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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 김창수 원더스 대표] "퀵서비스에 AI·IoT 접목"...물류혁명 꿈꾸는 카이스트 출신 CEO
산업 IT 2017.01.09 11:53:39“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하면 경쟁이 치열한 전통산업(레드오션)에서도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기술 기반 창업자로서 수십년간 혁신이 없던 퀵서비스 분야를 개척해 정보통신기술(ICT)과 O2O(온라인과 오프라인 결합)를 결합한 차별화된 신개념 B2B(기업 간 거래) 물류회사로 만들겠습니다.” 단돈 5,000원에 서울 전 지역 거리와 상관없이 3시간 내 물건을 배송하는 퀵서비스 업체 원더스의 김창수 대표는 최근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같은 정보기술(IT) 시장에는 이미 그 분야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직접 그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우회해서 전통시장에 적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대표는 KAIST에서 학사와 석사를 따고 연세대 MBA를 거쳐 영국 샐퍼드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LG화학과 LG전자를 거쳐 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원 팀장, SK텔레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실 팀장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임원 승진 대신 전통 퀵서비스 업계에 뛰어들어 신개념 물류회사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배달 등 O2O 업계에서 화제를 뿌리고 있는 ‘배달의 민족’ 연구소장 출신인 이진복씨도 이 회사의 최고기술경영자(CTO)로 영입했다. 공동창업자이면서 영업 전반을 맡고 있는 정현봉 운영본부장 역시 LG전자 마케팅팀장과 상품기획그룹장 출신이다. 한경진 마케팅본부장도 삼성SDS 등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이 회사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택배·모텔·배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업체들이 있듯이 퀵서비스 하면 원더스를 떠올리고 나아가 새로운 물류시장을 개척하는 브랜드로 키울 것”이라고 창업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서울 전 지역 가격 단일화를 시행하고 전속 배달기사를 채용하는 등 퀵서비스 업계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창업 1년도 안 돼 이미 수천 개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으며 빅데이터와 AI를 이용한 배달 관제, IoT를 활용한 원클릭 배송주문 등의 서비스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의 비용절감, 서비스 차별화 요소 등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거래처를 늘리고 있다. 실제 한국화이자와 한국콜마 등이 원더스와 거래하며 기존 퀵서비스 비용을 40~45% 줄이고 있다. 포토북·사진인화 업체 퍼블로그나 중고 핸드폰 판매사인 착한텔레콤 역시 당일 배송 마케팅 전략으로 경쟁력을 대폭 키웠다. 대형 온라인쇼핑몰이나 이동통신사, 소셜커머스, 중소 온라인몰 등과의 계약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당일배송은 5,000원이지만 1박2일 택배 방식을 택하면 2,500원으로 할인해준다. 최근에는 SK플래닛의 11번가와 110분배송이라는 이벤트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전속기사만도 50여명을 두고 있으며 조만간 20명가량을 추가로 채용할 방침이다. 김 대표는 “최근 온라인몰·소셜커머스 등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물류를 대부분 택배사가 담당해 다음날 배송된다”며 “원더스의 3시간 이내 배송 시스템을 도입하고 ‘귀가 이후 배송’ ‘원하는 시간 배송’ ‘원클릭 배송’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하면 거래처들의 경쟁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달·온라인쇼핑 시장 성장 등으로 사람이 이를 모두 처리하고 관제할 수 없어 인공지능 등 첨단기법 도입에 나섰다. 그는 “상반기 중 물량 관제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본격 도입해 효율성을 대폭 높일 것”이라며 “앞으로는 주행 패턴, 지형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인공지능이 관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혁신에 힘입어 IT인프라 관리 소프트웨어사인 브레인즈스퀘어와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전문엔젤투자자로부터 6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벤처캐피털과도 투자유치 협상을 벌이고 있다. 김 대표는 앞서 퀵서비스와 택배회사에 각각 취직해 현장경험을 쌓았다. 가족들의 반대는 물론 동료들에게도 ‘이상한 놈’이라는 시선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서울 곳곳에 퀵배달을 다니고 택배트럭을 몰며 지역 지형이나 물류 시스템을 익혔다. “기존에 종사하셨던 분들은 그 업종에 파묻혀 있습니다. 외부에 있는 사람이 그 업계에 들어가 컨설팅을 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두 달을 직접 경험해보니 뭘 바꿔야 할지, 뭘 혁신해야 효율이 오를지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저렴하고 단일화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사들도 안정적이고 높은 임금을 받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기존 기사들이 4~5대의 휴대폰을 오토바이 앞에 놓고 일거리를 받아 전 지역을 임의로 돌던 방식을 조직화·시스템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는 “기존 업계는 소비자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지만 기사들은 월 200만원도 못 받는 구조였다”면서 “오토바이 퀵과 지하철 배송을 결합해 기사와 소비자의 윈윈 방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고 기존 업계가 단순히 단가경쟁을 한다고 오해해 기사들이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270만원 수준의 안정된 월급을 보장하고 잔업수당이나 추석 선물 등 복지를 챙기면서 기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시작할 때는 ‘공공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베테랑 기사들까지 함께 해보자며 모여들고 있다”면서 “기사들이 동료의식·소속감 등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효율성도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프리미엄 모델도 내놓고 백화점·고급숍 등에도 어필할 방침이며 AI·IoT·빅데이터 기법을 적극 적용하고 거래처도 계속 늘려 하루 1만콜의 전화를 받는 게 올해 목표”라면서 활짝 웃었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70년 대구 △1994년 KAIST 산업디자인학 학사 △1996년 KAIST 산업디자인학 석사 △1996년 LG 생활과학연구소 감성공학디자인 선임연구원 △2000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선임연구원 △2003년 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원 팀장 △2004년 연세대학교경영대학원 MBA △2010년 SK텔레콤 마케팅커뮤니케이션실 팀장 △2011년 영국 샐퍼드대 디자인매니지먼트 박사과정 수료 -
85세 美 사업가 피니, 35년간 9조 익명기부…마지막 재산도 사회에
사회 피플 2017.01.06 16:12:4035년간 9조원을 익명으로 기부하고 정작 자신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한 미국인 사업가가 지난해 말 마침내 전 재산 기부 약속을 지켰다. 주인공은 ‘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로 불렸던 찰스 F 피니(85·사진). 그는 지난해 말 700만달러(약 83억원)를 대학에 기부함으로써 마지막 재산의 사회 환원을 마쳤다.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간) 피니가 모교인 코넬대에 학생들의 지역사회 봉사 후원금을 내놓았으며 ‘살아 있을 때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한 그의 소원도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피니는 1982년부터 익명으로 기부활동을 해왔으며 지금까지 약 9조5,000억원의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익명을 고집한 그의 기부활동이 외부로 알려진 것은 그의 사업체가 분규에 휘말리면서 회계 장부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장부 조사 과정에서 엄청난 기부 명세가 드러난 것이다. 아일랜드계인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항면세점 체인을 설립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1984년 면세점 체인 지분 38.75%를 포함해 전 재산을 자신이 설립한 ‘애틀랜틱재단’에 넘겼다. 재단 재산은 그가 투자한 페이스북·알리바바 등 신생 정보기술(IT)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크게 불어났다. 피니는 평생 기부에도 약 5년 전인 81세 때 남은 재산이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에 달하자 이를 2016년까지 모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기부로 그는 공식적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거액을 다룰 때는 항상 불안하다. 그렇지만 그 일을 꽤 잘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함께 사는 그는 호화 생활과 거리가 멀다. 여행할 때 버스를 타고 비닐 가방에는 항상 책 한 권을 넣고 다닌다. 뉴욕에 살 때는 맨해튼 변두리의 허름한 식당에서 햄버거를 즐겼다. 피니의 기부금 중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는 5개 대륙 1,000여개 기관에 전달됐지만 이 중 어느 곳도 벽이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그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체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중 운영자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돈을 대학·병원·사회단체 등에 보냈다. 1990년에는 북아일랜드 독립운동 단체인 신페인당에 기부했는데 무장투쟁을 접고 선거 정치를 수용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베트남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치료기금을 보냈으며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를 바란다며 개발도상국의 젊은 지도자들을 성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최태원·재원·창원 SK家 사촌3형제 '고액기부 클럽' 가입
산업 기업 2017.01.02 11:37:5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사촌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새해 첫날 개인 고액기부 클럽에 나란히 가입했다. 2일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 등 SK가(家) 사촌 3형제가 2일 ‘아너 소사이어티’에 2017년 1∼3호 회원으로 나란히 가입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이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지난 2007년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것을 고려하면 SK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SK가의 사촌 4형제가 모두 개인 고액기부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고 SK그룹은 설명했다. 최신원 회장, 최창원 부회장은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과 사촌 형제간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최고경영진 3인의 이번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은 기업인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솔선수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SK그룹은 지난해 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관한 이웃사랑 성금으로 120억원을 기부하는 등 매년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
