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에 이바지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 ‘레지옹 도뇌르(영광의 군단)’를 수훈했다. 수십 년 경력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야 하는 ‘오피셰(장교)’ 등급을 받은 사례는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이 총장이 처음이다.
이 총장은 11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훈장 수여식에 참석해 필립 베르투 주한프랑스대사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오피셰를 전달받았다. 이 총장은 “45년 전 프랑스의 장학 지원으로 학문과 삶의 큰 기회를 얻은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제 KAIST 총장으로서 양국 간 우정과 협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인류의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KAIST가 추구하는 오픈 사이언스(열린 과학)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과 프랑스, 더 나아가 국제사회와 함께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글로벌 연구 협력을 더욱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레지옹 도뇌르는 군사·학문·문화·과학·산업 등 각 분야에서 프랑스와 국제사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제정한 후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와 페니실린 발견자 알렉산더 플레밍 등 과학자는 물론 정치·외교·문화 분야에서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과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레지옹 도뇌르는 슈발리에(기사), 오피셰, 코망되르(사령관), 그랑 오피셰(대장군), 그랑크루아(대십자) 등 5개 등급으로 나뉜다. 슈발리에만 해도 20년 이상의 업적이 인정돼야 받을 수 있으며 오피셰를 받으려면 이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오피셰를 받은 한국인 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창동 영화감독,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 김수자 작가 등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7월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를 수훈했다.
이 총장은 학술·과학적 성과와 양국 간 긴밀한 협력 관계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프랑스 리옹국립응용과학원 출신으로 현지 장학 지원을 받았다. 2021년 2월 KAIST 총장 취임 후 에콜폴리테크닉을 비롯한 프랑스 대학·연구기관과 공동 프로젝트와 학술 교류를 확대하는 등 연구와 혁신 분야에서 오랫동안 양국 협력을 주도했다. 미국 뉴욕대와의 인공지능(AI) 연구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실리콘밸리 캠퍼스를 확보하는 등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을 넓히는 데도 이바지했다.
KAIST는 이번 수훈을 계기로 프랑스와의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와의 공동 연구와 인재 교류까지 확대해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의 대표적 모델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베르투 대사는 “이 총장의 탁월한 학술·과학적 성과에 경의를 표하고 양국 협력 증진과 국제 파트너십 강화를 통해 보여준 미래지향적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를 계기로 양국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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