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분기별로 공개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조치 내역이 앞으로는 매달 미국 재무부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변경된다. 미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조금 더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환율은 시장에 맡겨 결정한다는 게 양국의 기본 원칙이지만 우리로서는 시장 개입 여지가 줄어드는 셈이어서 외환 변동성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일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이 같은 내용의 환율 정책 합의문을 발표했다. 미국이 환율 합의를 완료한 나라는 일본과 스위스에 이어 우리나라가 세 번째다. 환율은 앞서 4월 미국에서 이뤄진 ‘2+2 통상 협의’에서 미국의 요청으로 통상 협의 의제에 포함된 후 관세 협상과는 별개로 논의돼왔다.
이번 합의는 양국 정부가 수출 경쟁에서 부당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합의문에도 ‘효과적인 국제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환율 또는 국제 통화 시스템을 조작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명시됐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는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올 6월 환율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환율 조작국보다 낮은 단계인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문은 미국과 환율 정책의 기준을 서로 정한 것”이라며 “이 정도만 지키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양국이 공유하는 정보를 늘리기로 한 것도 눈에 띈다. 정부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외환 당국이 외환시장에서 실시한 외환 순거래액을 분기별로 대외에 공개하고 있다. 앞으로 이 시장 안정 조치 내역을 월 단위로 미국 재무부에 공유하기로 했다. 단 월별 내역은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한미 정부 간에만 공유하게 된다. 공개 주기가 짧아진 데다 사실상의 감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변동환율제이기 때문에 환율 수준을 정해놓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수준에 머물도록 개입은 한다”며 “월별로 공개한다는 것은 중간에 구간 단속을 늘리겠다는 것이니 정부의 시장 개입 여지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행 부총재를 지낸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양국이 정보를 서로 공유하게 된 것은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로 양측 모두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양식에 따라 월별 외환보유액과 분기별 선물환 포지션을 공개하고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 구성 정보도 대외 공개하기로 했다. 이 내역들을 언제부터 공개할지, 얼마의 기간을 두고 공유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양국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한편 정부는 이번 합의문에 양국 재무 당국이 외환시장의 ‘안정(stability)’을 모니터링한다는 표현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안정’이라는 표현은 앞서 발표된 일본과 스위스의 대미 환율 합의문에는 담기지 않은 표현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도 한국 외환시장의 안정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협의를 해달라는 것을 요청했다”며 “다른 나라와의 합의문에는 없지만 한국에는 ‘안정’이 담겼으니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협의를 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