로 구성할 계획이며, 누멘벤처스 파트너들이 직접 펀드에 자금을 출자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이제 막 펀드 조성을 시작한 단계로, 씽크토미를 운영하며 관계를 맺었던 국내외 기관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늦어도 올 연말까지는 펀드 결성을 마무리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멘벤처스는 이 펀드를 통해 약 8개~12개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각각의 투자 규모는 3~5억 원을 생각하고 있다. 투자 위험도가 높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만큼 수익률 목표는 기업당 최소 50% 이상으로 높게 세웠다. 시드 투자 이후 빠르게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지원해 단기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미국 VC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가치를 한국 VC보다 더욱 높게 평가해 주는 것이 사실"이라며 "단기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 펀드 출자자들의 신뢰를 얻고, 동시에 한국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멘벤처스는 실리콘밸리의 초기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인 '세이프(SAFE)'를 적용해 투자할 계획이다. 세이프는 VC가 투자를 집행할 때 기업가치를 책정하지 않고, 향후 시리즈A 투자 유치 과정에서 확정된 수치에 일정 수준 할인율을 적용해 기업가치를 확정하는 방식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초기 투자를 유치하면서 과도한 지분 희석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VC들도 유망 스타트업 투자를 선점하면서도, 기업가치 책정에 들어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누멘벤처스는 기투자한 스타트업의 후속 투자는 미국 VC로부터 받도록 전략을 세우고 있다. 누멘벤처스는 자사의 주요 파트너들이 해외 주요 투자자 및 기업들과 좋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한국 스타트업들의 해외 투자 유치가 더욱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실리콘밸리 창업 경험을 통해 트위치 등 해외 주요 IT 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한국 스타트업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면 더욱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경영 ‘벤처스튜디오’ 모델 표방…마케팅·영업 적극 지원
누멘벤처스는 투자 이후 단순 재무적투자자(FI)를 넘어 공동창업자에 버금가는 사업적 지원도 이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초기 스타트업들의 경우 경영지원 조직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누멘벤처스에서 마케팅, 영업, 운영, 법무 등의 업무를 대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이러한 방식을 '벤처스튜디오'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유망한 스타트업이라고 보증하면, 외부 로펌이나 회계법인 등이 각종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이 지원에 대한 대가는 해당 스타트업의 지분 등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한국 스타트업들이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경우 기술과 서비스 개발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경우 개발 인력과 마케팅·영업 인력이 비슷한 비율인데 반해, 한국 스타트업들 인력 구성을 보면 개발자가 대부분이고, 마케팅과 영업 인력은 한 두명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페르난도 파트너는 "훌륭한 기술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고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도 기술 개발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