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병원 직원이 23차례나 진단서를 위조해 수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받았다. 의사·간호사와 같은 의료계 종사자나 보험설계사들의 조직적 보험 사기가 갈수록 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이들이 가담한 사건의 양형 기준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높이면서 보험 사기 근절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보험 업계에서는 법적 처벌 수위 강화와 함께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통해 지능화되는 조직적 보험 사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법조계와 보험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지난달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병원 원무과 직원이던 A 씨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병원 전산 프로그램에 접속해 이미 발급된 타인 명의의 진단서에 자신의 인적 사항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총 23차례에 걸쳐 진단서를 위조했다. 그는 위조된 진단서를 보험사에 제출해 5400만여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그는 서울 강서구의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이 같은 범행을 이어가다 진단서상 병록번호 이상을 확인한 보험사에 덜미를 잡혔다.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실형을 면하지 못했다.
A 씨는 집행유예를 처분받았지만 앞으로 A 씨처럼 의료·보험업 종사자가 보험 사기에 가담할 경우 최고 무기징역의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 3월 보험 사기 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한 사기범죄 양형 기준 수정안을 의결하고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보험 사기 범행에서 의료·보험 전문직 종사자가 직무수행의 기회를 이용해 범행한 경우 가중적 양형 요인으로 반영되고, 권고 형량 범위도 최고 무기징역까지 상향했다. 또 사기 범행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거나 실행을 지휘한 경우 집행유예의 부정적 참작 사유로 반영된다. 다만 A 씨의 경우 지난해 말 기소된 사건으로 새로운 양형 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했다.
경기 불황과 맞물려 보험 사기는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5120억 원이던 보험 사기 적발 금액은 지난해 1조 1502억 원으로 10년 새 두 배 넘게 급증했다. 보험연구원은 보험 사기로 인한 누수 보험금 규모만 연간 8조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병원과 설계사까지 가담한 조직적 보험 사기의 경우 적발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금감원이 최근 2년 새 보험 사기 적발 인원을 직업별로 따져본 결과 보험업 종사자(13.2%)와 병원 종사자(8.5%)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앞서 경기도 안성의 한 내과의원은 보험설계사 출신 사무장이 환자와 짜고 231차례에 걸친 허위 입원을 통해 2억 5000만 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혐의로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검찰·경찰·금감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계기관들로 꾸려진 ‘정부합동 보험범죄 전담대책반’을 만들어 유기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 사기는 병원과 환자, 브로커, 설계사, 폭력조직까지 연루된 조직적이고 지능화된 범죄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병원 종사자의 보험 사기 가담 사례가 끊이질 않자 지난달부터 성형외과·피부과가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보험 사기 근절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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