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올해 정부에 신청한 반덤핑 조사 신청 건수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치킨게임’에 돌입해 사실상 교역을 중단할 위기에 놓인 가운데 갈 곳을 찾지 못한 ‘밀어내기’ 수출 물량이 우리나라로 몰려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접수된 반덤핑 조사 신청 건수는 총 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 집계가 공표된 2001년 이래 최대치다. 품목별로는 화학 업계의 반덤핑 조사 신청이 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계·전자, 종이·목재, 통신 등 기타 분야가 각각 1건을 차지했다. ‘저가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장 많이 받은 국가는 중국(3건)이었다.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저가 밀어내기 공세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미국으로부터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받았다고는 하지만 10%의 기본관세는 그대로 유지돼 미국행 수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사실상 중국산은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그 물건들은 한국이나 유럽연합(EU) 등으로 가게 될 텐데, 내수 부양에 나선 중국 정부가 제조업 지원이나 보조금을 줄이지 않아 저가 밀어내기가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는 밀어내기에 대응해 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다. 베트남이 16일부터 일부 중국·한국산 도금강판 제품에 최대 37.13%의 잠정 반덤핑관세를 물리기로 했으며 인도는 지난달 전 세계 철강 판재류에 대해 12%의 관세를 일괄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EU도 중국산 철강 제품 3종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했다.
한계 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밀어내기 수출의 주요 타깃인 석유화학 업종을 대상으로 사업 재편 방안을 수립하기로 했으나 관련 컨설팅 보고서에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유도 방안이 사실상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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