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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獨 거장 에셴바흐 지휘·브람스 교향곡 공연·조성진 협연...놓치지 마세요"
문화·스포츠 문화 2016.06.27 17:54:53최흥식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의 클래식 사랑은 유명했다. 지금 서울시향의 보금자리인 세종문화회관이 서울 시민회관이라고 불리던 시절부터 시작된 오래된 취미다. “고등학교 무렵이었나. 유명한 해외 오케스트라가 공연하러 오면 보러 갔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아직 어릴 때니 클래식뿐 아니라 팝 음악도 좋아했었는데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클래식에 빠져들었죠. 어디건 클래식 음악을 들을 곳이 널려 있는 데다 학생 할인도 많으니 자연스레 가까이 두게 됐는데 특히 성당에서 연주되는 교회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지금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하나금융그룹에서 일을 시작한 지난 2010년 무렵부터 참 많이 봤다. 하나금융은 서울시향의 장기 후원자 중 한 곳이다. 최 대표는 “아마 임원들 통틀어서 내 출석률이 가장 높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바깥에서 공연을 볼 때도 서울시향 단원들 참 열심히 하고 잘한다 싶었는데 내부에서 지켜보니 더 프로의식이 투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물론 연주자들 모두 개성이 강해 보통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해프닝(?)도 많이 보기는 하는데 음악 할 때만은 대단한 일체감과 집중도를 보여 주는 점이 아주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이토록 서울시향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최 대표에게 올 하반기 서울시민이 놓쳐서는 안 되는 대표 공연 몇 개만 추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실례였을지도 모르겠다. 최 대표 역시 “놓쳐서 괜찮은 공연이란 없다. 모두 별 다섯 개도 아까운 훌륭한 콘서트들”이라며 단호히 답했지만 거듭해 묻자 “내가 기대하고 있는 공연들”이라는 전제하에 몇 가지 간추려 말했다. 우선 다음 달 7일로 다가온 독일의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의 무대다. 에셴바흐는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급작스러운 사퇴로 공백이 발생했던 올해 서울시향의 첫 정기공연에 긴급 투입, 시향과 짧은 첫 만남을 했다. 당시 에셴바흐는 정 전 감독의 빈자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끔 하는 호연으로 뜨거운 찬사를 이끌어냈다. 최 대표는 “예정대로였다면 이번 공연이 서울시향과 에센바흐와의 첫 만남”이라며 “앞선 무대와 달리 긴 시간 제대로 준비한 공연이니만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브람스의 교향곡들을 들을 수 있는 무대를 언급했다. 8월 24·25일로 예정된 브람스 교향곡 2번과 12월 9일 브람스 교향곡 1번. 원래는 정 전 감독이 직접 지휘하기로 했던 프로그램이지만 각각 이스라엘의 거장 엘리아후 인발과 프랑스 출신의 신성 알렉상드르 블로슈가 대체 지휘하기로 했다. 최 대표 “프로그램이 아주 좋아서 본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향의 연말 대표 공연인 ‘합창’ 또한 놓치면 아쉬운 공연이다. 끝으로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며 소개한 무대는 지난해 쇼팽 콩쿠르 1위에 빛나는 조성진이 협연자로 나서는 7월 15일 정기공연이다. 역시 정 전 감독이 지휘할 계획이었으나 현재 아이슬란드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얀 파스칼 토틀리에가 지휘봉을 잡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등을 들려준다./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
[CEO&Story] 최흥식 서울시향 대표 "불협화음 조율...이젠 시민에 행복주는 오케스트라 만들어야죠"
문화·스포츠 문화 2016.06.27 17:54:44딱 1년 전 이 무렵,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대표직을 수락하기로 했던 최흥식(63·사진) 대표의 마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고 한다. 하나금융을 나오면서부터는 월급이나 명예 같은 것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는 비영리 공익 법인에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는데 마침 얘기가 나와 반갑기까지 했다고 한다. 박현정 전 대표와 서울시향 직원들 간의 갈등이라거나 정명훈 전 예술감독의 횡령 건에 대한 경찰 수사 등 여러 문제가 불거져 나오던 시기였지만 그보다는 서울시향이 가진 장점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잘 화합된 조직이라는 게 세상 어디 있나요(웃음). 어떤 조직을 가도 이런 종류의 갈등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당시 서울시향에는 정명훈이라는 탁월한 지휘자가 있었고 또 훌륭한 음악을 연주하게끔 10년을 다져온 조직이 있고. ‘아, 이들과 함께라면 많은 즐거움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만 했지 나머지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지요.”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 생각이 약간은 달라진 듯했다. “참 많이 다르고, 참 쉽지가 않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최 대표의 모습에서는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이 스쳤다. 그는 “비영리법인의 의사결정 구조라는 것이 예상보다 더 복잡다기화돼 있다는 걸 체감했다”며 “기업체의 경우 ‘이렇게 하자’는 결정만 제대로 한다면 실행하기까지는 문제가 별로 없는데 여기는 수많은 단체·사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더라”고 했다. 앞으로 남은 2년 최 대표의 전략이 조금 더 치열하고 조금 더 단단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짐작되는 발언이었다. ◇쉽지 않았던 1년=최 대표는 반평생 세월을 학계·연구기관·기업체를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아온 경제경영전문가다. 