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최소 두 달 동안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미국과 통상 협상 및 경기 침체 가능성에 즉각 대응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와의 협상은 어차피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신중하게 진행하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의 정책은 최대한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10조 원 ‘필수 추경’부터 우선 처리하고 차기 정부가 별도로 추가 예산을 집행하는 ‘1+1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을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급파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섣불리 협상을 마무리하는 대신 전략적 탐색전을 이어간다는 게 우리 정부의 원칙이다. 미국이 한국 기업들의 생산기지인 베트남 등 글로벌사우스에도 ‘관세 폭격’을 퍼부은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대대적인 공급망 재편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일본·유럽연합(EU) 등 경쟁국들의 대미 협상 경과도 주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처럼 애플 등 미국 기업에만 관세 면제를 해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급력이 큰 미국의 전략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단 경쟁국들의 상황도 지켜봐야 하므로 한국이 먼저 나서서 패를 내보이며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우리 산업계에 절대 유리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장 24%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질 전화 협의도 관찰 대상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분위기다. 이시바 총리는 5일 “최종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밖에 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는) 하나의 세트나 패키지 등으로 (교섭)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파면으로 정상이 부재한 한국 입장에서는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구입’ 등의 패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나 꺼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예상을 웃도는 고강도 관세 부과로 미국의 역성장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연초부터 군불만 떼고 있는 추경을 통한 내수 경기 보강의 필요성은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의 대규모 관세 인상 발표는 글로벌 경기 사이클과 한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심리 지표에 더 큰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대외적 도전과 국내 경기 부진, 최근 산불 피해 복구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정치적 교착 상태가 일부 해소된 만큼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추경 예산의 규모와 시기는 협상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산불 대응과 기존의 본예산 정상화를 위해 비교적 소폭의 추경 예산을 편성하고 대선 이후 대내외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추경 예산을 편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다. 여야 역시 대선 전후에 한 차례씩 ‘1+1 추경’을 추진하는 게 대선 결과를 떠나 서로의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이번 헌재 판결로 정치적 관심이 대선으로 이동하고 트럼프 관세에 따른 외부 충격을 감안할 때 경제정책이 종전보다 부양 기조로 전환될 것”이라며 정부안인 10조 원보다 커진 20조~25조 원의 추경이 편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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