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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억원의 실패가 '인조이'로 돌아오기까지…연합을 넘어 크래프톤 [정혜진의 라스트컴퍼니]

배틀그라운드 2.0과 제2의 배그를 찾아서

신작 ‘인조이’ /사진 제공=인조이 스튜디오




프롤로그 : 블루홀의 10억 계단

2018년 블루홀이 이사한 곳은 경기도 성남 판교역 초역세권의 알파돔타워였다. 건물의 12~15층 4개층을 계약하면서 회사는 연합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위해 한 가지 장치를 뒀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추가 예산을 들여 내부에 4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설치한 것.

누군가가 계단을 설치하는 이유를 묻자 장병규 당시 블루홀 의장은 역으로 질문을 했다.

“이 계단이 얼마일까요.” 이윽고 자문자답했다. “10억원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구조 검토와 설계, 구청 인허가를 다시 받는 수고까지 합치면 그 기회비용은 더 높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억 계단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계단을 설치한 이유는 ‘소통을 위한 설계’에 있었다.

“누군가와 마주쳐 잠깐 이야기했던 경험이 사내 이동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 의도적인 설계를 사무실에 해야 합니다. 소통이 과연 잘 되고 있는지를 측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큰 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환이 잘 이뤄지도록 하는 게 맞는 거잖아요.”

두루뭉술한 연합군

블루홀은 한 때 스튜디오의 연합체로 출범했다. 게임 자체가 성공 가능성이 낮다 보니 단 하나만 성공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꾸린 연합군이었다. 제각각의 다른 제작 리더십이 있었고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일을 했다. 그렇다 보니 가장 어려운 대목은 연합군이 일치된 소속감을 갖는 일이었다. 이 가운데 크래프톤의 압도적인 성공으로 돈을 버는 스튜디오와 그렇지 못한 스튜디오 간의 보상 문제를 시작으로 연합체의 두루뭉술한 정체성에 대한 불만이 주기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블루홀 시절부터 가동된 37개의 제작 프로젝트 가운데 출시 후 1년 이내에 손익분기점(BEP)를 달성한 게임은 배틀그라운드를 포함해 단 네 개에 불과했다. 2018년 11월 블루홀의 정체성인 연합을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이자 새로운 사명(社名)으로 ‘크래프톤(Krafton)’을 내걸고 투자 유치, 게임 유통, 인력 이동 같은 제작 지원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했지만 여전히 구성원 사이에서는 연합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배틀그라운드 2.0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를 쓴 이기문 작가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사에 있어서 크래프톤이 갖는 의미를 두고 “90% 이상의 매출을 해외에서 내면서 글로벌에 대한 갈증을 제대로 해결한 회사는 크래프톤이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초반의 게임성으로 인해 글로벌에서 큰 반응을 얻었다면 이후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해서 사람마다 지불 용의가 있는 만큼 이를 최대한으로 수익성을 달성한 게 배틀그라운드가 오늘 날에 이른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테면 게임 이용자마다 지불 용의가 다른데 중동 지역의 게임 이용자의 경우 수십만원부터 수백만원까지 게임에 돈을 내고 싶은 이들이 있어도 기존의 게임 내 요소들로는 이를 충족시킬 방안이 없었는데 무료 플레이로 전환한 뒤 BM을 고도화하고 프로모션도 체계화하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준비해 수익성을 극대화했다는 것.

실제로 2019년 기준으로 1600만명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 가입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전 세계 서비스 국가 중 월매출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평균보다 3~5배 많은 돈을 쓰다 보니 전 세계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유저 10명 중 절반이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일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김창한 크래프톤 CEO가 ‘배그의 아버지’로 불린다면 ‘펍지의 아들’로 불리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장태석 펍지 총괄 PD다. 김창한이 배그의 시작을 만들었다면 이를 이어 받아 배그를 고도화하고 오늘날의 수익 모델을 만들고 마르지 않는 샘물원으로 만든 것은 장 PD다.

배틀그라운드가 2.0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료 플레이’였다. 모든 지표가 곤두박질치던 시절 장 PD가 깨달은 건 PD의 궁극적인 역할은 게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보는 것이었다.

김형준 크래프톤 인조이스튜디오 대표 겸 인조이 PD. /사진제공=인조이스튜디오


제2의 배틀그라운드를 찾아서

크래프톤에는 ‘리부트셀’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이후 이 조직의 이름은 ‘챌린저스팀’으로 바뀌었다. 특정 게임의 개발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프로젝트에 소속돼 있던 이들은 6개월 가량을 리부트셀에 머물며 사내 다른 팀에 이동을 계획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2019년에는 비행전투를 내세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에어(A:IR)’ 개발자 전원이 리부트셀로 이동했다.

당시 2차 비공개시범테스트(CBT)에서 처참한 결과를 받은 데다 누적 투자금이 727억원으로 불어난 상태였다. 결국 조직을 깎아내면서까지 게임을 살리려 했지만 결국 에어는 흥행에 실패했다. 당시 담당 PD는 스타 개발자인 김형준이었다. 엔씨소프트에서 ‘아이온’의 아트디렉터 겸 개발실장으로 큰 성과를 냈으나 에어의 경우 처참한 실패를 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김 PD에게도 이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실패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의지로 임할 수 있다면’이 더욱 중요했다.

김 PD는 최근 크래프톤의 신작 ‘인조이’를 출시했고 초반에 흥행 몰이를 하면서 크래프톤의 수익 구조 다변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큰 실패를 해도 의지만 있다면 다시 기회를 줘 그 신뢰에 답을 하게 한 게 제2의 배틀그라운드가 나올 수 있는 씨앗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기문 저자는 1편인 ‘크래프톤 웨이’에 이어 2편인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를 쓰면서 모두가 공감하는 어떤 원형적 이야기가 있다고 봤다. 가장 큰 부분은 성장 서사다. 그는 “배틀그라운드 BM 고도화의 순간은 아트 디렉터였던 장태석이 총괄 피디(EPD)로서 ‘배그를 살리는 것은 김창한 대표도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무언가를 더 추구한 것”이라며 “김창한 대표도 배틀그라운드 성공 직후의 김창한과 크래프톤의 CEO가 된 뒤의 김창한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에필로그 : 극도의 투명성과 장병규 의장의 그릇

장병규 의장의 경우 평소 기록왕으로 유명하다. 특히 글을 신중하게 기록하고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그 이유와 과정까지 기록에 남기는 것을 장려한다. 좋은 데이터 아카이브가 있었기에 크래프톤의 성장기가 마치 사료(使料)처럼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공유될 수 있었다.

기존의 기업에서 의사결정은 물론 일상적인 업무 과정의 대화까지 모두 공개해 이를 공공의 자료로 삼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특히 처음 배틀그라운드의 흥행 이후 회사가 예상치 못한 10배 이상의 수익을 두고 보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장병규 의장과 당시 김창한 펍지 대표가 나눈 대화들은 날카로움과 치열함이 8년의 시간 격차를 두고도 그대로 전해질 정도다. 하지만 갈등을 마주하고 이를 품어내고 국내에 없던 사례라면 해외의 사례까지 찾아내 이를 해결하는 자세가 장병규 의장의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를 두고 이기문 저자는 “이는 장병규라는 창업자의 확고한 의지가 있기에 가능했다”며 “창업 기업가를 넘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간접 경험을 주는 것을 넘어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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