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 경기 연천군 청산면에서 전국 최초로 도입한 ‘농촌기본소득’이 지역 소비 활성화 등에서 일정 수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기본소득을 전국으로 확대해 지방소멸 등에 대응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 부담, 병원·음식점업 등 일부 업종으로의 매출 쏠림 등 한계도 뚜렷해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경기도 공공 데이터 플랫폼 ‘경기데이터드림’에 따르면 농촌기본소득 지급 첫해인 2022년 6월 기준 67곳이던 청산면 내 일반음식점은 올해 6월 기준 79곳으로 3년간 약 18% 증가했다. 특히 2022년 5월 농촌기본소득 지급 이후 새롭게 문을 연 식당은 16곳에 달했고 폐업한 식당은 4곳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서점을 결합한 카페까지 생겨났다.
청산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호 사장은 “기본소득이 지급된 후 지역 주민들이 카페에 와서 커피도 마시고 빵도 사먹는 등 소비가 늘어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면서 “청산카드(지역화폐) 결제 비중이 전체 손님의 30~40%에 달할 정도로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농촌기본소득 시행 이후 청산면 내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등록한 업소는 총 109곳에 이른다.
청산면에 사는 지역 주민이면 1인당 매달 15만 원씩이 지급되다 보니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특별한 일자리가 없는 60세 이상 주민들에게 15만 원만 해도 생계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청산면의 60세 이상 인구는 2069명으로 전체 인구(4011명)의 52%에 이른다. 청산면에 거주하는 이해순(82) 씨는 “80세 넘은 노인들에게 15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라며 “이 돈이 있어야 병원도 가고 약도 사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구소멸을 막는 데도 일정 수준 효과를 내고 있다. 2021년 3895명이던 인구는 현재 4011명으로 3%가량 늘었다. 다만 제도 도입 직후인 2022년 반짝 증가세를 보이다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고령화 등 농촌의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거세다. 필수 소비처인 병원·약국을 비롯해 일부 식당을 제외하면 상권 자체가 살아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주민들의 목소리다. 실제 미용실의 경우 농촌기본소득 지급 첫해인 2022년 3월까지만 해도 청산면에 4곳에 달했지만 3년이 흐르면서 현재 1곳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미용실에 가기 위해 다른 읍면동을 들리거나 동두천시까지 나가야 한다. 연천군 전체 면적의 98%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군내 종업원 50인 이상 사업체는 농협 김치 공장이 유일하다.
농촌기본소득의 사용처가 병원과 약국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집을 직접 운영하는 추인수(75) 씨는 “노인들이 병원이나 약국에 주로 청산카드를 써서 식당에서는 하루 한두 명 정도 사용한다”며 “기본소득 지급일에는 지역화폐 사용이 조금 몰리고 며칠만 지나면 다시 한산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전국에서 청산면 한 곳에서만 시범사업으로 시행되다 보니 지역 내 형평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청산면이 아닌 연천읍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명엽 씨는 “살림살이는 비슷한데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으면 역차별이 아니냐”고 토로했다.
재정 부담 역시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청산면 농촌기본소득은 경기도와 연천군이 7대3 비율로 예산을 분담하고 있는데 연간 투입되는 예산 규모만 68억 원에 달한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처럼 전국의 다른 인구소멸지역으로 확대 시행될 경우 지속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청산면 사례가 농촌소멸 위기 극복의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근본적 성장 동력 확보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촌에 산다고 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인원을 선별하면 그것대로 비용이 발생한다”면서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청은 농촌기본소득의 상권 활성화 등 객관적 지표를 확인하는 대로 경기도 내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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