서울시향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구설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이 분야에서 이론과 실전을 완벽하게 다져온 그의 경험치 덕분이다. 그럼에도 지난 1년 아쉬운 지점들을 남기고 말았다. 대표적인 게 정명훈 전 감독의 급작스러운 사퇴다. “정 전 감독은 서울시향의 가장 큰 자산이었고 그를 리더로 데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게 정 전 감독을 만나러 간 일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며 얘기를 나눈 끝에 ‘이분은 음악에 헌신하려는 사람’이라 판단했고 그렇다면 내가 그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시작한 거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 전 감독은 지난해 말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났다. 올해 예정돼 있던 공연까지 모조리 취소하고. 당시의 일에 대해 최 대표는 조심스레 부연했다. “비용 문제가 불거지자 정 전 감독이 ‘그럼 돈 받지 않고 다 기부를 하겠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가져다주는 뉘앙스가 그렇게 적대적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무비용 지휘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본인이 그렇게까지 서울시향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드러낸 이상 우리가 그 마음을 잘 받아줄 수 있도록 모양을 갖춰줬어야 했는데 내가 그걸 못해준 것 같아 애석했죠. 특히 지난해 말 그가 떠나는 과정을 보는 게 참 안타까웠어요. 물론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었지만 지난 10년의 업적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내심 속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17일 서울시의회에서 발의된 재단 폐지 조례안이 그랬다. 독립 법인이 된 후 여러 내홍이 잦아진 서울시향에 강한 질책을 하고 다시금 세종문화회관 산하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다행히 폐지안은 보류된 상태다. 최 대표는 “건설적인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무조건 편입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인 이상 섭섭한 마음이 생겼다”면서도 “잘하고 있었다면 그런 얘기가 안 나왔을 테니 그 지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자체 점검하는 중”이라고 했다. ◇더욱 중요한 앞으로의 시간=지난 1년의 소회를 털어놓으면서도 최 대표가 더욱 강조한 것은 앞으로 서울시향이 가꿔갈 모습이다. 최 대표는 “안타깝고 애석해도 그건 이제 모두 지나간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그걸 위해 준비하는 것이 서울시향이 당면한 과제입니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새로운 지휘자를 찾고 새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우리가, 그리고 제가 할 일이죠.” 그 말처럼 최 대표는 얽히고설킨 서울시향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금까지는 서울시·서울시향·외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비전위원회’를 통해 서울시향의 향후 10년에 관한 비전과 액션 플랜을 만드는 데 몰두했고 앞으로는 하나씩 이행하는 단계만 남았다. 지난 15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이 그 결과물이다. 정 전 감독의 뒤를 이을 후임 인선을 10여명으로 추렸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석객원지휘자제도의 도입을 계획했다. 그는 “핵심은 수석객원지휘자 제도인데 이 시스템은 예전부터 말이 많이 나왔던 ‘포스트 정명훈’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지휘자들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다채로운 음악적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는 데 한계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가 젊고 훌륭한 지휘자들을 초청해 경험을 주고 그들도 수석객원지휘자를 거치며 여러 검증을 받은 후 나중에 상임도 되게끔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박현정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시작된 형사사건 등을 겪으며 심신이 피폐해진 직원들을 다독이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최 대표는 “직원들 간에 경쟁을 하는 것은 좋지만 신뢰관계가 깨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와 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으로 많이 다쳐 있더라. 그 불편함을 단숨에 깨는 게 쉽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조금씩 좋아질 수 있도록 맥주파티도 했고 워크숍도 갔고 정신힐링캠프 같은 것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민의 자랑이 되는 오케스트라를 꿈꾸며=무엇보다 서울시향의 직원과 단원 모두가 열정을 다해 헌신할 수 있을 만한 ‘비전’과 ‘미션’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비영리단체에 모인 사람들은 돈이나 영리보다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열정과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모인 사람들이 최고를 향해가려는 노력을 할 때 빛날 수 있는 조직인 거죠. 일반 기업과 비영리단체의 경영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돈이나 수익이 아니라 헌신할 수 있는 핵심 가치를 형성하고 서로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다듬은 서울시향은 비전은 ‘글로벌 10대 도시 서울에 걸맞은 오케스트라로 도약’하는 것이고 미션은 ‘수준 높은 음악으로 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오케스트라’다. 