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조(兆) 단위 증자를 추진 중인 대기업을 비롯해 유상증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사들이 급증하자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주주가치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가 높아진 만큼 주주 반발에 부딪히거나 금융 당국의 심사를 넘지 못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온다. 다만 일부 유상증자는 오히려 주가가 오르면서 증자 규모가 늘어나는 등 반대 사례도 관찰된다. 이른바 착한 유증과 나쁜 유증이 따로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유상증자는 신주를 발행한 뒤 주주나 제3자 등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자산을 늘리는 것으로 대표적인 자금 조달 방법으로 꼽힌다.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만큼 악재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자금 조달 목적이나 증자 방식 등에 따라 악재와 호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자금 조달 목적이 시설 자금이나 타법인 증권 취득 자금 등일 경우엔 신규 투자를 늘리는 것인 만큼 기업 가치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운영 자금과 채무상환 자금 등일 경우엔 기업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악재로 여겨진다.
주목할 것은 최근 나타나는 조 단위 대규모 유상증자는 대체로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로 논란이 됐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오르면서 유상증자 규모가 2조 3000억 원에서 2조 9000억 원으로 6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당초 3조 6000억 원이었던 유상증자 규모를 주주 가치 훼손 논란에 크게 줄였으나 1차 발행가액 기준으로 다시 확대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유상증자 발표 직후인 3월 21일 62만 8000원까지 하락했다. 그러다 지난달 27일 88만 7000원까지 상승하면서 완전히 되살아났다. 유상증자 규모를 축소하면서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영향이다. 이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시가총액은 일시적이나 KB금융을 제치고 유가증권시장 5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최종 발행가액은 구주주 청약 3거래일 전인 6월 26일 주가를 기준으로 다시 정해질 예정이다.
1조 1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낸 포스코퓨처엠도 금융 당국의 심사를 넘었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골자로 한 자금 세부 사용 계획, 사업 위험성 등 정보를 추가 기재한 유상증자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정정 신고서를 통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양극재 생산 합작법인 얼티엄캠에 투입할 3534억 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생산 설비, 토건 공사 비용 등) 등을 추가로 기술했다.
다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나 포스코퓨처엠처럼 사용 목적이 확실한 기업이 아니라 자금 활용 목적이 불확실한 곳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분석한 결과 올해 2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상장사들이 발표한 유상증자는 16건이다. 이 가운데 주주 권익 훼손 우려가 있어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14건이다. 중점심사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증자 결정 배경, 논의 절차, 효과 등을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문제는 중점심사 14건 중 12건이 한계기업이었다는 것이다. 3년 연속 재무실적이 부실하거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등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인 기업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번 돈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태인 기업들이 은행 대출이 막히자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선 셈이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면서 증자 당위성이나 한계기업 투자위험, 주주소통 절차 등과 관련한 보완이 이뤄졌다.
금감원은 유상증자 관련해 최후의 보루 역할을 맡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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