2016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 사라진 여성들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16.12.23 18:08:42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개선이 되고 있다지만, 포춘 500대 기업의 여성 CEO 수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많은 여성 CEO들이 연임 기회를 얻지 못하고 기업의 ‘연옥(Purgatory)’에 갇히고 있다. 왜 기업들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산 중 하나인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르네 제임스 Renee James는 최고경영자에 부합하는 이력서를 갖고 있다. 그녀는 제품 관리자에서 인텔 사장으로 승진한 인물이다. 다양한 부서에서 경영과 지원 역할을 수행하는 등 무수히 많은 경력을 쌓아왔다. 그녀는 반도체 업계의 독보적인 여성 기업가로, 2014년 포춘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Most Powerful Women · 이하 MPW)’ 리스트에서 2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제임스는 인텔 CEO 폴 오텔리니 Paul Otellini를 대체할 내부 후보자 2명 중 1 명이었다. 그녀와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Brian Krzanich가 함께 회사를 이끌겠다는 매운 드문 제안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크르자니크가 CEO에 선임되었다. 2년이 지난 2015년 7월 제임스는 “외부 기업 CEO 자리를 맡기 위해 내년 1월 회사를 떠난다”고 발표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람들은 제임스(52)가 금방이라도 다른 대기업 CEO에 스카우트 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진퇴양난(Catch-22)’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기업 이사회들은 그녀에게 CEO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주저했다. 제임스는 “나는 매우 큰 기업의 사장이었다. 그 어느 기업보다도 큰 기업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CEO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라고 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지 아는가?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고 토로했다. 올해 초 제임스는 칼라일 그룹 Carlyle Group의 글로벌 텔레콤·미디어·기술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실세 자리에다 급여도 매우 높다. 그녀도 맘에 들어 했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대개 경력의 내리막에 들어선, 더 이상 야심 찬 목표를 원하지 않는 은퇴한 CEO들이 가는 곳이다. 제임스와는 거리가 먼 자리다. 그녀는 활발하고 매우 적극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시티와 오라클 등 주요 기업들의 이사회 멤버도 겸하고 있다. 126명의 여성들이 2000~2015년 포춘의 MPW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물론 이들 가운데 대략 30명은 본인 의지로 은퇴했거나, 65세가 넘어 대기업 CEO가 되기에 나이가 많았을 수도 있다. 4명은 아프거나 세상을 떠났다. 16명은 직급이 더 높은 다른 여성으로 대체됐기 때문에 리스트에서 빠졌고, 현재도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작은 스타트업, 사모펀드, 그리고 비영리단체로 옮기거나 이사회 이사로서 파트타임 근무를 하고 있다. 12명만이 대기업 주요 경영진으로 이직을 했다. 현재 비상장 혹은 상장 기업의 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8명뿐이다. 대기업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고 지금도 왕성하게 일할 연령대에 있음에도, 포춘 리스트에 올랐던 모든 여성들 가운데 13%만이 상장 대기업의 또 다른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 생활의 궁극적 목표인 ‘CEO 되기’에 성공한 사람들 조차도 CEO를 한번 더 하기는 어렵다고 얘기한다. 지난 2004년 이후, 포춘 500대 기업 여성 CEO 50 여명 가운데 2 명-멕 휘트먼 Meg Whitman과 수전 캐머런 Susan Cameron-만이 다른 포춘 500대 기업의 CEO로 자리를 옮겼다. 휘트먼은 이베이에서 휼렛 패커드로 이직을 했다. 캐머런은 그녀가 과거에 일했던 레이널즈 아메리칸 Reynolds American CEO에 선임돼 돌아갔다(세 번째는 캐럴 바츠 Carol Bartz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포춘 1000대 기업에 속한 오토데스크 Autodesk의 CEO를 역임한 후 야후 CEO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다면 포춘 500대 기업들에서 여러 차례 CEO를 역임한 많은 남자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헤드헌팅업체 스펜서 스튜어트 Spencer Stuart의 통계를 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같은 시기에 압박을 받고 회사를 떠난 93명의 남성 CEO 중 5명은 다른 상장사 CEO로 복귀했다. 반면 밀려난 5명의 여성 CEO 중 복귀한 사람은 전무하다. CEO 자리가 매우 국한돼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남녀를 불문하고 CEO 자리를 얻는 게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내부 승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이 CEO로 영입되는 건 로또 당첨과 비슷한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펜서 스튜어트에 따르면, 지난해 신임 CEO의 10%만이 외부 인사였다. 남녀 모두 원래 속했던 회사에서 CEO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다른 곳의 CEO 자리에 오른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자리가 부족하다는 ‘희소성’ 만으론 포춘 500대 기업의 CEO 중 24명, 다시 말해 4.8%만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이 수치는 2년간 큰 변함이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주 조금 상승했다). 이런 기사를 쓴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포춘은 오랫동안 기업 내 여성의 성장을 지지해왔고, 실제로 발전도 있었다. MPW 리스트에 오른 여성들은 모든 측면에서 대단하다. 여성 CEO들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1조 1,000억 달러를 관리한다. 이들은 방위산업에서 IT, 그리고 소비재까지 다양한 방면의 산업을 경영하며, 수 백만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한다. 기업 이사회와 최고 경영진, 공공부문은 물론, 심지어 백악관(자유세계의 최고 책임자인 미국 대통령도 여성이 될 듯하다 (*역주: 이 기사는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에 쓰여졌다))까지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고위 경영진으로 경험을 쌓고 커리어 정점에 있었던 그렇게 많은 여성 스타 경영인들이 CEO에 오르지 못한 건 뭔가 잘못된 일이다. 한창 최고의 업무 능력을 보이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다. 적어도 대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변동성과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는 이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최고 인재들을 잃고 있는 셈이다. 스펜서 스튜어트에서 북미 지역 CEO의 관행과 이사회 관행 연구를 총괄하는 짐 시트린 Jim Citrin도 “커다란 인력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CEO 수가 너무 적어 한 명의 신임 여성 CEO가 추가되면, 전체 통계자료가 크게 바뀌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못된 점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왜 그렇게 많은 여성 CEO들-끊임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해 온 여성들-이 미국 재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답은 ‘유리 절벽(Glass Cliff)’에 있다. 미끄럽고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정상에 오르기까진 수십 년이 걸리지만, 추락하는 데는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2004년 영국 엑세터 대학의 미셸 라이언 Michelle Ryan과 알렉스 하슬람 Alex Haslam 교수가 만든 신조어로, 여성들이 상황이 좋지 않거나 위기에 처한 기업의 CEO 자리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이런 자리를 매우 위험하다고 보는 반면, 여성들은 자신의 패기를 입증할 최선의 방법이 가장 힘든 ‘임무’를 맡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엑세터 대학 사회조직심리학 교수인 라이언은 “여성 CEO들의 임기는 한 마디로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전형적인 최근 사례는 머리사 메이어 Marissa Mayer 야후 CEO의 험난했던 임기다 (앞으로 그녀에 관해 더 많은 내용을 언급할 것이다). ‘유리 절벽’이 기업에만 국한된 건 아닌 것 같다.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 테레사 메이 Theresa May가 영국 총리로 갑작스레 부상한 사실을 주목해보자. 국민 투표 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던 남성 정치인들은 그 혼란스러운 후폭풍을 해결할 기회를 거부했다. 새로운 연구는 이런 이론을 뒷받침한다. 유타 주립대 교수 앨리슨 쿡 Alison Cook과 크리스티 글래스 Christy Glass는 2014년 포춘 500대 기업의 모든 여성 CEO 50명을 조사했다. 그들은 여성 CEO 42%가 위기의 순간 임명 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비해 같은 시기 비슷한 환경에서 선임된 남성 CEO는 22%에 머물렀다. 또한 이들 여성은 적은 권한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CEO에 오른 여성들 가운데 13%만이 이사회 의장으로 지명된 반면, 남성들은 이 비율이 50%나 됐다. 여성 CEO들이 남성들보다 압박을 더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프라이스워터스하우스쿠퍼스(PwC)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3~2013년 여성 CEO의 38%가 자리에서 쫓겨난 반면, 남성들은 그 비율이 27%에 불과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사임한 모든 CEO의 임기를 분석한 스펜서 스튜어트는 취임 당시 그들의 평균 나이는 매우 비슷했지만-여성은 50세, 남성은 52세-평균 재임기간은 남성 9년, 여성 7년으로 여성이 훨씬 더 짧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쿡은 “여성들은 위기 때 승진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압박을 경험하게 된다. 기업 회생이 안되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역주: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따라온다”: 여성들은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해낼 수 없다 같은 식이다. 전 인텔 사장 제임스가 말했듯이, “여성인 당신은 선구자다. 약속의 땅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죽게 된다.”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가장 힘든 일에 종종 자원하게 되는 여성의 상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성공하기 더 쉬운 ‘전권을 가진 CEO’ 자리를 얻게 될 가능성이 줄어드는 건 아닐까? 