최 대표는 “질 높은 클래식 음악을 선사해 서울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전과 미션의 달성을 위해 최 대표가 가장 바라는 지점은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의 건립이다. 서울시민들에게 심미안을 전달할 양질의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좀 더 높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지금의 공연횟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정기공연이 연간 20회 남짓인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경우 연간 100회도 한다”며 “단원들의 실력 향상으로 세계에 내놓을 만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은 물론 시민들도 저렴하고 질 높은 공연을 즐길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중 안정적인 예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그가 해내고 싶은 일이다. 수석객원지휘자-부지휘자-예술감독으로 연결되는 안정적 체계를 갖추는 한편 양질의 공연기획을 할 수 있는 내부 인력을 키우고자 한다.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마케팅이나 티케팅, 자금 조달 부분에서도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누가 오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조직이 되면 좋겠다 싶어요. 내가 그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참 보람찰 것 같아요. 임기가 끝난 후에는 서울시향의 시즌 티켓을 사서 서포트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데 서울시향을 더 멋진 오케스트라로 가꿔가는 일은 저에게도 이득인 셈이죠(웃음).”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ukkwon@@sedaily.com He is... △1952년 서울 △경기고, 연세대 경영학 학사·석사 △프랑스 릴대학교, 파리제9대학교 경영학 박사 △재정경제원 표창 △1996년 프랑스 증권거래인협회 최우수논문상 △1987~1992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사 △1992~1999년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997~1998년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1999~2004년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2000년 한국선물학회 회장 △2000~2004년 금융발전심의회 은행분과위원 △2002년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 △2004~2006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2004~2007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2007~2010년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2010년 하나금융연구소 소장 △2012~2014년 하나금융그룹 사장 △2015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 -
[CEO&스토리-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청년고용·ICT융합·바이어 신뢰 구축...신발산업 르네상스 열겁니다"
산업 기업 2016.06.20 18:33:49아픔과 절망 대신 부활과 희망을 얘기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의 시선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지난 2월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한국 신발 산업의 산증인답게 다시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있었다. 문창섭(60·사진) 삼덕통상 회장 얘기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1997년 삼덕통상을 차렸다. 10개 이상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에 등산화와 워킹화를 공급하는 회사로 키워냈다. 올 5월 정부는 한국 신발 산업의 ‘르네상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이달에는 한국 신발 산업을 대표하는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기 위해 삼덕통상을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선정했다. 회사 성장의 비결을 물어봤다. 문 회장은 “많은 사람이 ‘중국산 저가제품에 밀려 한국 신발 산업은 이제 한물갔다’는 얘기를 하지만 저는 이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며 “연구개발(R&D)과 청년고용, 바이어 신뢰 등 3개의 경영원칙을 목숨처럼 지킨다면 신발 산업도 새로운 고부가가치 분야로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덕통상이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에 신발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R&D, 청년고용과 교육, 바이어 신뢰 구축 등 ‘삼발이 경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R&D를 언급할 때 그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문 회장은 “신발 기술과 품질에 대해서만큼은 절대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는다”며 “신발 산업이 옛날의 영광을 재연하고 신발 기업이 혹독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재와 기능을 다양화해 고부가 상품을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삼덕통상은 국내 직원 350여명 가운데 R&D 인력이 100명을 넘는다. 전체 직원의 26%가 제품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1개의 팀이 1개 회사(브랜드)를 전담하는 ‘1사 1팀’ 원칙에 따라 제품을 개발한다. 