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이 동원산업(006040)의 미국 자회사 스타키스트를 동원F&B로 2조 원에 매각한다. 산업은행 지분만 6조 원 규모인 HMM(011200) 인수합병(M&A)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계열사 내부거래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HMM 매각이 공식화하기 전부터 본격적인 인수전에 막이 오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동원산업은 미국 100% 자회사인 스타키스트 지분 전량을 약 2조 원에 그룹 계열사인 동원F&B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키스트는 미국에서 참치캔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 8872억 원, 영업이익 1150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기업가치는 2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동원F&B는 자체 자금과 함께 스타키스트 지분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일으킬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동원F&B가 대출로 1조 5000억 원 전후를 끌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담보인정비율(LTV) 기준 약 70% 수준이다.
동원산업이 스타키스트를 매각하는 것은 M&A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강하게 인수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고배를 마셨던 HMM 인수에 재도전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으로 여겨진다. 동원산업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연결 기준 2024년 말 5367억 원에서 지난해 3분기 7386억 원으로 늘어났다. 동원그룹은 지난해 말 그룹 차원에서 HMM 인수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도 했다.
앞서 효성그룹 역시 효성화학 특수가스사업부 매각이 난항을 겪자 계열사인 효성티엔씨에 약 9000억 원에 매각한 바 있다.
동원그룹은 동원산업을 통해 신규 M&A를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M&A·투자 담당팀은 지난해까지 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미주 등을 돌며 다양한 부문에서 신사업 기회를 물색해왔고 물류·식품·소재 등 3개 분야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정했다. 특히 미국 현지 M&A를 목표로 여러 잠재 매물을 검토 중이다.
동원, 양재동 빌딩 유동화도 고려
동원그룹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위해 조 단위 실탄 마련에 나서면서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을 향한 인수 후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HMM 매각전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함에 따라 국내 해운 업계의 지형도 역시 크게 요동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B 업계에 따르면 연초 해외 출장길에 올랐던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은 이날 복귀해 조만간 신사업·투자 담당 임원들로부터 올해 그룹 M&A 전략에 대한 보고를 받을 계획이다. 동원그룹은 지주사인 동원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현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HMM 인수전을 철저히 대비하는 한편 식품·물류·소재 등 3대 핵심 분야에서 대대적인 신사업 투자를 단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외 자회사 스타키스트를 동원F&B에 매각하려는 움직임 또한 이러한 전략적 결정의 일환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동원산업의 연결 현금성 자산은 7386억 원 수준이지만 스타키스트 매각이 성사되면 일시에 2조 원에 달하는 현금을 추가로 손에 쥐게 된다. 여기에 서울 강남구 양재동 대형 빌딩 등 부동산 자산의 유동화 카드까지 고려하면 그룹 전체의 추가 자금 조달 여력은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성자산 총동원해 인수 재도전
이날 기준 HMM의 시가총액은 18조 7610억 원에 달한다. 만약 경영권 매각이 본격화되면 한국 M&A 역사상 가장 치열한 ‘쩐의 전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매각 측이 산업은행 지분 등 일부만 내놓더라도 최소 6조~7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HMM 지분은 산업은행이 35.42%, 해양진흥공사가 35.08%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말 HMM 주식에 대한 공정가치 평가 실사에 다시 착수하면서 업계는 이미 매각을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의 매각 의지는 지난해 취임한 박상진 회장의 언급에서도 확인됐다. 박 회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HMM의 민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매각 속도전을 예고해왔다. 최근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인사이동이 마무리된 만큼 이들은 조만간 정부 측과 만나 세부적인 매각 전략을 수립할 것으로 전해졌다.
SK해운·현대LNG 매각 향방 주목
국내 해운 업계도 HMM의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HMM은 유조선, 벌크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중소 해운사 매물이 나올 때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돼왔다. 그만큼 HMM의 새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업계 재편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매각이 추진되고 있는 현대LNG해운과 잠재 매물인 SK해운 역시 HMM이 언제든 다시 흡수할 수 있는 후보군으로 꼽힌다.
현재 현대LNG해운은 인도네시아 시나르마스그룹과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지난해 HMM과 경영권 매각 협상을 했던 SK해운은 주요 선박을 분할 매각하고 있다. SK해운의 최대주주인 한앤컴퍼니가 다시 HMM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일각에서 국적 선사의 해외 매각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업계의 관심은 HMM의 새로운 대주주 지위를 누가 차지하고 또 후속 M&A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에 쏠리고 있다.
포스코, TF 꾸려 시너지 여부 검토
다가올 HMM 인수전을 앞두고 후보군 간 물밑 경쟁 또한 한층 격화될 조짐이다. 현재까지는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동원이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동원은 2023년 첫 번째 인수전에서도 강한 의욕을 보였으나 하림에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내준 바 있다. 당시 하림과 매각 측의 협상이 최종 좌초되며 다시 기회가 찾아온 만큼 동원은 이번에는 철저한 사전 대비로 승기를 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포스코라는 거함이 새 경쟁자로 등장한 것도 동원의 행보를 더욱 재촉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지난해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자금 조달과 사업 시너지를 면밀히 검토해왔다. 자산 규모와 현금 여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포스코는 실제 입찰이 진행되면 강력한 인수 후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에 대한 반발과 정치적 인수 시도라는 비판적 시각은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팬오션 등 주요 계열사를 보유한 하림 역시 여전히 위협적인 경쟁사다. 특히 하림은 최근 양재동 물류 단지 착공에 다가서며 더욱 넉넉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필요할 경우 강력한 우군으로 꼽히는 호반그룹과 연합전선을 꾸릴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라는 평가다.
해운업계 지각변동 본격화 전망
전문가들은 다가올 인수전의 승패가 단순히 높은 가격 제시를 넘어 안정적 자금 조달 능력을 증명하는 데 달려 있다고 짚었다. 지난 인수전에서 하림의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한 의구심으로 최종 협상이 결렬된 만큼 매각 측은 후보들의 재무 건전성과 장기 해운업 육성 의지를 더 엄격하게 따질 것으로 예상된다. 매각 측의 한 관계자는 “자금 조달 능력이 충분한 장기 투자자를 인수 후보로 고려할 것”이라며 “정부와 심도 있는 검토를 거친 뒤 정식 매각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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