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267250) 수석부회장이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와 만나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상업화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SMR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정 수석부회장이 조선에 이어 원전 사업에서도 미국과 협력을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HD현대의 조선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329180)은 미국 SMR 기업인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미국 현지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정 수석부회장과 게이츠 창업자가 직접 참석했다. 정 수석부회장과 게이츠 창업자는 2023년 3월 서울에서 만나 SMR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2008년 설립한 SMR 개발 회사다. 4세대 원자로인 SMR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 기술을 보유한 업계 선두 기업이다. HD현대중공업뿐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과 다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양 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HD현대의 우수한 설비 생산 기술력과 테라파워의 첨단 SMR 기술을 결합해 나트륨 원자로 공급 능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HD현대는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되는 주기기를 공급하기 위해 최적화된 제조 방안을 연구·도출해 본격적인 상업화에 필요한 제조 기반을 구축할 방침이다.
나트륨 원자로는 테라파워가 개발한 4세대 소듐 냉각 고속로다. 고속 중성자를 핵분열시켜 발생한 열을 액체 나트륨(소듐)으로 냉각해 전기를 생산한다. SMR 중 안전성과 기술의 완성도가 높으며 기존 원자로 대비 핵폐기물 용량이 40%가량 적은 것이 특징이다.
HD현대그룹은 2022년 11월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009540)을 통해 3000만 달러(440억 원)를 투자해 테라파워와 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3월에는 테라파워 등 글로벌 원자력 기업들과 ‘해상원자력에너지협의기구(NEMO)’를 설립했다.
지난해 12월에는 HD현대중공업이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될 원통형 원자로 용기 공급계약을 테라파워와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이 공급하는 원자로 용기는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에 설치할 345㎿ 규모의 첫 번째 나트륨 원자로에 탑재된다. 나트륨 프로젝트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원자력 건설 및 운영 허가를 취득한 뒤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SMR을 차세대 먹거리로 선정한 뒤 적극적으로 기술 개발과 투자에 나서고 있다. 원전 업계는 세계시장이 SMR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 실현과 에너지 안보 확립을 위해 무탄소 전력원인 원전에 대한 수요가 커지지만 대형 원전은 안전과 수용성 등의 문제로 한계를 보이고 있어서다.
글로벌 톱티어 조선 업체인 HD한국조선해양도 SMR 기술을 적용한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모델 개발에 나섰다. 지난달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해양 원자력 서밋’에서 HD한국조선해양은 1만 5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SMR 추진 컨테이너선의 설계 모델을 공개했다.
원광식 HD현대중공업 해양에너지본부장은 “제조업에서 쌓아온 폭넓은 경험과 앞선 기술력이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 기반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번 협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 솔루션의 상업화를 가속화하고 글로벌 SMR 시장에서 새 성장 기회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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