문 회장은 “R&D 직원들이 모든 브랜드 제품을 개발하면 전문성이 떨어지고 바이어 니즈를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면서 “개별 브랜드마다 맞춤형 R&D팀이 있기 때문에 책임감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삼덕통상은 위치추적, 운동량 측정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신발을 상용화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 회장은 “ICT를 접목시키면 사양산업이라고 평가절하되고 있는 신발 분야가 화려한 백조로 변신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자신했다. 그는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사회적 평판도 있는데 불편하지 않은지 물어봤다. 문 회장은 “운전기사를 둘 여력이 있으면 청년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다”며 “삼덕통상은 물론이고 국내 신발 산업이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청년들을 채용하고 교육시켜서 신발 전문가로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삼덕통상은 청년들이 입사하면 사원아파트(1인 1실)를 제공해 집값 걱정 없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파트가 30채로 9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사원카페 운영과 체육관 마련, 사내 신발대학 정규 학위과정 도입, 일·학습병행제 등을 통해 청년고용과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현장학습훈련(S-OJT) 우수사례로 꼽혀 전국 대상을 받았고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 인증과 학습조 성과경진대회 은상, 부산시 고용 우수기업 인증 등을 잇따라 받았다. 문 회장이 중시하는 ‘청년고용’과 ‘인재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경영자는 청년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보다는 청년 인재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업문화와 환경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청년 인재들이 입사하더라도 그러한 여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려고 한다. 마음속으로 ‘계약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청년 인재를 정규직으로 뽑았다고 하더라도 사원복지·재교육 등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계약직으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회사를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문 회장이 직원교육에 쏟는 열정은 남다르다. 2013년부터 ‘신발 기능장 제도’를 도입해 갓 입사한 직원은 1년간 생산라인 등 현장으로 보낸다. 신입직원은 신발 제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 습득을 위한 과정을 거쳐야 희망부서로 갈 수 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승진에 감점요인이 된다. 그는 “생산라인과 현장을 모르면 신발 전문가가 될 수 없고 임원이 되더라도 생산직원들의 고민과 고통을 알지 못한다”며 “직접 신발을 만들어봐야 업무 속도도 빨라지고 전문가로 급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로 4자성어 의미를 각색)’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다. 지난해의 경우 대졸 신입직원 가운데 40%가 입사 3개월 이내에 국가공인 신발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직원들의 혁신 의지와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사내학점 이수제, 일·학습병행제를 도입해 대학에 가지 못한 직원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대학 학점을 이수할 수 있도록 했고 잔디공원을 조성해 휴식을 취하도록 하고 있다. 부동산투자를 하면 적지 않은 이익을 챙길 수 있지만 여유자금은 직원들의 휴식공간을 위해서 아낌없이 재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문 회장은 “인재가 기업의 알파요, 오메가 아닌가”라며 “젊은 인재들에게 과감하게 투자해 10년, 20년 뒤에 우리 전통산업과 뿌리산업을 굳건하게 지탱하는 인재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지만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R&D, 청년고용에 이어 문 회장의 경영철학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신용’이다. 삼덕통상은 개성공단 입주기업이었다. 제품의 80% 이상을 개성공단에서 임가공 형태로 생산했다. 올 2월 북한 핵실험으로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면서 직격탄을 맞았고 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문 회장은 “우리의 처지가 힘들다고 해서 신발 오더를 낸 바이어들에게 털끝만큼의 피해도 끼쳐서는 안 된다”면서 “납기물량과 기일을 맞추기 위해 20여개 중국 외주업체에 시장에서 형성되는 임가공비 단가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삼덕통상을 믿고 이미 오더를 낸 바이어들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용을 지켜야 한다는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바이어가 장사를 망치면 안 된다”면서 “내가 받은 오더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독일 신발 유통회사인 미앤프렌즈AG가 개성공단 사태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삼덕통상과 대규모 신발 거래를 하고 있는 것도 문 회장이 구축한 두터운 신뢰 때문이다. 문 회장은 “앞으로 3년이 고비가 될 것 같다”며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현재의 위기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동요나 흔들림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땀을 흘리고 있는 임직원과 협력업체들이 있기에 가능하리라고 본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무엇보다 오늘날의 삼덕통상이 있도록 도와준 협력업체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백방으로 뛰고 있다. 