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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부품 1000개로 '光집게' 구현…젓가락 콩 집듯 원자 집는다

■ 표준연 양자컴퓨터 개발현장

1m 공간에 레이저 제어장치 빼곡

차세대 기술 '중성원자' 개발 한창

0.1㎚ 원자 정밀 조정 양자컴 계산

5년내 1000큐비트 제품 확보 목표

기존 초전도 양자컴도 고도화 박차

9일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실에서 문종철(왼쪽 두 번째) 책임연구원과 송윤흥 선임연구원이 중성원자 제어장치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9일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실에서 중성원자 제어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보시는 픽셀 하나하나가 다 원자입니다. 1000개에 가까운 광학 부품들로 원자를 이렇게 정밀 제어하면 고성능 양자컴퓨터도 구현할 수 있죠.”

9일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에서 만난 문종철 책임연구원은 기관 영문명 ‘KRISS’를 나타낸 그림을 가리켰다. 38개의 점을 투박하게 찍은 듯 보였지만 0.1㎚(나노미터·10억분의 1m) 남짓의 개별 원자들을 정교하게 배열한 첨단기술의 산물이라고 했다. 특히 여기에는 미국 등 선진국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양자컴퓨터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핵심 기술이 담겼다는 설명이다.

중성원자 제어 기술을 통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영문명 ‘KRISS’를 표현한 그림. 38개의 점을 투박하게 찍은 듯 보이지만 0.1㎚(나노미터·10억분의 1m) 남짓의 개별 원자들을 정교하게 배열한 첨단기술의 산물이다. 사진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표준연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실에는 첨단 치고는 아담한 가로·세로·높이 1m 남짓의 중성원자 제어장치가 녹색 빛을 뿜으며 작동하고 있었다. 빛의 깜박임 없이는 장치가 작동하는지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용했다. “아무것도 건들면 안 된다”는 당부에 조심스럽게 암막 커튼을 걷고 들여다본 장치는 작은 돋보기를 똑바로 세워 꽂아놓은 듯한 렌즈와 거울, 빛 가르개 같은 각종 광학 소자(素子)들을 오밀조밀 모아놓은 모습이었다.

장치는 전력을 공급하고 각종 신호가 오가는 전선들까지 주렁주렁 매달려 80년 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에니악을 연상하게 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1000개 가까운 광학 소자가 들어 있다고 했다. 소자들이 레이저의 방향과 성질을 바꿔 20㎝ 정도의 작은 상자 안으로 모았다. 이 안에 큐비트(양자컴퓨터의 계산 단위) 역할을 하는 중성원자들이 들어 있었다.

전자식 컴퓨터와 다른 점은 전기가 아닌 빛을 제어한다는 것이다. 트랜지스터 같은 반도체 소자가 전기 흐름을 제어하듯 광학 소자는 반사나 굴절 등으로 레이저의 방향을 돌리고 위상(位相)과 같은 성질을 바꿀 수 있다. 특히 레이저를 원자가 있는 한점으로 집중시키면 강력한 전자기 에너지로 원자를 원하는 위치에 자유자재로 옮기는 ‘원자 제어’가 가능하다. 서로 다른 두 가닥의 레이저를 한점으로 모으면 젓가락 두쪽으로 콩을 집듯 원자를 집을 수 있는 ‘광집게’를 구현할 수 있다. 연구실 입구에서 본 KRISS 문구도 광집게로 원자를 집어 한 땀 한 땀 새긴 결과물이다.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실에서 한 연구자가 광학 장비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표준연이 원자 제어에 공들이는 이유는 전 세계적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에 나서기 위해서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현재 구글·IBM 등 빅테크의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추격할 신기술로 최근 부상했다. 양자컴퓨터는 원자를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로 만들어 빠르게 계산하는 장치로 큐비트 구현이 기술의 핵심이다. 중성원자 방식은 레이저로 개별 원자, 즉 중성원자를 정교하게 제어하기 때문에 초전도에 비해 큐비트 상태를 더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는 또 초전도와 달리 커다란 냉각장치를 달지 않고도 비교적 쉽게 수 mK(밀리켈빈), 즉 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표준연의 설명이다. 극저온은 양자컴퓨터 작동의 필수 조건이다. 이에 글로벌 석학들이 창업한 미국 큐에라, 프랑스 파스칼에 이어 일본 분자과학연구소 등도 연내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정부는 표준연을 통해 조만간 국산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를 앞둔 데 이어 국산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도 확보할 계획이다. 약 7000억 원 규모의 ‘양자 플래그십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5년 내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홍창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이 9일 대전 유성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20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같은 건물 초전도 양자컴퓨터 연구실 역시 기술 고도화에 한창이었다. 연구실은 ‘윙윙’ 요란한 헬륨 펌프 소리로 가득했다. 극저온 유지를 위해 1ℓ에 1000만 원에 달하는 헬륨3 기체 20ℓ를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펌프 소리였다. 소리뿐 아니라 외형도 드럼통처럼 생겨 중성원자 양자컴퓨터보다는 존재감을 뽐냈다. 큐비트 제어에 필요한 라디오파 발생장치와 전선들까지 빼곡히 놓여 연구실에 발디딜 틈이 없었다.

초전도 양자컴퓨터의 상징인 금관 모양의 화려한 외형은 캡슐에 둘러싸여 육안으로 볼 수 없었다. 홍창기 선임연구원은 “주변 공기나 빛 같은 방해 요인을 차단하기 위함”이라며 “총 다섯 겹을 띄워 10억분의 1 기압 수준의 사실상 진공 상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표준연은 조만간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고 냉각 성능 등을 더 높여 내년까지 50큐비트로 확장할 계획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20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사진 제공=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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