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1월 새해 첫 경영 행보로 울산 HD현대미포 조선소를 찾았다. 조선소에는 벨기에 선사가 발주한 암모니아 이중연료 추진 선박 2척이 출항을 앞두고 있었다. 이 선박의 발주 금액은 4억 7000만 달러에 달하는데 수출입은행은 1억 7000만 달러 규모의 건조 자금을 지원하면서 대규모 수출 계약의 밑돌을 놓았다. 윤 행장은 이날 “한국과 중국, 일본 조선업의 진검승부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술적 우위를 지속해 확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의 선순환이 중요하다”면서 “모든 역량을 동원해 올해 한국이 글로벌 조선 1위 위상을 확인하는 해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 3년 차를 맞은 윤 행장의 경영 보폭이 넓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에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쳐 국내 산업 지형이 뒤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 단위로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국책은행인 수은의 역할이 전례 없이 커졌다는 게 윤 행장의 시각이다. 수은의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무역 기조가 자유무역에서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만큼 윤 행장이 산업 전반에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수은은 미국의 관세 폭탄에 직접 노출된 철강산업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올해 3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제공하는 동시에 0.6%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통상 대출 목적을 깐깐하게 따져 꼭 필요한 경우에만 금리를 우대하는데 용도를 따지지 않고 금리를 내린 것이라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은은 기업의 이자비용이 줄수록 철강업의 신산업 진출과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이 가팔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은 관계자는 “철강업은 전후방산업 연관 효과가 큰 기간산업인 만큼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철강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돕기 위한 지원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은은 기간산업 전반으로 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철강업을 시작으로 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 대한 관세 부과를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철강업 지원에 준하는 수준의 정책자금이 공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정책금융 확대 기조도 이어간다. 수은은 올해 75조 5000억 원의 정책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4.9% 늘린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항목별로 보면 수출 관련 대출이 32조 5400억 원으로 가장 많다. 기업의 해외 사업 진출을 돕는 데도 15조 99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가운데 은행의 건전성을 알뜰히 챙긴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는 얘기가 많다. 수은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은 지난해 15.34%로 국책은행 중 가장 높다. 윤 행장 취임 첫해인 2022년(13.38%) 이래 매해 1%포인트가량 개선됐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자동차 관세 25%를 예정대로 부과하겠다고 밝히고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앞으로 국책은행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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