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오가는 터널 옆 공조실에 가로·세로 2m 크기의 환기구로 매캐한 바람이 들어왔다. 곧이어 바둑판 모양의 거대 필터가 커튼처럼 움직여 환기구를 가로막더니 ‘우우웅’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동작했다. 주변 모니터에서 ‘나쁨’을 가리키던 미세먼지 양이 2분 만에 거의 0을 가리키며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알렸다.
24일 대전 중구 서대전네거리역 공조실에서는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지하철용 초미세먼지 저감장치가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지하철이 오가며 일으키거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미세먼지가 역사 안에 유입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날 직접 가본 공조실에서는 바로 옆 터널에서 지하철이 지날 때마다 생기는 미세먼지로 인해 주기적으로 나쁨 등급에 해당하는 50㎍/㎥(세제곱미터당 마이크로그램)의 초미세먼지가 발생했지만 저감장치 덕에 2분 이내에 0 가까이로 급감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터널 내 초미세먼지의 73%를 정화할 수 있다는 게 기계연의 설명이다.
기계연이 지하철용 미세먼지 저감장치를 별도로 개발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기존 저감장치는 금속 필터를 사용해 제조 비용이 비싼 것 물론 정전기를 발생시키는 데 필요한 전기료와 물청소에 필요한 수도요금 등을 합치면 유지보수비도 연간 9400만 원에 달한다. 비용 부담 때문에 대전 지하철에서는 저감장치 도입이 전무하며 서울에서도 도입률이 20%에 그치는 실정이다. 김학준 기계연 책임연구원은 “새로운 장치는 머리카락보다 얇은 극세사 전극과 플라스틱 재료를 사용해 제작과 유지보수 비용을 크게 줄였다”고 말했다.
설명을 듣고 자세히 보니 저감장치는 2겹의 막으로 이뤄져있었다. 하나는 작은 피뢰침처럼 생긴 전극 324개가 바둑판 배열로 나란히 꽂혀 있었는데 이를 통해 정전기를 일으킨다고 한다. 정전기는 주변 공기 중에 이온 입자를 만들고 이온 입자가 다시 미세먼지를 뭉치는 역할을 한다. 전극을 얇게 만들수록 전력을 아낄 수 있는데 기계연은 극세사 전극 기술을 통해 전력 절감 효과를 극대화했다. 뭉쳐서 커진 미세먼지는 다른 하나의 장치인 필터를 통해 걸러진다. 이 필터 역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제작 비용뿐 아니라 관리에 용이한 건식 청소가 가능해졌다.
기계연은 새로운 저감장치가 기존 무필터 저감장치에 비해 제품가격을 3억 원에서 2억 원으로 33%, 연간 유지보수비는 9400만 원에서 1400만 원으로 85%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지하철역 1093개에 확대 도입 시 매년 100억 원의 유지보수비를 아낄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년 내 지하철역과 학교 등 다중이용시설에 상용화하고 10년 내 중국·인도 등 해외에도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류석현 기계연 원장은 “ 2년간의 실증을 통해 저감 효과를 입증했다”며 “더 많은 공공시설에 확대 적용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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