필자가 지난 25년간 프록터 앤드 갬블 Proctor & Gamble에서 승승장구한 멜 힐리 Mel Healey에게 ‘유리 절벽’을 언급하자,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CEO 자리를 데이비드 테일러 David Taylor에게 빼앗기기 전까지 320억 달러 규모의 북미사업부를 맡았던 그녀는 “내 경력에서 기업 회생이 필요하지 않았던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첫 날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성 임원들이 이런 도전을 받아들여 성공을 하면, ‘위기 전문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이 여성들의 경영 능력이 정상적인 기업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샐리 크로첵 Sallie Krawcheck은 대기업 외에도 다른 곳에서 몇 차례 더 위기 전문가로 활약한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한 명이다. 샌퍼드 번스타인 Sanford Bernstein의 CEO에 오른 후, 그녀는 시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서 처음에는 스미스 바니 Smith Barney를 이끌다가 나중에 모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선임됐다. 해고된 다음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Bank of America에서 메릴 린치 Merrill Lynch 자산관리 사업부를 책임졌다. 크로첵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유리 절벽에 3번 정도 서 있었다. 부실 기업을 회생시키는 전문가로서의 명성 때문에 그런 일만 제안 받았다. 인사담당자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당신들도 같은 제안을 할 거죠?’“ 이런 압박과 더불어 모든 CEO를 더욱 힘들게 하는 ‘주주 행동주의’도 증가하고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캐리 경영대학원(Carey School of Business)의 새로운 연구가 보여주듯, 여성 경영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출간을 위해 심층 검토 중인 이 연구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여성 CEO들은 특정 시점에 주주 행동주의자들과 부딪힐 가능성이 27%다. 반면 남성 CEO들은 그 가능성이 1% 미만이다. (거의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행동주의자들은 여성 CEO가 압력에 굴복하기 더 쉽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쇠락하고 있어 여성이 CEO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을 정조준 하는 것일까? 지난 2년간 행동주의자들이 확실하게 타깃으로 삼았던 기업들은 듀폰(엘런 쿨먼 Ellen Kullman이 2015년 갑작스럽게 사직하기 전까지 경영을 책임졌다)과 몬델리즈(아이린 로즌펠드 Irene Rosenfeld가 이끌었다), 그리고 펩시코(인드라 누이 Indra Nooyi가 CEO다) 등이었다. 여성 CEO가 남성들과 같은 이유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리 절벽’에 직면한 모든 여성 경영자들이 추락한다는 뜻도 아니다. 올해 MPW 1위에 오른 메리 바라 Mary Barra가 매우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그녀가 2014년 1월 CEO에 등극한 며칠 후, 제너럴 모터스는 치명적인 260만 대의 대규모 리콜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바라의 냉철한 리더십과 실수를 인정하려는 태도 덕분에, GM은 안정을 찾으며 기록적인 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외부 CEO의 성공 스토리도 있다. 하스브로 Hasbro와 휼렛 패커드를 거쳐 이베이로 옮긴 멕 휘트먼, 여러 업계에서 능력을 두루 인정 받은 얼타 뷰티 Ulta Beauty의 CEO 메리 딜런 Mary Dillon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맥도널드의 글로벌 최고마케팅책임자와 유에스 셀룰러 U.S. Cellular의 CEO를 거친 딜런은 얼타에서 거의 모든 경쟁 소매업체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일궈냈다. 분명 일부 여성 CEO들은 유리 절벽에서 살아남고 있다. 하지만 유리 절벽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때때로 여성 CEO에겐 이중 잣대가 적용되기도 한다. 물론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언론(포춘도 자유로울 순 없다)은 새로운 인물과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여성 경영인이 특히 젊고 매력적이라면, 은퇴자협회(AARP)의 백인 대머리 회원보다 언론의 주목을 훨씬 더 많이 받을 것이다. 포춘이 지난 2002년 ‘최후의 양심 애널리스트’라는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크로첵은 “우리가 월가와 다른 전략을 구사하지 않았다면 포춘 1면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귀에서 털이 자라는 중년 남성이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긍정적인 관심은 더 용이하게 에너지를 결집하고,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여성들이 과도한 조명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머리사 메이어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포춘이 3년 동안 2차례나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마르지 않는’ 매력의 소지자였다(메이어는 젊고, 최고경영자 시절 출산을 했고, 유명인사처럼 디자이너 옷을 입는다). 하지만 그녀는 야후-오래 전에 존재이유를 상실했다-의 회생이 시도됐던 지난 5년간 경영을 맡았던 5명의 CEO 중 5번째 인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는 약자의 도전 이야기였고, 모든 사람들은 약자를 지지했다. 최소한 그녀가 망칠 때까진 그랬다. 야후가 ‘단돈’ 48억 달러에 팔릴 예정이기 때문에, 메이어는 실패한 경영자라고 주장할 만하다. 그녀의 실패가 전임자들보다 더 낫거나 나쁘지는 않다; 그녀는 전략을 세웠지만 회사나 고객을 하나로 규합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승기와 하락기 모두에서 그녀가 받은 관심은 야후의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너무 과도했다. 메이어가 다른 대기업 CEO로 옮길지 혹은 옮겨야 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녀는 그렇게 되지 않을 듯하다. 2014년 리스트에서 빠진 13명의 여성들을 살펴보자. 그 중 한 명인 아처 대니얼스 미드랜드 Archer Daniels Midland의 팻 워츠 Pat Woertz는 은퇴를 했다. 다른 네 명은 기존 회사에 남아있지만, 다른 여성들이 리스트에 오르면서 순위에서 밀려났다. 40대 혹은 50대인 나머지 여성들 가운데, 모린 시케 Maureen Chiquet 샤넬 전 CEO도 올 1월 회사를 떠났지만 아직까지 별 움직임이 없다. 인텔의 제임스, P&G 아시아 사업부의 전 수장 뎁 헨레타 Deb Henretta, 그리고 전 P&G 최고경영자 멜 힐리 Mel Healey는 사모펀드나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헬스 그룹 UnitedHealth Group의 전 부사장 게일 부드로우 Gail Boudreaux는 일선에서 물러나 ‘경쟁사 이직 금지(Noncompete)’ 조항의 기한이 만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젤 루이스 Gisel Ruiz는 월마트 경영진에서 밀려나 현재는 글로벌 사업부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GlaxoSmithKline 북미사업부 수장이었던 데이드러 코넬리 Deirdre Connelly는 2015년 회사를 떠나, 지금은 메이시 백화점 이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찰스 슈왑 Charles Schwab 전 부회장이자 드러그스토어닷컴 Drugstore.com CEO인 돈 레포어 Dawn Lepore는 “많은 경우 여성들은 ‘잘 나가는’ CEO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 같다. 비록 성공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더라도,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고위직에 오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당신이 현재 속한 기업의 CEO가 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가? 르네 제임스의 경험이 말해주듯, 인텔 같은 유명 기업의 CEO조차 다른 기업의 CEO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시트린은 CEO 선발 과정을 일종의 벤 다이어그램 Venn Diagram (*역주: 논리 관계나 조건식 등을 도식으로 나타내는 방법)으로 설명한다. 성공적인 후보자는 ‘능력, 신뢰도, 그리고 사람을 이끄는 능력(attractability)’이라는 세 개의 원형에 모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CEO 등 임원 자리에 오른 여성들에게 능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력서가 충분히 능력을 입증해준다. 사람을 이끄는 능력-한 임원이 그 자리를 맡도록 설득하는 능력-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뢰도에서 여성들은 불이익을 받는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예전에 CEO를 맡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현재 여성 CEO의 80% 정도가 내부에서 발탁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P&G의 가장 복잡한 일부 사업부를 수십 년간 이끌어왔던 힐리는 회사를 떠난 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CEO 제안 전화는 아니었다. 그녀는 “임원급 자리였다. 대기업 CEO 자리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힐리는 현재 리더십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다. 바츠 역시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이 CEO 자리에 있었을 때만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녀는 “CEO였을 땐 매주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전화를 받는 여성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이 이사회가 책임을 피하는 방식 (*역주: 여성 CEO 영입 노력을 했지만 상대가 거절했다는 식의 변명을 할 수 있다) ”이라고 지적했다. 바츠는 ”서로 다른 대기업에서 CEO를 반복해서 역임한 여성은 나와 휘트먼 2명뿐이다. 그것도 실패와 위험감수를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IT기업들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여성들의 경험을 2000년 당시 GE의 잭 웰치 후임자 후보로 나섰던 3명의 남성들과 대조해보자. 제프 이멀트 Jeff Immelt가 CEO로 선임된 후, 나먼지 로버트 나델리 Robert Nardelli와 제임스 맥너니 James McNerney 2명의 임원은 미국에서 가장 뽑고 싶은 CEO 후보가 됐다. 나델리는 홈디포 Home Depot의 CEO로 빠르게 안착했다(그는 7년 후 쫓겨나자 크라이슬러로 옮겨 회사가 파산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맥너니는 3M의 CEO에 올랐고, 나중에 보잉으로 이직한 후 뛰어난 성과를 냈다. 압박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남성 CEO들도 물론 상황은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성희롱 스캔들(허드는 잘못을 부인했다)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HP CEO 마크 허드 Mark Hurd는 여성이었던 사프라 카츠 Safra Catz와 함께 오라클의 공동 CEO에 올랐다. 압박 하에서 회사를 떠난 여성들 가운데 대기업 CEO에 오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성들이 CEO가 되지 못하는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많은 여성들이 경쟁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압박에 지쳐 결코 실현되지 못할 큰 돈벌이 기회(Brass Ring)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병이나 가족과 관련된 일 등 이해할 만한 상황 때문에 포기를 한다. 