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싱크탱크 ‘성장과통합’이 16일 닻을 올리며 ‘인공지능(AI)정부’를 전면에 내걸었다. AI와 제조업의 연계로 전 산업의 AI전환 즉 인공지능전환(AX)을 성장의 열쇠로 제시한 성장과통합은 차기 정부의 밑그림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었다. 이날 출범식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인 국회도서관에서 서울경제신문을 만난 유종일 성장과통합 상임공동대표는 시종일관 대한민국의 성장이 AI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 출신인 유 대표는 그동안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뒀던 학자였지만 이번에는 성장이 답이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유 대표는 “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시기보다 더 큰 위기에 빠져 있다”며 “혁신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 해법은 AI였다. 그는 “생활부터 산업까지 모두 AI가 바꿔갈 것”이라며 “한국 경제를 그동안 지탱해온 것은 제조업으로 AI와 제조업을 만나게 해 대전환을 일으키는 AX에 성공해야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강조한 AI100조 원 투자시대 역시 국민펀드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투자자가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들어 창출된 부를 나누는 방식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 대표는 “펀드라기 보다 기업에 투자하는 컨소시엄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빠르다”고 했다. 이는 일본이 탈탄소 전환을 위해 출범시킨 ‘GX(녹색 전환)’ 컨소시엄과 유사한 방식이 될 전망이다.
AI를 통해 에너지, 바이오, 문화콘텐츠, 방위산업을 포함해 인구 문제까지 아우르는 기획부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유 대표는 “성장과 회복을 위해 시간이 없다”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이 출범하는 새 정부가 큰 폭으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기보다 기획부처를 통해 미래 핵심 산업 정책을 포괄하는 혁신 정책을 짜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성장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에는 “전략적 방향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이 공감하는 한편 배제되거나 소외없는 성장을 하기 위해 전략적 방향성을 찾는 소통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제민주화의 대표적인 학자로 꼽혔다. 성장보다 분배에 무게를 뒀지 않나.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질문이다. 정책하는 사람 입장에서 경제상황에 따라 최우선 과제의 강조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시기보다 더 큰 위기에 빠져 있다. 혁신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성장친화적 분배를 해야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다. 차기 대통령 임기중 잠재성장률 3%, 4대 수출강국 도약,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3-4-5비전을 제시한 이유다.
-이명박 정부의 7-4-7전략과 다른가.
△이명박 정부는 세계금융시장 불안의 전조가 보였고, 결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져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당시는 정책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어야 했는데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워 공격적으로 7-4-7에 매달렸다. 반대로 3-4-5비전은 현실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더구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성장 동력이 급속히 꺼지는 게 문제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대대적인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 그 핵심은 AI다. AI가 발전하고 활용될 수록 생산성을 늘릴 수 있다. 생활부터 산업까지 모두 AI가 바꿔갈 것으로 한국 경제를 그동안 지탱해온 제조업과 연계해 대전환을 일으키는 AX에 성공해야 기회가 생긴다.
-이재명 후보가 AI100조 원 투자 시대를 연다고 한다. 가능성이 있나.
△당장 할 문제는 아니지만 AI를 구현하기 위해선 데이터센터 등을 설치하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결국 투자가 필요하다. 재정으로만 100조 원 투자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국부펀드 조성이 불가피하다. 이 후보는 국부펀드라고 했는데 사실 국민펀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다만 AI 투자라는 게 장기적이고 모험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할 부분이다.
정부 재정으로는 마중물 투자만 하고 관련 대기업과 금융사와 개인도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제혜택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오면 단순 펀드가 아니라 (일종의) 컨소시엄이 된다. 그동안의 다양한 정부 주도의 펀드들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자부한다. 일본이 ‘GX(Green Transformation·녹색 전환)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할 기업이나 주주들을 모으고 (국민에게도) 확대한 방식과 유사한 방식이다. 확실한 비전을 보여주고 기업과 국민들이 이건 꼭 필요하다는 생각과 판단, 그리고 성공의 길이라는 확신이 들게 하면 정부와 민간 모두 성장기회를 잡겠다는 의지가 모일 것이다.
