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벤처 투자 시장이 지난해보다 더욱 위축되면서 여전히 국내 스타트업들이 투자 보릿고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창업 3년 이내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 금액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시장에 뿌리내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인공지능(AI) 등 핵심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마저도 전체 투자금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돼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성장 엔진이 식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9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체 신규 벤처 투자 금액은 2조 180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 감소했다. 약 1300억 원 수준의 투자금 감소가 이뤄진 것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스닥 등 회수 시장 위축과 대내외 경제 부진 상황이 지속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더욱 뼈아픈 부분은 벤처캐피털(VC)들이 창업 3년 이내의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5월 기준 초기 스타트업들이 유치한 누적 투자 규모는 351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5324억 원보다 34% 감소했다. 또 월별로도 올해 2월을 제외하고는 매월 전년 동월 대비 20~30% 감소한 수치를 보였다. 투자금 감소로 인해 초기 스타트업들의 성장이 막히면 장기적으로는 벤처 생태계 선순환 구조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투자를 유치한 전체 벤처·스타트업의 수도 대폭 감소했는데 이는 투자 환경 악화와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5월 기준 투자를 유치한 누적 스타트업 수는 854곳으로 지난해 1095곳보다 22% 감소했다. 전체 투자 금액과 함께 투자 유치 스타트업 수도 줄었다는 것은 일부에만 투자가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투자 유치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익이 나지 않거나 상장 계획이 불확실한 곳에는 VC들이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VC 심사역은 "VC 업계에서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투자 건수를 늘리기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큰 규모를 투자하자는 기조가 강한 상황”이라며 “투자 재원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투자 건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로는 콘텐츠 분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투자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AI와 클라우드 스타트업 등이 포함된 ICT 분야마저 투자 위축의 파고를 피하지 못했다. 올해 5월 기준 ICT 분야 누적 투자 금액은 719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8901억 원보다 19% 감소했다.
벤처 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벤처 투자 시장이 위축된 요인으로 코스닥 등 회수 시장 부진과 벤처 투자 관련 규제 등을 꼽았다. 올해 새 정부 출범 이후 벤처 투자 시장에 대규모 예산이 풀리고 각종 규제에 대한 해소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벤처 투자 심리는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윤건수 DSC인베스트먼트(241520) 대표는 “벤처 투자 금액이 줄어든 배경으로는 회수 시장 부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최근 들어 AI 등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며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VC들이 투자 방향을 재조정하는 과정이었던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벤처 투자 확대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회수 시장 활성화와 벤처 투자 재원의 확대”라면서 “최근 들어 코스닥 등 증시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고 위험가중자산(RWA) 완화 등 각종 규제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만큼 하반기부터는 VC들도 적극적인 투자 행보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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