지난 2011년 드러그스토어닷컴을 월그린 Walgreens에 매각한 레포어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 판단해 시애틀에 머물기로 했다. 그녀는 “훌륭한 CEO가 되기 위해선 모든 면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남성들은 업무에 미친 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과 능력을 갖추는 방식으로 개인 삶을 설계하는 것 같다. 누구도 그들에게 늙은 부모를 돌보거나, 학습 능력이 뒤처진 자식에 신경을 쓰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레포어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크리스티 쇼 Christi Shaw 노바티스 미국법인 대표가 지난 5월 자매의 암 투병을 돕기 위해 사임했던 것처럼. 당신은 남성 CEO가 아픈 친척을 돕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이야기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보았는가? P&G 아시아를 맡았던 헨레타는 어머니가 암 4기로 고통 받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전직을 요청했다. 그녀는 2014년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회사를 떠났다. CEO가 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게 명확해졌고, 어머니 상태가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CEO 자리를 좇는 대신, 헨레타는 어머니와 마지막 몇 개월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현재 그녀는 SSA & CO라는 컨설팅 회사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금의 일을 즐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괜찮은 CEO 제안이 들어온다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그녀는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업계에서 완벽한 채용 제안이 온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손익(P&L)을 완전히 책임지며 200억 달러 규모의 회사도 맡아 봤다. 좋아했던 일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분명 고려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들은 끊임없는 압박을 견디며 CEO직을 맡고 있다. 가능성 있는 제안이라면 고려하겠다는 힐리는 ”우리 여성들은 CEO가 될 정도로 강인한가?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계속 CEO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가’이다. 남성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검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맥도널드 미국 본사 CEO를 역임한 잰 필드 Jan Fields는 더욱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때때로 여성들은 ‘이런 일은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곤 한다.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길을 간다. 크로첵은 최근 여성을 위한 투자 플랫폼 회사 엘레베스트 Ellevest를 창업했다. 그녀는 “같은 영화를 2번 보고 나면 또 다시 보고 싶지 않게 되는 식의 생각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포기한 건 CEO가 되기 위해 일하고, 큰 사무실에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고 털어놓았다. 사실 오랫동안 일을 하다 보면,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팩 커랜 Pat Curran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983년 월마트에서 애완동물을 판매하는 시간제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간호학교에 입학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 후 2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그녀는 매장 운영을 총괄하는 부사장까지 오르게 됐다. 그녀의 커리어는 줄곧 상승세였고, 2005년 포춘의 MPW 리스트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2009년 45세의 나이에 모든 것을 포기하자 동료 임원들은 깜짝 놀랐다. 커랜은 “내 인생의 2막은 봉사와 나눔으로 채우고 싶었다. 의료 분야에 대한 내 열정을 추구하며 사회 환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간호 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지금은 아칸소 주 로저스 Rogers에 위치한 머시 병원에서 신생아실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커랜은 급여 없이 근무를 한다. 그녀는 “커리어를 쌓으면서 매우 행복했다. 한 순간도 여성이 일하기에 어울리는 곳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지금의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알았다면 더 일찍 시작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커랜은 비주류이자 괴짜다. 대부분 여성 임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사랑하고, 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을 한다. 여성 CEO에 대한 통계자료가 참담하긴 하지만, 희망을 가질 이유도 있다. 지난 호에서 다룬 (MPW 리스트) 프로필을 읽어보기 바란다.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 중 일부는 모든 CEO의 선임이 이뤄지는 이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포춘 500대 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21%는 여성이다. 스펜서 스튜어트에 따르면, 98%의 기업들이 최소한 한 명의 여성 이사를 두고 있다. 이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여성 이사들이 여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더 높기 때문에 꼭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엑세터 대학의 라이언 교수는 “여성 이사들이 여성을 더 뽑는 건 아니다. 남성과 여성 모두 리더십에 대한 똑 같은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보다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독특한 사람을 채용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는 CEO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때 코카콜라의 CEO 후보로 거론됐고, 현재 런던 소재 라이언 캐피털 Lion Capital에서 파트너로 근무하고 있는 메리 미닉 Mary Minnick은 타깃 Target과 하이네켄 Heineken, 화이트웨이브 WhiteWave 같은 유수 기업의 이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어떤 이사회도 논란이 되는 선택을 해서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합의를 통해 전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내부 인사가 아니라면 보통 여성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많은 이사들은 이사회에 여성 한 명을 앉혔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나기에 충분한 건 아니라고 지적한다. 시트린은 가장 이상적인 숫자가 3명이라고 말한다. 스테이플즈 Staples를 포함해 3곳의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헨레타는 이사회 자체의 상대적 권한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여성들이 위원회를 이끌지 않거나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그런 점에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포춘 500대 기업의 주요 임원 선임 및 지배구조 위원회 수장들 가운데 거의 28%는 여성이다. 2005년 14%에서 상승한 수치다. 감사(監査)와 보상위원회 의장의 여성 비율은 각각 18.2%와 12.6%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지위인 ‘의장직’ 숫자는 여전히 우울하다: 포춘 500대 기업의 여성 의장은 현재 3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들을 찾기 위한 모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 구글 임원 수킨더 싱 캐시디 Sukhinder Singh Cassidy가 운영하는 ‘이사회리스트(Boardlist)’와 ‘이사회 여성들(Women in the Boardroom)’ 같은 모임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모임들의 목표는 ‘고려할 만한 여성 임원들이 충분치 않다’는 일반적인 불만에 대처하는 것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였던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여성 프로필로 가득 찬 서류철”을 모으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그들이 이 서류철을 많은 여성 구성원들이 있는 이사회와 공유한다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 임계점이 지금은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약간은 멀어 보인다. ■ MPW 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는 방법 뛰어난 업무능력은 CEO 승진의 충분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야심 찬 여성은 어떻게 CEO감으로 인정 받는 걸까? 몇 가지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한다. ■ 필요 이상으로 인맥을 넓혀라 여성들은 종종 일에 100%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결정에 다른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자수성가한다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함정에 빠지지 말라. 르네 제임스 전 인텔 CEO는 ”당신은 실제로 인맥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인맥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밖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언은 회사 내에서도 적용된다. 이사회, 동료들과도 관계 형성을 해야 한다. 멜 힐리 전 P&G 북미 사업부 사장은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건 회사 내부에 더 많은 아군을 만드는 것이다. 회의실로 걸어 들어가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대신, 먼저 모든 잠재 반대세력을 파악하라. 여성들은 아이디어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도 사내 이사회에서 후원자를 찾는 것만큼이나 외부 인사회의 가치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한다.“ ■ 수평 이동을 두려워하지 말라 커리어가 항상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캐럴 바츠 전 야후 CEO는 ”특히 여성들은 폭넓은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마케팅 분야에 계속 머물기보단 가능한 많은 다른 역할을 수행해봐야 한다. 직위 강등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아무 기회나 올라타지 말라. 만약 그렇게 해야 한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하라. 유리 절벽은 항상 존재하며 위험할 수 있다. 힐리는 ”역할이 대단하고 멋져 보여도 왜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지 이유를 직접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 상대가 저급해도 품위를 지켜라때때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실수를 딛고 재기하기가 더 힘들다. 바츠는 부적절한 속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전방위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티 모바일 T-Mobile의 존 레저 John Legere 같은 CEO들에겐 자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속어들이었다. 더 높은 도덕적 잣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음을 인지하라. 맥도널드 미국 담당 사장을 지낸 후 현재 몬산토 Monsanto와 치코 Chico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젠 펠드는 ”자신이 당당하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비난에 맞서라.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그 싸움에 끼어들면 당신만 더러워질 뿐이다“라고 조언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Jennifer Reingold -
