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의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시높시스(Synopsys)와 앤시스(Ansys) 간 50조 원 규모의 대형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다만 조건부 승인으로 양사의 시장지배력 강화로 인한 독점 우려를 막기 위해 일부 핵심 자산의 매각을 요구했다. 이번 결정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경쟁 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제시하고 공정위가 이를 수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공정위는 20일 시높시스가 앤시스의 전체 주식(약 350억 달러, 50조 원)을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하되,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소프트웨어 시장과 광학 및 포토닉스 설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각각 앤시스와 시높시스의 자산 일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기업결합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 시높시스와 앤시스 간의 합병으로,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두 기업 모두 국내 주요 기업들에 반도체 및 광학 관련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있어 시장 내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는 이번 합병으로 인해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소프트웨어 시장 △광학 소프트웨어 시장 △포토닉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독과점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실제 이들 시장에서 합병 후 두 회사의 합산 점유율이 크게 높아져 독점적 지위가 공고해질 우려가 있었다.
이에 공정위는 두 회사가 각각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의 경쟁력 있는 제품과 기술인력을 모두 제3자에게 넘길 것을 지시했다. 구체적으로 앤시스는 '레지스터 전송 수준 전력 소비 분석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자사가 보유한 ‘PowerArtist’ 소프트웨어, 특허 등 지식재산권, 기술 로드맵, 연구개발 프로젝트 등의 경영·기술 정보와 노하우, 인력 및 상업계약 일체를 매각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시높시스는 ‘광학 및 포토닉스 설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관련 소프트웨어, 특허, 기술 정보, 인력 등을 모두 매각할 것을 명령받았다. 매각 기한은 합병 완료 후 6개월 이내이며, 특수관계인이 아닌 독립적인 제3자 기업에 넘겨야 한다.
공정위는 이 같은 조치가 향후 독과점으로 인한 소프트웨어 가격 인상이나 거래조건 악화 등을 방지하고 시장 경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반도체 칩과 광학, 포토닉스 설계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데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이번 결정은 공정거래법에 새롭게 도입된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기업이 경쟁 제한 우려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출하면 공정위가 이를 검토하고 조정해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이다. 시높시스와 앤시스는 이번 제도를 통해 직접 자산 매각 방안을 제시했고, 공정위는 이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수정과 보완을 거쳐 최종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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