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 모(28) 씨는 최근 ‘빵 마감런’에 푹 빠졌다. 애플리케이션으로 예약 후 마감 시간에 맞춰 가게를 들르면 정가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다양한 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저번에도 1만 4000원어치 빵 3개를 6900원에 샀다”면서 “우리나라 빵 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앱을 사용하니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불황 속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자 자영업자들이 ‘반값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존에는 고깃집·주점 등을 중심으로 주류 가격을 경쟁적으로 인하했다면 이제는 폐기될 뻔한 빵을 반값에 살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카페·베이커리에까지 ‘반값 바람’이 침투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부모님의 한숨을 보다 못한 딸들이 ‘엄마 가게 도와주세요’라며 간곡한 홍보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1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빵·도시락 등을 마감 후 저렴하게 판매하는 앱인 ‘럭키밀’ 가입자는 최근 2주 새 5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두 배 폭증했다. 1000명 안팎에 불과했던 일일 방문자 수도 3월 중순을 기점으로 급증해 꾸준히 1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모난돌컴퍼니의 김현호 대표는 “최근 들어서는 입점 가게들 대부분이 마련된 수량을 모두 소진하고 있다”며 “일부 인기 가게들은 1분 만에 물건이 동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치솟는 물가 속 ‘가성비 플랫폼’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가입자가 급격히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입점 업체 수도 지난해 5월 150개에서 현재 500여 개로 꾸준히 늘고 있다. 버려질 뻔한 재고를 판매해 추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만큼 소비자도 업체도 ‘윈윈’이다. 럭키밀에 입점한 한 빵집 사장님은 “전에는 버리던 빵이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예약해가시는 게 일상이 됐다”며 “장사 의욕도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지정해 월 4만 원 안팎의 구독료를 내면 매일 커피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서비스도 나왔다. 대다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이 4000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업주 입장에서는 인적이 드문 평일 오전 등 시간대에도 단골 고객을 다수 확보해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다.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는 앱 ‘리프’ 관계자는 “구독 손님들이 단골이 돼 구독권 외 추가 주문을 하는 경우도 많아 매출 전반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며 “구독 도입 후 150만 원 안팎의 추가 수익을 얻고 있는 카페도 있다”고 전했다.
초저가를 선호하는 불황형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값싼 가격에 주류를 판매하는 식당도 늘어났다. 일부 고기 프랜차이즈가 2000원에 소주·맥주를 판매하며 손님을 끌어모으자 오픈 이벤트 등을 내세워 1000원에 소주·맥주를 판매하는 식당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주항공 참사나 산불 등 재난으로 회식이 줄어들며 월세도 내기 힘든 형편에 내몰리자 주점·호프 등 밤 영업이 주가 되는 업종은 낮 장사를 시작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은 장사 10년 만에 점심 뷔페 장사를 시작했다. 해당 가게 점주는 “코로나19, 비상계엄, 각종 재난까지 잇따라 터지면서 3년 전에 비해 매출이 40%가량 감소했다”며 “저녁 장사로만은 도저히 월세를 낼 수 없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끝을 모르는 불황에 자영업자 자녀들까지 팔을 걷고 홍보에 나서고 있다. X(옛 트위터)에서 부모님 가게를 홍보하는 딸들의 글들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가게들을 모아 정리한 일명 ‘자영업자 구조 지도’가 만들어졌다. ‘트위터에서 보고 왔어요’라는 제목의 지도에는 1000개의 음식점과 꽃집·미용실·네일숍 등이 등록된 상태다.
반값 마케팅이 떠오르는 것은 재료 값 폭등, 소비심리 악화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며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1월 기준 자영업자 수는 550만 명으로 외환위기(590만 명), 글로벌 금융위기(600만 명) 당시보다 적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불황 속 가게 진열품, 스크래치 상품 등을 값싸게 파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자영업자 입장에선 마진을 포기하더라도 싸게 유통시켜서 소비자가 구매하도록 전략을 세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