한국선급, 올해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벌여
사회 전국 2016.12.13 15:56:03한국선급(KR·회장 직무대행 김종신)이 연말을 맞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며 온정을 나누고 있다. 한국선급은 지난 12일 한극선급 스마트홀에서 조선·해운 등 해양 관련 전공자로서 해당 대학 총장의 추천으로 선발된 국내외 대학(원)생 32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장학생에는 고려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 부산대학교, 서울대학교, 울산대학교, 인하대학교, 충남대학교, 한국해양대학교 등 국내 8개 대학교에서 17명이 선발됐다. 또 ‘국적을 초월한 미래 해양인력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중국 상해 및 대련해사대학에 재학 중인 해외 현지 학생 15명도 포함됐다. 김종신 회장직무대행은 “조선·해운 경기가 어려운 상황 중에서도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향후 한국선급 장학생이 우리나라의 해사산업 발전과 해양 분야 기술진흥의 주역으로 활약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선급은 조만간 인천해사고등학교와 부산해사고등학교, 명호고등학교에도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국선급은 최근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를 갖고 임직원들이 직접 담근 김장 김치 350여 포기를 부산 명지동 주민센터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 밖에 밥퍼 나눔봉사 등 사회봉사 활동과 다양한 전공을 가진 직원들의 교육기부 등 인재 중시의 경영철학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
행동주의펀드 선보인 라임운용, 사회적기업 잇단 투자 눈길끄네
증권 종목·투자전략 2016.12.12 18:03:55국내에서 첫 행동주의(activist) 헤지펀드를 선보인 라임자산운용이 사회적기업에 잇따라 투자하고 있어 주목된다. 12일 투지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라임자산운용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나무 심는 기업 ‘트리플래닛’과 지역농산물 활용기업 ‘제너럴바이오’, 휠체어 전동장치기업 ‘토도웍스’ 등에 1억~8억원가량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원종준(사진) 라임운용 대표는 “적은 금액이지만 사회적기업을 성장시켜 자본시장을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전문 벤처투자자 등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라임운용이 선보인 행동주의 헤지펀드 ‘라임데모크라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함께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라임운용이 이 펀드를 준비한 것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는 무관하지만 ‘데모크라시’라는 펀드명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라임데모크라시’는 단순 단기수익만을 쫓는 펀드가 아니다. 기업의 일정 지분을 확보한 후 주주 환원정책과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방침이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외환은행 ‘먹튀’ 논란의 ‘론스타’,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반대했던 ‘엘리엇’이 대표적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라임운용은 행동주의펀드가 주주와 기업가치를 모두 높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경영구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펀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적기업 투자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최순실 사태 등으로 국내외 연기금이 국내 기업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 대표는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이슈 등 기업의 책임감을 나타내는 ‘ESG’ 지표에 국내 기관들이 무심한 게 현실”이라며 “행동주의펀드를 통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등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사회적 기업을 성장시키고 추후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투자의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트리플래닛은 이미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검토 중이며 제너럴바이오는 키움증권(039490)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해 코스닥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원 대표는 “라임운용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 투자에 관심을 가진 벤처캐피털·고액자산가 등이 많다”며 “‘좋은 일’ 하는 기업에 자금조달이 용이해질 ‘더 좋은 펀드’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
올 8,000억 영업익 올린 애플, 세금납부 등 사회적 책임은 '…'
산업 IT 2016.12.12 15:52:23애플코리아가 올해 국내에서 3조원대 매출과 8,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나 세금 납부나 회계 투명성, 고용창출 등 사회적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애플코리아의 아이폰 판매량은 11월 말 기준 약 260만대로 연말까지 누적 판매량은 290만대(시장점유율 15%가량)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이통사에 공급하는 아이폰 평균 가격이 출고가보다 10∼15% 낮은 약 8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플코리아는 올해 아이폰 판매로만 2조3,2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여기에 맥북, 아이패드, 아이팟, 애플워치 등의 판매까지 감안하면 전체 매출은 3조933억원에 이른다. 2016회계연도(2015년 10월 초∼2016년 9월 말) 글로벌 영업이익률 27.8%를 대입하면 영업이익은 8,599억인 셈이다. 애플코리아는 2009년께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한 후 실적, 법인세 납부 내역 등을 일절 함구한다. 유한회사라 외부 감사를 받을 의무가 없고 감사보고서 제출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 등은 지난 9월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면서도 세금도 잘 내지 않고 고용과 투자, 고객 서비스에 모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애플코리아는 지난달 20일 아이폰6s 불량 배터리의 무상 교환 프로그램을 한국 웹페이지에서 영문으로만 공지해 빈축을 샀다가 나흘만에 한국어 공지문으로 교체했다. 고용창출에도 인색해 정규직 직원이 200여 명에 불과해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이 40억원에 육박한다. 애플코리아가 최근 대표이사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대표를 지낸 마케팅 전문가인 다니엘 디시코(Daniel DiCicco)를 선임한 것을 계기로 시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
에어부산, ‘한국의 경영대상’ 사회책임경영 부문 최우수상 수상
사회 전국 2016.12.06 10:11:06실용항공사 에어부산이 사회책임경영 성적표에서 ‘최우수’를 획득했다. 에어부산(사장 한태근)은 6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6 ‘한국의 경영대상’ 시상식에서 사회책임경영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하는 ‘한국의 경영대상’은 29년 동안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역량을 기반으로 기업 이해 관계자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대내외적으로 존경받는 이미지를 구축한 기업에 주어지는 상이다. 에어부산은 2009년 고객만족경영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에어부산은 ‘항공’이라는 업의 강점을 살려 꿈을 꿀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꿈이 실현되도록 실질적 도움을 주는 수혜자 중심의 사회공헌(Promoter-Supporter)이라는 비전 아래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에어부산의 대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꿈의 활주로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이 항공사를 직접 경험하고 직군을 체험할 수 있는 ‘드림 메이커스(Dream Makers)‘’어린이 항공사 체험교실‘과 대학생 기내승무원 직무교육 과정인 ’드림 챌린져스(Dream Challengers)’ 등이 있다. 지금까지 4,000명가량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두 차례에 이어 부산 지역 고등학생에게 6,400만 원의 장학금과 부산아동복지시설 생활 아동에게 3,600만 원의 후원금 등 총 1억 원의 장학금과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한태근 사장은 “지역사회와 이해관계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펼친 결과 뜻깊은 상을 받게 됐다”며 “앞으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
신한銀,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대통령 표창 수상
경제·금융 금융가 2016.12.05 16:33:14신한은행은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고 5일 밝혔다.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은 1985년 UN이 정한 세계자원봉사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2006년부터 행정자치부와 한국자원봉사협의회가 공동 주관해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04년 7월 은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신한은행 봉사단’을 발족해 공존(복지), 공감(문화), 공생(환경)이라는 사회 공헌 전략에 따라 활동하고 있다. 신한은행 전 임직원이 자원봉사단원으로 참여하며, 자원봉사활동 누적 참여 인원은 33만여명에 이른다. 특히 신한은행은 신한금융그룹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신한 자원봉사 대축제,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한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활동,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으뜸기업 으뜸인재 매칭 사업’ 등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 12년간 임직원들의 자발적이고 진정성 있는 자원봉사활동의 노력을 인정받게 돼 매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라며 “앞으로도 전 직원이 함께하는 사회공헌을 통해 고객과 은행 그리고 사회의 가치가 함께 커지는 상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
[CEO&Story]"시민운동 해서라도 종로서적 살려냈어야 했는데..."
