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가들의 ‘셀 코리아’ 행보가 9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달 순매도 규모가 5년여 만에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영향에도 코스피지수는 2500 선을 회복했지만 외국인들의 ‘투심’은 좀처럼 돌아올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수출 핵심 산업군에 전방위적으로 매도세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달 들어 17거래일 중 외국인들이 ‘순매수’에 나선 날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10조 4002억 원어치를 팔아 치우며 2020년 3월(12조 5550억 원) 이후 5년 1개월 만에 역대 최대 순매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 이후로는 2021년 5월(8조 5000억 원)과 2024년 9월(7조 9213억 원)이 가장 규모가 컸다.
외국인은 지난해 8월부터 이달까지 9개월 연속 매도 우위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 1조 원대로 매도세를 점차 줄이는 듯 했으나 이달 들어 관세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다시금 ‘셀 코리아’ 기조가 짙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상이 순조롭다며 시장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내놓았음에도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1978억 원어치를 정리했다. 코스피는 1.57% 상승한 2525.56으로 이달 2일 이후 15거래일 만에 2500 선에 올라섰지만 기관만 6855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실적 개선 기대감보다는 주가가 바닥을 찍었다는 ‘저평가 인식’에서 비롯된 방어적 매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외국인의 ‘팔자’ 기조가 계속되는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구조적인 특성상 미국의 오락가락한 관세정책 여파가 불리하게 작용한 영향이 크다. 이달 들어 외국인들은 SK하이닉스(000660)(2조 6466억 원), 삼성전자(005930)(2조 5568억 원), 현대차(005380)(6373억 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3299억 원), LG에너지솔루션(373220)(2268억 원) 등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전 업종에서 ‘엑소더스(대탈출)’ 움직임이 나타났다.
결국 관세 불확실성에다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공매도 전면 재개에도 외국인 자금 유입에는 전혀 효과가 없는 실정이다. 주력 산업 부진으로 실적 기대감도 높지 않고, 국내 경기는 계속 얼어붙은 모습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공매도 재개만으로 시장 환경이 좋아졌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라고 짚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동차와 반도체는 한국의 대미 수출 1~2위 산업인데 미국과 중국 모두와 무역 비중이 높아 관세 충돌 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 공백과 환율 불확실성도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번 외국인 이탈이 단순한 리스크 회피를 넘어 한국 시장에 대한 구조적 비중 축소의 신호일 수 있다는 걱정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실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에서 한국의 비중은 지난달 말 8.99%까지 하락했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뉴욕증시 상승 덕에 국내 증시에도 단기 훈풍은 불었지만 이러한 반등이 추세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면서 “코스피는 당분간 뚜렷한 방향성 없이 박스권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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