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공식화하자 국내 자동차 및 부품 업계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지난해 해외 수출 길에 오른 한국산 자동차의 절반 이상인 140만여 대가 미국에 쏠려 있는데 고율 관세를 감내하기는 쉽지 않아서다. 현대차·기아와 한국GM의 수출 물량이 고율 관세로 쪼그라들면 국내 생산이 많게는 90만 대가량 줄어 전후방 산업까지 타격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 중소 업체들에는 치명타가 되는 셈이어서 자동차 업계는 내수 활성화 지원책과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도입해 생산과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7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된 국산차는 143만 2713대로 전체 수출(278만 2612대)의 51.5%를 차지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수출(217만 7788대)의 46.6%인 101만 3931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약 170만 대)의 58.8%가 국내에서 수출된 셈이다. 내수 침체로 현대차·기아의 국내 판매량은 줄었지만 미국 수출 증가로 국내 공장은 100% 넘는 가동률(현대차 102.9%, 기아 103.1%)을 유지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25% 관세를 감내하며 수출 물량을 모두 미국에서 판매하기는 쉽지 않아 국내 생산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현대차·기아는 이날 미국 조지아에 준공한 메타플랜트의 30만 대를 포함해 연간 100만 대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미국에서의 지난해 수준 판매량을 가정할 때 국내 수출은 30만 대가량 감소한 70만 대인데 이마저도 관세를 물면서 수출하기는 녹록지 않다.
한국GM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GM 생산량 중 미국 수출 비중은 88.5%에 달한다. 한국GM의 창원·부평공장에서는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등 가격에 민감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생산되고 있어 25% 관세를 부담하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한국GM이 강하게 부인하지만 한국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산업연구원은 현대차·기아의 미국 신규 공장 가동에 한국GM의 수출 물량까지 고려하면 미국의 25% 관세 부과 시 70만~90만 대의 국내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 역시 20.5%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자동차 수출 감소는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 4433만 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액(1097억 6570만 달러)의 31.7%를 차지했다. 자동차 부품(80억 2962만 달러)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39%로 늘어난다.
자동차 업체들은 수출국 다변화로 국내 생산 감소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최준영 기아 사장은 이날 ‘미국 관세 부과 민관 합동 긴급 대책 회의’ 이후 취재진과 만나 “국내에서 생산을 줄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에서 타격을 받는 만큼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중동·아시아·중남미 등의 신규 수출 물량을 늘려 나가겠다는 포부다.
대기업도 수출 확대가 쉽지는 않지만 부품 중견·중소 업체들은 대응책 마련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방제욱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무는 “(미 관세로 영향을 받는 업체가) 품목마다 다르고 납품 구조도 다르다”면서 “투자 비용과 원자재 수급, 비싼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미국 등 해외로 나가 생산을 늘리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현지화 확대와 내수 부진에 국내 자동차 생산 기반이 위축될 가능성이 큰 만큼 정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 확대와 친환경차 세제 지원 등으로 국내 소비와 생산을 촉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동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미래차 생산 및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한 내수 진작책과 더불어 국내 생산을 촉진·지원할 세제 도입 등 특단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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