-AI정부는 미래 이야기다. 미국의 관세정책부터 직면한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
△3-4-5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당면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싱크탱크 수준인 성장과통합이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한다는 게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자격으로 말한 다면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시간을 벌어야 해결 가능성이 생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속전속결할 일이 아니다. 관세 정책 자체가 미국 내부의 인플레이션과 주가 폭락으로 이미 힘이 빠지고 있다.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탓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 한-미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민생 경제도 문제다. 코로나19 대출 상환이 도래한 소상공인은 겨우 버티고 있다.
△재정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긴축재정을 한다 해놓고 세수 추계도 잘못하고 감세까지 하면서 재정 건전성을 오히려 후퇴시켰다. 적극재정이 필요한 시점인데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도 없다. 재정은 결국 적재적소에 필요한 마중물이 돼야 한다. 특히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소상공인 등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적절한 규모 추경은 정부 출범과 동시에 바로 추진해야 옳다고 본다.
-성장론에 세금이슈는 빠질 수 없다. 새정부에서 기업의 세부담은 줄어드나
△이 후보도 상속세, 소득세 등을 폭넓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세제 개편은 중구난방으로 할 수 없다. 항목별로 손델 경우 가뜩이나 누더기 세법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세수와 지출구조조정까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조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세 부담만 줄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각 부처의 유사 프로그램을 최소화하고 실효성 없는 정부 정책은 과감하게 없애면서 ‘정부가 하지 않을 건 안하고, 해야 할 건 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가성비 정부가 돼야 한다.
-부동산 세제도 합리화가 필요한가.
△시장원리에 충실해야 한다. 아울러 새 정부에서 (이전 정부의) 공급 부족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불식시켜야 한다. 정부 출범과 맞춰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이 필요하다. 여러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주민복지센터, 문화센터 등등 공공시설이 많이 있다. 이게 다 저층이고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다. 이를 활용해서 주상복합처럼 활용도를 높여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조직개편도 고민하고 있나.
△정부조직 변화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오가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정부 조직을 대규모로 고치기 보다 지금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당장 달리기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정부의 기획부처가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AI를 통해 에너지, 바이오, 문화콘텐츠, 방위산업을 포함해 인구 문제까지 아우르는 기획부처가 필요하다. 기획부처를 통해 미래 핵심 산업 정책을 포괄하는 혁신 정책을 짜는 게 더 중요하다. 정부가 공공서비스 제공, 국방, 교육 등 사회 서비스, 공공행정 기본적으로 관리하면서도 AI대전환에 맞게 정부의 기획 기능이 굉장히 중요해지는 셈이다. 그래야 국민펀드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가기획전략은 세계적인 트랜드다. 산업정책을 바탕으로 한 기업가적 국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개발도상국가 시절에나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트랜드가 된 배경이 있나.
△모든 나라에서 산업정책을 다 하고 있다. 소위 세계화 과정에서 분배가 너무 약화됐고 더 근본적으로 전환의 시대다. 기후, AI 등 큰 기술적 변화에 시장이 하기 힘든 일이 많아진 것이다. 경제학에서 코디네이션밸류라 하는 데 소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시기다. 기획부처가 규제를 풀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인터넷, 위성항법시스템(GPS), 스마트폰 멀티터치 기능은 모두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에서 막대한 국방 연구 예산을 투자하면서 개발해 냈다. 정부 주도의 초기 투자로 오늘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한 것이다.
-성장론에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 후보에게 출마 선언 전에 ‘왜 성장 전략이 필요하냐’고 물으니 ‘성장 없이 분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이 분명히 생겼다”고 말했다. 나 역시 진보성향 학자라고 구분되지만 성장과 통합은 한 묶음이다. 다만 부가 일부에게만 쏠려 배제와 소외가 생기는 성장을 개선해야 통합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 기업이 공감하는 전략적 방향성을 찾아가는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도 말 만 앞서지 말고 시장을 벗어나는 정책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유능한 정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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