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먼저 지정한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판단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탄핵소추 사유에 12·3 비상계엄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만큼 헌재가 지금껏 비상계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헌재가 한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볼 경우 윤 대통령 선고와의 직간접적 연결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헌재는 20일 한 총리 탄핵 심판 선고기일을 이달 24일 오전 10시로 지정했다. 지난해 12월 27일 한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지 87일 만이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 방조, 마은혁 등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 총 5가지 사유로 탄핵됐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비상계엄 방조 여부다. 해당 쟁점에 대한 헌재의 판단이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결론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총리 사건에서도 비상계엄 당시 국무회의의 절차적 하자 등 위법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헌재가 한 총리 사건에서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 윤 대통령 사건에서도 유사한 판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또한 윤 대통령 측이 변론 내내 문제를 제기한 ‘수사기관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채택’ 및 ‘소추 사유 중 내란죄 철회’에 관해서도 헌재가 일부 판단을 내릴 여지가 있다.
법조계에서는 한 총리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했다는 의혹 등으로 탄핵소추됐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 탄핵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선고일을 먼저 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 총리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일부 쟁점을 공유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결론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1차적인 협의 과정으로 한 총리 사건을 먼저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 공백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한 총리의 선고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경우 조기 대선이 치러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거 관리 책임자인 대통령 권한대행이 중간에 변경되면 정국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총리 사건은 대통령 사건보다 훨씬 단순한 사안이며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탄핵 여부가 먼저 결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탄핵 심판으로 인해 국정 운영의 2인자인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직무대행을 맡고 있어 국정 운영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라며 “쟁점이 간단한 만큼 국정 공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을 신속히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다만 한 총리가 직무에 복귀할 경우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이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마 후보자가 윤 대통령 탄핵 심리에 참여하면 재판부 구성이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헌재는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마 후보자 임명을 강력히 촉구하는 상황이고 한 총리 역시 복귀할 경우 임명을 미룰 명분이 부족하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 선고 일정이 4월 중순까지 연기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마 후보자를 포함한 재판부가 다시 평의를 진행해야 하고 변론 진행에 따라 기존 결정문 초안도 수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4월 18일 퇴임하는 점을 감안하면 헌재의 시간적 여유가 상당히 부족해진다.
헌재가 한 총리 탄핵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릴 경우에는 셈법이 더 복잡해진다. 각하는 소송의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안에서 본안 사건을 판단하지 않고 소송을 그대로 종료하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최상목 권한대행이 한 총리 탄핵 이후 한 행정행위 등이 전부 다 무효’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다. 한 총리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당시에 국회 의결정족수 논란이 상당했다. 헌법은 대통령 탄핵안의 의결정족수를 재적 의원 3분의 2(200석)로, 국무총리 등 일반 공직자의 경우는 재적 의원 과반수(151석)로 규정한다. 국회는 당시 151석을 기준으로 한 총리 탄핵안을 의결했다. 차 교수는 “헌재가 판결문에서 탄핵소추안 통과를 위한 정족수가 재적 의원의 3분의 2라는 점을 이유로 각하할 경우 정계선·조한창 헌재 재판관에 대한 임명뿐 아니라 각종 결정이 무효라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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