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글로벌 제조 도메인(영역)에서 9650조 원의 추가 가치가 더해지며 4경 5000조 원 규모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이 새로운 제조업 판에서 주도권을 갖기 위해 반도체를 중심으로 생태계를 육성하고 인공지능(AI) 기반을 다져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백종문 PwC컨설팅 파트너(전무)는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 창간 65주년 기념행사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제조업의 구조적 혁신을 통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본지는 PwC컨설팅과 저성장 극복을 위한 첨단 제조업 육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넥스트 레벨 첨단 제조업’ 공동 기획 시리즈를 7월 중 세 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백 전무는 이날 ‘제조업의 구조적 전환’을 주제로 기획 기사가 짚은 내용을 실제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설명했다.
PwC컨설팅은 현재 제조업과 금융업·운송업 같은 구분이 연관 산업과 합종연횡하며 △제조(make) △건설(build) △돌봄(care) △식음(feed) △이동(move) △연료·동력(fuel&power) 등 6대 도메인으로 재편되는 ‘밸류 인 모션(Value in Motion, 가치 이동)’이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단일 기업이 자기 영역만 고집하기보다는 관련 생태계의 여러 기업이 뭉칠 때 시너지가 나타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밸류 인 모션의 기본 개념이다.
백 전무는 “자동차 회사가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회사로 거듭나 주유비나 차량 유지보수 비용을 결제하는 앱 기반 뱅킹까지 담당하는 등 기존 산업이 연계해 업(業)의 본질이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독일 ‘카테나X’를 이 같은 도메인 변화 모델로 짚었다. 독일 BMW와 폭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 등 자동차 회사는 화학 기업과 소프트웨어 개발사, 부품 공급사, 물류 회사, 통신사, 연구소 등과 더불어 ‘카테나X’라는 이름으로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업한다. 독일 기업뿐 아니라 화웨이와 AWS 같은 외국 기업도 연대해 제조부터 배송에 이르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과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여러 모델을 만들고 있다.
백 전무는 제조 기반이 풍부한 한국이 탄탄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 같은 성공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모든 도메인에서 적용이 가능한데 한국 역시 ‘세미콘X’같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업그레이드를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make) 도메인은 가장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영역이다. 특히 반도체는 제조 도메인의 핵심이면서 다른 도메인에도 영향을 미치는 가장 파급효과가 큰 산업으로 지목됐다. 그는 “스마트팩토리(제조)부터 디지털트윈·스마트시티(건설), 농업용 드론(식음),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돌봄), 자율주행 차량(이동), 에너지 절감(동력) 등 6대 도메인 모든 분야에 반도체가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중심의 기업 간 동맹과 네트워크화가 첨단 제조업 육성의 원동력이 되고 국가 경제를 지탱할 핵심이라는 얘기다. 다만 한국 반도체가 지나치게 메모리에 편중된 점은 약점이다.
지난해 국가별 반도체 시장점유율(매출액 기준)에서 한국은 1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팹리스(반도체 설계)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같은 비메모리 분야는 2%에 불과해 미국(46%)과 일본·대만(6%)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미약했다. AI 혁명 속에서 연산 능력과 데이터의 힘이 커지는 만큼 비메모리 시장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백 전무는 “빅테크들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며 파운드리 잠재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며 “수율만 확보할 수 있다면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또 영세한 국내 팹리스를 육성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AI 역시 제조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에이전틱 AI는 제조 경쟁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요소다. 백 전무는 “e메일·보고서 작성 등 단순 업무만 돕던 AI가 모든 업무를 대행하고 복합적인 의사 결정을 실행한다”며 “휴머노이드 같은 피지컬 AI로 발전하면 사람 업무를 60~90% 줄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빠른 추격자로 경제성장을 일궈왔지만 중국의 성장과 산업의 재편으로 제조업의 새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 전무는 “퍼스트무버(선도자)로 가기 위해 과감한 비즈니스 모델 전환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국가 차원에서 이 같은 구조 개편을 지원할 제도 마련과 인력 양성, AI 보급에 힘쓴다면 한국은 첨단 제조업 강자로 도약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백 전무는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한 또 하나의 퍼즐로 바이오를 제시했다.
PwC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바이오 시장 규모는 2조 4000억 달러로 반도체 시장(7000억 달러)을 웃돌았다. 2030년에는 3조 3000억 달러로 성장 가능성 또한 높다. 백 전무는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반도체의 3배가 넘고 매년 5~6% 높은 성장률을 보이지만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은 전 세계 시장의 0.6% 정도로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세계시장에 명함도 못 내밀던 한국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새 전환점이 됐다. 그는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이 백신 개발과 제조 경쟁력을 보여주며 글로벌 시장에서 조명받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가운데 우호적 환경 또한 전개되고 있다. 신약 개발은 1조~2조 원의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들어가고 제품 출시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지난함 때문에 로슈나 화이자 같은 빅파마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내는 시장이다. 그러나 대형 신약의 특허 만료가 2026~2028년 잇따르며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시장이 열리고 국내 기업에 기회가 생긴다고 백 전무는 분석했다.
한국이 제조 경쟁력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디지털 기반 생태계로 바이오 산업을 업그레이드한다면 시장 주도권도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백 전무는 “AI를 활용하면 신약 개발 비용이 5분의 1 수준까지 줄고 속도도 기존의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다”며 “디지털 접목만 잘 한다면 한국이 도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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