문화·스포츠 문화 2016.08.15 10:10:15“2002년 당시 시민운동을 해서라도 무너지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말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지난 1907년 ‘예수교서회’라는 이름의 기독교서점으로 시작해 2002년 6월4일 매출부진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종로서적. 국내에서 가장 오랜 서적이었고 ‘서점업계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기도 했던 서점을 살리기 위해 출판업계는 노력했지만 결국 폐업을 지켜봐야 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과 같은 역할을 하며,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창조적인 정신을 키워주는 교육적·문화적 공간이 바로 서점이라고 믿고 있는 김 대표는 누구보다 종로서적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그는 “‘종로서적 없는 종로는 종로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너무 잘못했다. 종로서적을 살려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출판인이지만 파주출판도시·헤이리예술마을·지혜의숲을 기획·건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출판문화운동가이기도 한 그가 최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등 종로서적을 부활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함께 ‘종로서적 재창건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제안하는 등 종로서적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로서적을 살리자”는 그의 발언 이후 사비를 지원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는 등 출판업계 안팎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종로서적 부활이라는 계획이 현실화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김 대표가 그리고 있는 새로운 종로서적의 모습은 선명하다. 그는 “규모는 과거에 비해 작겠지만 앞으로 부활할 종로서적은 저자와의 만남 등 문화적 프로그램이 많은 과거와는 다른 개념의 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
[CEO&스토리] 정성욱 금성백조 회장이 말하는 사명의미는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8.08 16:28:28‘금성백조’라는 회사명은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금성백조는 지난 1970~1980년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금성전자(현 LG전자)’의 백조 세탁기를 모티브로 했다. 정성욱(사진) 금성백조 회장은 1981년 회사를 창립하며 건설 부문에서도 백조 세탁기와 같은 수준의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회사명에 담았다. 그는 “당시 금성전자의 슬로건이 ‘기술의 상징 금성’이었는데 백조 세탁기만큼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품질로도 인정받는 건축물을 제공하고 싶어 금성백조를 사명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이 추구하는 ‘장인정신’은 아파트 브랜드명인 ‘예미지’에서도 드러난다. 예미지는 한자로 ‘기예 예(藝), 아름다울 미(美), 지혜 지(智)’를 의미한다. 예술적 가치와 지적인 기능을 고루 갖춰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주거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토지를 구매할 때부터 100여 가지 항목을 분석해 주택의 20~30년 후를 내다보려고 노력한다”며 “주택은 짧게 쓰고 버리는 재화가 아니기 때문에 꼼꼼한 입지분석과 성실한 시장조사, 수요예측까지 결합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같은 회사명과 아파트 브랜드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 회장은 입지선정부터 설계·시공 과정까지 직접 꼼꼼하게 챙긴다. 정 회장은 “아직도 주말마다 아파트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직접 챙긴다”며 “관상용 석재나 중앙 커뮤니티의 중심이 될 조경식재를 보러 지방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
[CEO&스토리] 정성욱 금성백조 회장..."장인정신 깃든 아파트 위해 …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 소신 지킬 것”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8.08 16:28:21“프로젝트마다 작품을 만든다는 장신정신을 담아 아파트를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성욱(사진) 금성백조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장인정신’이다. 그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다른 소비재와 달리 아파트는 사람이 거주하는 만큼 가치를 담아 지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 1981년 직원 네 명과 함께 시작한 금성백조가 2016년 현재 시공능력평가 60위(시공능력평가액 4,394억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 짓겠다는 정 회장만의 장인정신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 無 수저로 시작한 어린 시절 초등졸업 후 가구공장에 취직 건설업으로 옮기며 독학 매진 35세때 창업하며 새 도전 시작 정 회장은 자신의 유년·청년시절을 ‘무(無)수저’였다고 회고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태어나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밑에서 다른 형제자매들과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인물이 딱 한 명뿐이었던 동네에서 정 회장 역시 초등학교 이후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짚으로 농기구를 만드는 등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덕에 10대 때 가구공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정 회장은 “기술을 잘 배워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만 듣고 눈밖에 나지 않으려 심부름을 열심히 했다”며 “가구 설계와 제작도 배워 밤낮없이 일했다”고 전했다. 당시 경험은 정 회장에게 현재까지도 소중한 재산으로 남아 있다. 사촌누이에게 결혼선물로 만들어준 가구부터 절 같은 목재 건축까지 자유자재로 설계·제작 가능한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도 내부에 들어가는 가구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아 이쪽 부분을 담당하는 팀이 몇 배나 더 힘들어하는 것으로 안다”며 “평생의 직업병이자 자부심이어서 직원들에게 작은 것까지 더 많이 가르쳐주고 싶다”고 밝혔다. 목공 분야에서 성실하고 재능이 있다는 인정을 받았던 청년 정성욱은 가구공장장의 소개로 건설 쪽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건설업과 인연을 맺었다. 건설업계에서도 낮에는 실무를 익히고 밤에는 건설업 관련 공부를 하며 밤낮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본어로 적힌 건축공학과 구조공학 서적을 받아 일본어 공부를 해가며 독학했다. 그는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강해 단 한마디도 놓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건설회사에서 3~4년간 경험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을 실전과 독학으로 모두 알았다고 자부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후 그의 나이 35세 때 금성백조를 만들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년 만에 오간 천당과 지옥 품질만 믿고 분양했지만 ‘참패’ 직접 마이크 들고 아파트 팔기도 영업·마케팅력 강화하며 재도약 회사를 창립한 뒤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성장했지만 5년 만에 큰 위기를 맞았다. 1986년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 지은 금성백조 아파트 100가구의 준공 시점이 다가올 때까지 단 3가구밖에 팔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 품질만 좋으면 분양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판단착오였다. 분양 실패로 직원들과 협력사까지 모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정 회장은 당시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탓이었기 때문에 좌절감이 더욱 컸다”고 표현했다. 이에 따라 사업 성공을 위해 트럭에 홍보전단을 싣고 다니며 직접 마이크를 들고 아파트를 팔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전단지를 돌릴 때마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했을 정도로 모든 직원이 노력해 미분양을 털어내고 회사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정 회장은 “비래동 금성백조 아파트는 품질에 더해 영업과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오답노트’ 같은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큰 위기가 회사를 휩쓸고 지나간 뒤 1988년 대전 중구 중촌동 금성백조 아파트는 앞선 프로젝트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182가구를 분양한 결과 147대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둔 것이다. 프로젝트 매출 총액이 약 57억원에 달했으며 분양을 희망하는 신청금만도 200억원 가까이 들어왔다. 대전에 있는 현금은 금성백조가 다 가져갔다는 소문이 돌 정도의 성공이었다. 그는 “2년 전 비래동 프로젝트의 위기와 비교해보면 지옥과 천당을 오간 셈”이라며 “비래동의 위기가 없었으면 중촌동의 성공도 없었고 지금의 금성백조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기와 성공의 순간을 경험하며 사업은 수십, 수백 가지 요소들이 결합돼 성패가 결정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정 회장은 중장기 전략을 세울 때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아침 새벽4시부터 신문을 8개씩 챙겨 읽는다. 그는 “국내와 교류하는 곳들의 정치·경제·사회를 알아야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며 “밥은 굶어도 신문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실 갖춘 장수기업 목표 외형보다 우량 사업지 공급 우선 임대주택·정비사업으로 다각화 직원 개개인 전문가 되게끔 지원 금성백조의 올해 수주 목표액은 1조원이다. 무리하게 규모를 확대하기보다 우량 사업지를 공급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년간 공급이 없었던 지역이나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곳 위주로 사업용지를 확보하고 임대주택·정비사업 등으로 주택시장을 다각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정 회장이 생각하는 금성백조의 진정한 목표는 숫자로 대변되는 양보다 가치가 담긴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외형적으로 키우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시장 변화와 고객 욕구 등을 만족시키기 힘들어진다”며 “확장보다는 내실을 키우는 것이 진정 큰 성공을 이루는 길”이라고 밝혔다. 외형적 성장에 치우치다 보니 장수기업을 배출하지 못한 국내 현실에도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정 회장은 “일본의 경우 몇백 년 이어진 기업들이 핵심 노하우를 전승하지만 국내는 형식적인 것만 전달될 뿐 핵심은 모두 끊겨버린다”고 아쉬워했다. 직원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정 회장은 “기업을 이끌면서 시간이 갈수록 사람을 뽑고 교육시키는 부분을 많이 고민하게 된다”며 “직원 개개인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지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을 헤쳐가며 현재까지 살아온 인생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실패하고 부딪혀도 그 자체로 값지고 아름다운 때인데 지금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것 같다”며 “사회문화적으로 많이 즐기고 놀고 배웠으면 한다”고 답했다. 또 “나중에 입사해서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스트레스 관리와 개인적 경쟁력, 컨디션을 유지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정성욱 회장은 △1946년 대전 △충남대 경영학 명예박사, 한밭대 명예공학박사 △제15~17대 대전상공회의소 의원 △제18~21대 대전상공회의소 상임의원 △제3~5대 대한주택건설협회 대전충남도회 회장 △제8대 대전광역시개발위원회 회장 △제21~22대 대전상공회의소 부회장 △제8~9대 대한건설협회대전광역시회 회장 △금성백조 대표이사 회장 -
