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양대 주주인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은 사업 재편 계획 제출을 앞두고 이달 들어 계속 실랑이를 벌여왔다. 양 사는 여천NCC 3공장을 폐쇄하는 쪽으로 큰 틀의 논의를 이어왔는데 DL케미칼이 돌연 3공장 대신 1·2공장 중 하나를 가동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가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설비 감축을 여천NCC 구조조정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사업 재편 함수가 더 복잡해졌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롯데·DL·한화·여천NCC 등 4개사가 사실상 한국산업은행에 사업 재편의 키를 내주는 구조조정 방안에 합의한 것은 이대로라면 적기에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해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은은 구체적인 재편안을 제출하지 않으면 금융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들 업체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당사자들 간 교통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자금줄을 끊는 일도 불사하겠다는 게 정부와 산업은행 입장”이라면서 “기업들은 어떤 설비를 정리할지에 대해 시간을 두고 논의할 테니 우선 금융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4개사는 우선 여천NCC 3공장을 폐쇄하고 외부 컨설팅을 받아 공장 한 곳을 추가로 구조조정하는 ‘1+1’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감축 대상에는 여천NCC 1·2공장뿐만 아니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도 후보군으로 올려두기로 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산업은행이 추가 폐쇄 공장을 선정하는 데 참여하기로 한 점이다. 산은은 4개사가 자구안이 담긴 금융 지원안을 다음 달 초에 제출하면 채권단협의회 논의를 거쳐 기존 채무를 유예한다. 이후 산은이 직접 실사에 나서 외부 컨설팅 업체와 함께 추가로 가동을 중단할 공장을 내년 1분기 내 선정한다. 4개사는 이 결정을 준용해 설비 폐쇄나 생산 감축을 최종 결정하게 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자금줄을 쥔 산업은행과의 신뢰가 걸린 문제라 어느 기업이든 산업은행과 컨설팅 결과에 반발하거나 계약을 미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석화 구조조정을 계속해서 질질 끌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정부 내에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1차 구조조정 방향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통합 법인 아래 재편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구조조정에 따른 생산 감축 규모가 100만 톤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폐쇄가 확정된 여천NCC 3공장의 생산량만 연산 47만 톤에 달한다. 여천NCC 1공장(90만 톤)과 2공장(91만 5000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123만 톤)도 각각 연산 100만 톤 규모의 물량을 생산한다.
4개사는 신설 통합 법인의 재무구조를 안정화할 자구책을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통폐합 과정에서 기존 공장 가동을 멈추면 손상차손이 발생해 부채 비율이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이 기존에 보유한 차입금이 통합 법인으로 넘어가는 점도 재무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부채 비율 상승에 맞물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통합 법인이 시장에서 운영 자금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천NCC의 신용등급은 ‘A-(부정적)’로 추가 강등이 이뤄지면 A급 지위를 잃게 된다.
이에 4개사는 영구채 발행과 증자, 자금 대여 등을 포함한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각의 수단을 통해 마련하는 자금은 실사 후 최종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DL케미칼과 한화솔루션은 여천NCC와 관련해 원료 공급계약 후속 방안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다. 원료 공급 가격 계약은 여천NCC의 원가 구조와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계약이다. 여천NCC는 DL과 한화에 연간 2조 5000억 원 규모의 에틸렌과 프로필렌 같은 석유화학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앞서 양측은 기준 물량을 별도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가격 조건을 확정했지만 초과 생산 물량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마다 설비 교체와 시설 폐쇄로 인해 떠안게 되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채권단이나 금융 당국의 생각처럼 구조조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기업들 사이의 합의가 끝까지 유지되느냐가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최종 변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수 산단만 해도 4개사가 최종 합의에 도달했지만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약속이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료 인하 같은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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