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 일본이 2차전지 소재 공급망을 갖추기 위해 수조 원을 쏟아 붓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책 지원이 전무해 업체 간 경쟁이 성립조차 되지 않습니다."
박재범(사진)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음극재 산업이 미국의 탈중국 정책이 만들어준 기회를 잡으려면 정책 지원 적기를 놓쳐선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수석연구원은 그룹 내 싱크탱크인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 배터리 산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박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음극재 전문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사례에 주목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음극재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있던 일본은 추가 투자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며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일본 기업들은 당시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음극재 생산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현재는 글로벌 10위권에 포함된 기업이 단 한 군데도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무너진 상태다.
박 수석연구원은 “음극재 기술의 중요성을 망각한 일본조차도 뒤늦게나마 배터리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민관 협력으로 10조 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한국은 지원이 전무하다”며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며 중국이 독점하다시피하는 음극재 밸류체인을 내재화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어 현재 한국이 지닌 기술력을 지키기 위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짚었다.
박 수석연구원이 음극재 기업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는 것은 미국이 중국산 원료와 중간재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2024년 예정이었던 중국산 흑연에 대한 해외우려기관(FEOC) 적용을 2026년 말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천연흑연 9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대체할 방법이 없어 친환경차 세액공제 혜택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산 흑연과 음극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선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퓨처엠(003670)은 중국 기업을 제외하고 사실상 고품질의 흑연 음극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 받는다. 전 세계 음극재 시장 점유율 9위를 기록 중인데 10위권 내에 포스코퓨처엠을 제외하곤 전부 중국 기업이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이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에서 흑연 광산에 투자하는 등 중국 외 지역에서 천연흑연을 조달할 수 있는 공급망을 갖췄다. 미국의 규제를 피해 음극재를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포스코퓨처엠을 통한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포스퓨처엠은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공장 가동률이 30%를 밑도는 등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 수석연구원은 “아프리카에서 조달한 흑연으로 음극재를 만들 수 있는 포스코퓨처엠과 사업을 협력하려는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들은 당장 손실이 불가피한 소재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산업용 전기요금 특례 제도와 생산 보조금 등을 통해 기업들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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