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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몰상식 시대' 지도자의 조건

◆서일범 경제부장

트럼프 이후 전 분야서 상식 무너져

민주주의 위기에 군사충돌 우려까지

韓 기술적 우위 확보·자위력 강화 등

최악 혼란 극복 방안 세울 수 있어야

서일범 경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 세계에 수많은 폭탄을 던졌다. 펭귄만 사는 무인도에 25% 관세를 물리거나 멀쩡한 남의 영토(그린란드)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식이다. 중국에 물린 145% 관세는 전 세계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모두 자국 질서와 국제 규범을 흔드는 행동들이다.

트럼프의 행동들은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길한 전조다. 당장 법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런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은 FTA를 아무 때나 걷어차도 되는 헌신짝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법적으로 따져보면 사실상 미국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미국이 맺은 국제조약은 헌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 1조 8절은 “외국과 통상에 대해 규제할 권한은 의회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FTA 역시 의회 비준이 있어야 비로소 효력을 갖게 된다. 우리 헌법도 “조약의 체결과 비준에 대한 동의권은 국회에 있다(헌법 제60조 1항)”고 정의하고 있다. 상당수 법률가들이 트럼프의 상호관세를 위헌적 행정권 남용으로 보는 이유다.

금융의 상식도 무너져내리고 있다. 가령 경기 위축기에는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팔고 안전자산인 달러나 국채로 몰리면서 두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는 게 상식으로 통했다. 자금이 큰 틀에서 예측 가능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면서 투자자들도 회피처를 찾아 리스크를 피할 수 있었다.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 이후 이런 상식이 붕괴하고 있다. 미 국채금리는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지난 한 주간 49bp(bp=0.01%포인트) 넘게 급등하면서 24년 만에 가장 많이 올라 시장을 공포 속으로 밀어넣었다. 상식을 깬 가격 흐름이 전 세계 투자자의 패닉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볼 수 없었던 ‘트리플(달러·주식·국채) 약세’가 나타나 전문가들도 해석을 포기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행정부의 구조조정 집도의로 발탁하고 백신 음모론자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앉힌 것도 미국 관료제를 희화화한 결정이라고 본다. 머스크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관료 집단 전체를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존재로 격하했다는 점에서다. 정책적 전문성을 잃고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관료 집단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대통령직 3년이나 5년이나 똑같다”고 말했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발언이 분노를 넘어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마저 불러일으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아직 이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좌충우돌 행보로 인도주의나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조차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이는 ‘인도주의적’ 결정을 내렸다가 극우파 정당에 의석수 기준 제2당 자리까지 내준 독일이나 3선 가능성을 운운하는 트럼프가 이런 신뢰 붕괴의 신호다.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는 “통화 질서가 붕괴할 수 있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방식이 아닌 내부 갈등과 국제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가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에 주어진 숙제는 최악의 혼란(disorder)에도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 실력을 쌓는 것이다. 특히 기술적 우위를 지켜야 한다. 천방지축처럼 보이는 트럼프조차도 반도체에 대해서만큼은 상호관세를 면제했다. 반도체에 관세장벽을 쌓았다가 인공지능(AI) 우위까지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반도체가 ‘호국 산업’으로 통한다.

주권을 사수하기 위한 자위력도 원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핵무장론을 두고 “북한처럼 살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일정 부분 옳은 말이지만 그의 말대로 우리가 핵을 가질 수 없는 국가라면 미국이 한반도를 떠난다는 극단적 가정을 바탕으로 조국을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게 몰상식 시대의 지도자이다. 몰상식의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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