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의 낮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환매조건부채권(RP) 잔액과 투자자 예탁금이 사상 최고치 경신을 눈앞에 뒀다. 새 정부 출범 기대감에 국내 증시가 급등한 가운데 주식 고평가 부담과 미국 관세정책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자금을 초단기 상품에 ‘파킹’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대고객 RP 매도 잔액은 4일 기준 95조 9122억 원으로 2021년 6월 23일(95조 9366억 원) 이후 3년 11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년 6월 17일의 96조 4660억 원과 비교해도 불과 5000억 원가량 못 미치는 수준이다. RP 잔액은 지난달 중순 93조 원대에서 계속해서 늘고 있어 추세대로라면 최고치 경신 가능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대고객 RP는 증권사가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소정의 이자를 붙여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판매하는 채권으로, 단기 자금 운용에 적합한 ‘파킹형’ 상품으로 꼽힌다. 국공채 등을 담보로 발행되기 때문에 높은 안정성이 보장되면서도 통상적으로 예금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해 안정적인 단기 투자처로 주목을 받는다.
대고객 RP와 함께 대표적인 대기성 자금으로 꼽히는 투자자 예탁금도 이달 4일 60조 353억 원으로 3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고객이 예치한 돈을 증권사가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한 뒤 수익을 돌려주는 상품인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도 4일 기준 88조 415억 원의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90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로 단기채 수익률이 1~2%대로 떨어졌음에도 투자자들은 초단기 상품에 머무르며 관망하는 모습이다. 앞서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초 RP형 CMA 금리를 기존 2.20%에서 1.95%로 낮췄고 KB증권도 CMA 금리를 2.35%에서 2.10%로 인하했다. 한국투자증권도 2일 일반 수시형 RP 금리를 기존 2.50%에서 2.25%로 내렸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대기성 자금 급증의 배경으로 기준금리 인하, 새 정부 출범 기대감, 주식시장에 대한 경계 심리가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타코(TACO·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발언 수위를 연일 강도 높게 이어가고 있어 불확실성이 재고조되는 상황이다. 모건스탠리와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주식시장은 유동성이 과잉 상태”라며 배당주·경기방어주 중심의 방어적인 투자 전략을 권한 바 있다.
이선엽 AFW파트너스 대표이사는 “올 하반기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 증시가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보편 관세의 영향으로 6~7월께 물가지수가 급등해 국채금리가 주식시장의 단기 조정을 유발하는 트리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