[CEO&스토리] 이동춘 한국성장금융 대표 "기업 살리는 매력에 빠지면 자본시장 떠날 수 없어요"
오피니언 2016.08.01 17:33:07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은 금융투자회사(증권사·자산운용사 등)와 비교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정책금융기관인 KDB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시중은행보다 더 경직돼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정책금융기관 고위 임원 출신이 거친 벤처 업계에 최고경영자(CEO)로 뛰어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회자된다. 이동춘(60·사진)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초대 대표 역시 정책금융기관에서만 35년(한국정책금융공사 경력 포함) 몸담은 ‘정통 정책금융맨’이다. 하지만 그는 산업은행 하면 떠오르는 대기업 구조조정 업무가 아닌 중소·벤처기업 투자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이 때문에 정책금융기관 내부에서도 중소·벤처기업에 특화된 이례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국책은행에서 자회사로 이어지는 ‘낙하산’을 타는 대신 성장사다리펀드의 관리기관인 한국성장금융 출범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이 대표는 “기업을 되살리는 매력에 빠지면 자본시장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과 동시에 산업은행에 입행한 이 대표는 자금부·종합기획부·파리사무소 등의 부서를 거치며 정통 정책금융맨으로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제조업·수출기업의 자금조달 업무에 주력하며 대기업집단을 담당하는 산업은행 기업금융2실장까지 지낸 그의 행보를 바꾼 것은 이명박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당시 새로 설립된 한국정책금융공사에서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담당하는 기업금융부장을 거쳐 상임이사에 오른 이 대표는 “뒤늦게 기업투자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지난 2014년까지 정책금융공사의 부사장, 사장 직무대행 등의 직위를 거치면서 5년 동안 조성한 기업 간접투자펀드는 총 97개로 금액으로 치면 11조7,000억원에 달한다. 중소·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젖줄’로 불리는 성장사다리펀드도 이 대표가 정책금융공사 부사장이던 2013년에 처음 조성됐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에서 모은 정책자금과 민간 투자금을 바탕으로 만든 상위펀드(모펀드)로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자금조달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위펀드(자펀드)를 거느리고 있는 구조다. 성장사다리펀드 조성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이 대표는 이후 투자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직접 출자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이미 성숙된 대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할 때와는 달리 중소·벤처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직접 보게 되면서 모험자본시장을 제대로 맛봤다”고 말했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조성 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펀드 관리를 위해 사무국을 만들었지만 전문인력이 없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에서 10여명의 파견직원을 받아 가까스로 수조원 규모의 자금을 관리했지만 파견직원들이 잠시 거쳐가는 부서라는 인식을 가지며 중장기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웠다. 산은 민영화 불발로 정책금융공사가 다시 국책은행에 흡수되며 의사 결정 과정이 더 추가된 것도 이 대표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한국성장금융은 지난해 하반기 금융위원회가 성장사다리펀드 사무국의 독립법인화를 공식 발표하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 준비 과정을 거쳐 한국성장금융은 6월 임직원 21명이 속한 독립 운용사로 다시 태어났다. 출자금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등 자본시장 관계기관이 댔다. 이 대표는 “독립법인 설립 후에는 자체적으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소·벤처금융 시장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바람직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한국성장금융에 대해 시장은 여전히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기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장사다리펀드가 차기 정부로도 이어져 모험자본 조성 기관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금융’ 바람이 불면서 각종 친환경 사업 육성 사업이 정책금융기관 주도로 추진됐으나 정권이 바뀐 뒤 자취를 감춰버린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창조경제라는 정책 브랜드가 바뀔 가능성은 있지만 중소·벤처기업의 육성 기조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시장의 우려와 달리 성장사다리펀드는 영속성 있게 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장사다리펀드가 중소·벤처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 이 대표는 직원들에 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대신 투자 대상을 발굴하는 프라이빗에퀴티(PE)와 벤처캐피털(VC)은 물론이고 중소·벤처기업 관계자를 직접 만나도록 권하고 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시장의 생태계 조성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라며 “임직원들이 중소·벤처기업의 데스밸리(성장 정체기)를 해결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제시하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현장을 뛰어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이 대표는 창조경제 바람 속에 창업에 나서는 청년 기업가에게 뼈 있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이 대표가 강조하는 창업의 제1원칙은 ‘트레이닝(연습)’이다. 그는 “창업은 도전정신을 가장 큰 무기로 하는 것이지만 정제되지 않은 사업 아이디어로 무작정 나서는 것은 ‘필패’의 지름길”이라며 “공공기관이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창업 관련 프로그램이 많이 열려 있는 만큼 내공을 어느 정도 다진 뒤 뛰어드는 편이 좋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자금력이 부족해도 기존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기술만 갖추면 어려움을 극복하기 쉬운 만큼 창업 전에 ‘필승 카드’ 하나쯤은 갖춰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성장금융의 초대 대표로서 이 대표의 목표는 한국성장금융의 자금지원을 통해 쑥쑥 커나가는 중소·벤처기업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56년 경북 경주 △1975년 경북고 졸업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1979년 KDB산업은행 입행 △2007년 KDB산업은행 기업금융2실장 △2009년 한국정책금융공사 기업금융부장 △2010년 한국정책금융공사 상임이상(금융사업본부장) △2013년 한국정책금융공사 부사장 겸 성장사다리펀드 투자운영자문위원 △2014년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 직무대행 △2016년 1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초대 대표이사 -
[CEO&스토리] 김성준 렌딧 대표, 세계 3대 디자인대회 입상…심사위원으로도 활약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16.07.11 17:17:24“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은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김성준 대표는 디자이너로서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에게 필요한 덕목과 디자이너가 요구하는 자질이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렌딧을 창업하게 된 이유도 국내 금융시장의 금리절벽을 경험한 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서비스를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며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need finding)이 디자인적인 사고의 핵심이고 이런 생각에서 디자인 전공자가 금융계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드닷어워드, IDEA어워드, iF디자인어워드 등 세계 3대 디자인 대회에서 모두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 2009년 사회적 기업 ‘1/2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각종 디자인 대회에 출품하면서 4개의 상을 휩쓸었다. 2009년 레드닷어워드 우수상, 스파크어워드 은상, IDEA어워드 은상, iF디자인어워드 특별상을 받았고 2010년에는 변형이 가능한 슬라이드 휠체어 제품 ‘이즈 슬라이드(ezSlide)’를 출품해 스파크어워드 대상, IDEA어워드 은상을 받았다. 이즈 슬라이드에 대한 아이디어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그는 “병원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환자들을 장시간 관찰했는데 상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며 “이 환자들은 본인 스스로 침대와 휠체어를 오가기를 원하는데 휠체어와 병원 침대의 높이차로 인해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용실 고객용 의자에서 사용하는 유압실린더를 휠체어에 장착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미용사들이 페달을 밟아 고객의 머리 높이를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듯 휠체어 이용자들이 팔의 힘을 이용해 휠체어의 높이를 침대에 맞추고 이동이 가능해지도록 한 것이다. 휠체어 3대를 망가뜨리고 나서야 드디어 온전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김 대표는 “환자들이 휠체어와 침대를 자유롭게 오가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간병인의 피로도도 줄일 수 있다”며 “지금도 남아프리카공화국·캐나다 등 각지에서 이 제품을 만들 수 없느냐는 문의가 계속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에는 스파크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후보작들을 심사하며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출품작들을 보면서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며 “지금은 바빠서 힘들겠지만 언젠가 이러한 디자인 아이디어들을 제품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
