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금융계에서는 이 원장이 레고랜드 사태 수습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구조조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특유의 직설적인 메시지로 가계부채 관리나 상법 개정안을 비롯한 각종 현안에서 논란을 부추겼다는 해석도 함께 제기된다.
3일 금융계에 따르면 이 원장은 오는 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사에서 퇴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금감원장이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나는 것은 이 원장이 4번째다.
이 원장은 2022년 취임 당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서 검사 출신 첫 금감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공인회계사(CPA) 자격증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이 원장의 특이점으로 꼽혔다. 금융계에서는 이 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금감원 안팎에서는 이 원장이 일처리를 상당히 빠르고 공격적으로 하는 스타일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각 부문별 업무보고를 1주일 안에 단숨에 끝마쳤다고 한다. 한 금감원 직원은 “CPA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회계 쪽 업무보고 때도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성향을 반영하듯 이 원장은 레고랜드 사태, 흥국생명 해외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사태,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같은 각종 위기 사태 때마다 신속하게 메시지를 내며 시장 안정과 사태 수습에 크게 기여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부동산 PF 정리와 재구조화를 유도해 연착륙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원장 본인 역시 임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들로 레고랜드 사태와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을 자주 언급한다.
자본시장 관리 측면에서도 상당히 공격적인 면모를 보였다는 해석이 많다. 지난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공개 소환해 포토라인에 세웠던 것이 대표적이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금감원에 포토라인이 세워지는 것은 처음 봤다”며 “'검사 출신 원장'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공시심사 기능을 적극 활용했던 것도 이 원장 체제 하 금감원의 특징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분할 합병에 정정 공시를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것이 대표적이었다. 최근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삼성SDI를 비롯한 주요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대상에 올려 면밀히 보기도 했다. 이를 두고서는 소액주주 보호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기업의 자금조달 활동에 금감원이 지나치게 관여했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이 원장은 금감원의 전통적인 업무가 아닌 분야에서도 의견을 많이 냈다.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헤 “해외 주식으로 쏠림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이 그 사례다. 금감원장이 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실제로 당시 금감원의 회계 소관 부서에서는 밸류업 세제 관련 이슈를 따로 챙겨보고 있었다고 한다.
직설적인 의사소통은 이 원장을 상징하는 또 다른 특징이다. 그가 3년간 언론과 진행한 백브리핑만 해도 98회나 됐다.
다만 이 원장의 직설적 화법은 다른 한편으로는 관치 논란과 금융위원회와의 엇박자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지난 3월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재의요구권 행사에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한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7~9월 가계부채를 두고 메시지 혼선을 빚었던 것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의 2개월 시행 유예로 가계부채 관리 리스크가 불거져 있던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원장은 은행들의 가계대출에 개입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가 시장 혼선이 빚어지자 오히려 “실수요자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며 한 발 물러나기도 했다.
이 원장 역시 지난 4월 30일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임기 중 아쉬웠던 대목으로 스트레스 DSR 2단계 유예 및 관련 메시지 관리 실패를 꼽았다. 그는 “지난해 7월 스트레스 DSR 시행을 유예하고 이후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 있었다”며 “이런 혼란들에 대해서는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금융기관 검사 결과를 중간에 발표하는 것도 논란이었다. 자칫 망신 주기식 검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전직 금융 당국 관계자는 “검사는 원래 금융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인데 이 원장 체제에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금리와 금융안정과 같은 거시건전성 감독에서는 상당히 많은 변수와 정무적 맥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이 원장의 경우 이런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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