[CEO&스토리] 김성준 렌딧 대표 "국내 금융시장서 금리절벽 통감…직접 중금리 대출 뛰어들었죠"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16.07.11 17:17:11생명공학도를 꿈꾸다 산업디자이너가 됐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다 핀테크 창업자로 변신했다. 머지않아 자산운용업에도 진출하려 한다. 지난해 7월 개인 간(P2P) 대출업체 ‘렌딧(Lendit)’을 창업한 김성준(31·사진) 대표가 걸어온 길이다. 서른 남짓한 나이에 창업이 벌써 세 번째다. 생명공학도였던 그가 금융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연도 기막히다. 김 대표의 학창시절 꿈은 생명공학자였다. 당시 동물복제 연구로 국민영웅 대접을 받던 황우석 박사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다. 생명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던 그는 우연히 참석한 강연을 듣고 진로를 완전히 바꿨다. 당시 강연을 진행했던 글로벌 디자인 컨설팅 기업 ‘아이데오(IDEO)’ 직원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렌딧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흔히 ‘디자인’ 하면 제품 제조의 마지막 단계이자 예쁘게 꾸미는 작업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IDEO 직원의 말은 달랐다”며 “IDEO는 디자인이 제조의 첫 단계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봤다”고 말했다. 실제 IDEO에는 디자이너가 전체 인력의 30% 정도이며 심리학자·의사·변호사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다음날 학교 행정사무실로 가서 전과 신청을 하며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게 됐다. 김 대표는 이후 병역대체 산업기능요원으로 NHN에서 게임디자인을 맡았고 삼성전자 디자인멤버십 등을 통해 디자이너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나갔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대학 4학년 시절 그는 또 엉뚱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집에서 우연히 인터넷 동영상을 시청했는데 아프리카 어린이가 소의 소변을 받아먹으며 연명하는 장면이었다”며 “불과 3시간 전 탄산음료 한 캔을 사서 반 정도 마시고 버렸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다. 명칭은 ‘1/2프로젝트’였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연말에 기부를 집중적으로 하는데 기부를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았다”며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때 빈곤층에 기부할 물품까지 함께 구매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령 피자 한 판을 주문할 때 소비자가 피자 두 판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다. 한 판은 본인이 수령하고 나머지 한 판은 빈곤층에게 전달하는 형태다. 일부 기업을 찾아가 1/2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했지만 어느 기업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돌파구를 디자인에서 찾았다.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에 1/2프로젝트를 출품해 유명해지면 참여 기업이 생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1/2프로젝트는 2009년 독일 레드닷어워드 우수상, 미국 스파크어워드 은상 등 네 가지 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다. 이후 국내 한 피자업체 등이 관심을 보여 1/2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 대표는 “수익을 고려하지 않았더니 회사 유지가 어려웠다”며 “나중에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 재개하는 것으로 하고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후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을 더 키우기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창업 수업을 들은 뒤 이번에는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의 꿈을 펼쳤다. 그는 “의류 관련 소매업체들이 재고관리의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점에 착안해 옷을 대량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며 “패션을 선도하는 파워블로거를 통해 옷을 유행시키고 해당 옷을 대량 판매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체 ‘스타일세즈(StyleSays)’는 초기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용자가 100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사업의 성공을 예감한 김 대표는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중퇴하고 사업을 확장했다. 한때 좋은 조건에 스타일세즈를 매입하겠다는 제안도 들어왔지만 회사를 더 키울 자신감이 있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스타일세즈는 이후 심각한 침체를 맞게 된다. 김 대표는 “미국은 워낙 영토가 넓다 보니 배송을 위해 대형 물류창고가 많이 필요했다”며 “1~2일 안에 미국 전역 배송을 보장하는 ‘아마존’과 도저히 상대가 안 됐고 늦은 배송으로 인해 이용객이 줄면서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을 살리기 위해 국내로 돌아와 금융기관에 자금대출을 신청했다. 은행을 방문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 5년간 체류하고 한국에서는 직업이 없다 보니 국내 신용등급이 6등급밖에 되지 않았다”며 “은행 대출을 포기하고 저축은행에 가서 문의했더니 연 대출금리가 22%에 달해 도저히 돈을 빌릴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대출을 포기하고 미국 P2P대출업체 ‘렌딩클럽’의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대출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대출금리가 연 7.8%에 불과했다. 그는 “당시 국내에서는 20%대의 고금리와 5%대의 저금리 사이에 있어야 할 중금리 대출을 거의 찾기 어려웠다”며 “스타일세즈의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차라리 ‘한국판 렌딩클럽’을 창업해 나처럼 중금리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 대표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회사가 ‘렌딧’이다. 회사 이름은 ‘빌려주다(lend)’와 ‘그것(it)’을 결합해 지었다. 김 대표는 “국내 개인신용대출 시장은 미국의 4분의1 수준인 200조원에 달한다”며 “신용정보 수집체계가 상당히 잘 갖춰져 있는데도 중금리 대출업체가 없어 P2P대출업의 사업기회는 분명히 클 것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탠퍼드대 대학원 동기이자 삼성화재에서 위험률 예측과 분석 업무를 맡고 있던 박성용씨, 삼성화재 대출상품개발 업무를 담당했던 김유구씨와 의기투합해 렌딧을 시작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투자사 알토스벤처스가 투자금 15억원을 제공했다. P2P대출업은 일반인은 물론 금융업계에서도 낯선 분야였다. P2P대출업계는 사업 형태를 우리의 전통적인 계와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다수에게서 자금을 모아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가령 100명에게서 10만원씩 투자를 받아 1,000만원의 대출을 신청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형태이다. 투자자들은 8~12%가량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대출자도 제2금융권보다 저렴한 10% 안팎의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윈윈(win-win)’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다수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크라우드펀딩’을 지난해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에 들어간 것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뿐이며 P2P금융업이 속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은 빠졌다. 당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시장규모가 100억원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데다 자칫하다가는 금융규제가 덧씌워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금융당국은 P2P금융업을 대신 대부업법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렌딧 역시 대부업의 테두리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P2P금융업의 성장이 저해되고 대부업권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P2P금융업이 대부업과 성격은 다르지만 과도기 단계에서 금융당국의 불가피한 조치라고 본다”며 “P2P금융산업이 커지면 관련 법령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렌딧은 창업 1년4개월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최근까지 11개의 투자상품을 출시해 누적 대출금액 172억원을 돌파했다. 1개월 이상 연체율은 0.48%로 상당히 낮다. 김 대표는 매월 20%씩 대출금을 늘려 3년 뒤에는 총대출액 4,000억원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 수익을 내는 시점도 이 시기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사업의 성과를 판단하려면 누적 대출액이 4,000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며 “규모가 이 정도 되면 안정적인 수익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렌딧은 수익창출을 위해 올해 조금씩 변화를 가하고 있다. 그동안 대출자에게만 받던 수수료를 앞으로는 투자자에게도 받으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서 기업은 적정한 수익을 내야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배웠다”며 “투자자들에게 적합한 수준의 수수료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고민해 하반기부터 수수료를 받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P2P대출업이 안정화되면 채권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으로 확장도 계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금융을 하나도 모르는 디자이너였는데 요즈음 금융이 너무 재미있다”며 “기존 금융에서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던 것을 기술적으로 진화시키고 싶고 채권운용도 이런 면에서 관심이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김성준 렛딧 대표는 △1985년 안양 △서울과학고, KAIST 산업디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 기계공학 제품디자인 중퇴 △2005년 NHN 인터랙티브 그래픽 디자이너 △2005~2007년 올라웍스 UX디자이너 △2008~2010 삼성전자 디자인멤버십 △2009~2014 1/2프로젝트 운영 △2011년 미국 스타일세즈 창업 △2015년 렌딧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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