베트남에 부지를 마련해 공장을 신축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삼덕통상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온누리상품권 구매, 베트남 불자들에 대한 쌀 기증, 대학생 현장 버스투어 실시, 아프리카 어린이 후원, 저소득층을 위한 신발 기부 등 다양한 형태로 회사이익을 이웃들에게 환원시키고 있다. 지속 가능한 균형발전을 기치로 내건 ‘유엔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로부터 2014년 기업 가입을 승인받은 것은 삼덕통상의 이 같은 CSR 활동이 유엔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문 회장은 “저는 삼덕통상을 설립했을 뿐 고객과 이웃들이 오늘날의 삼덕통상으로 키우고 발전시켜주셨다”며 “CSR 활동을 하면서 ‘하나를 베풀면 곱절 이상의 행복이 찾아온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치고 있다”고 말했다./부산=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
[CEO&스토리-문창섭 삼덕통상 회장] 35년 한우물 판 '신발 장인'..."고유브랜드 '스타필드'로 유럽 공략 힘
산업 기업 2016.06.20 18:33:43문창섭 삼덕통상 회장은 35년 동안 신발 외길만 고집한 ‘신발 장인(匠人)’이다. 대한민국 신발 업계의 큰 형님으로 통한다. 젊은 시절 신발 제조기업에 취직해 엔지니어링과 관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탁월한 추진력과 성실성으로 신발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친 지난 1997년 그는 삼덕통상을 창업하고 등산화와 워킹화 분야에 뛰어들었다. 문 회장은 “당시 노동집약적이었던 신발 산업은 저가 중국산에 밀려 경쟁력이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업체들도 많았다”며 “기술력을 앞세워 고부가 상품으로 승부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통찰력과 혜안은 그대로 적중했고 삼덕통상은 10여개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하며 한국 신발 산업을 대표하는 강소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의 눈은 해외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바이어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고유 브랜드로 해외시장 진출에 한층 속도를 낸다는 전략이다. 삼덕통상은 2011~2015년 평균 10%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문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기술과 품질력으로 ‘스타필드’ 고유 브랜드를 앞세워 독일 등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할 것”이라며 “개성공단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낸다면 3년 후에는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필드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움츠러들고 있는 한국 신발 산업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녹아 있다. 삼덕통상이 가동이 중단된 개성공단에 이어 베트남에 공장을 신축하는 것은 이 같은 글로벌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독일 등 유럽의 경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기능성 신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생체역학을 적용해 관절과 척추에 무리를 주지 않는 신발을 선보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했다. 삼덕통상은 세 명의 대통령이 방문한 작은 역사를 갖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공단 생산라인을 방문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산 본사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부산 공장을 둘러봤다./부산=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문창섭 회장은 △1956년 △고려대 정책대학원 △한국신발산업협회 회장 △부산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금탑산업훈장 수훈 -
[CEO&스토리-차상윤 안젤로고든 한국 대표] "젊은이들이여, 뚝심·융화력·창의성 3박자 갖춰라"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6.13 16:41:38“가장 중요한 것은 뚝심입니다.” 차상윤 안젤로고든 한국 대표는 부동산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뚝심’을 꼽았다. 그는 “주식이나 채권 분야와 비교하면 부동산은 유동성이 없는 자산”이라며 “사기도 어렵고 팔기도 어렵기 때문에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안젤로고든의 경우 자금의 성격상 경쟁 입찰보다는 매도자와의 개별 협상을 통해 투자 대상을 확보하는데 이는 관계로부터 나오는 거래이며 그 관계를 쌓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도 차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동산 인재의 덕목이다. 그는 “부동산 일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고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수합병(M&A)과 같은 기업금융과 달리 부동산은 다양한 분야의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는 점인데 사람들은 같이 일을 했을 때 즐거운 사람들이랑 계속해서 일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창의성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차 대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서울의 다양한 장소를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며 해외 출장 시에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상업시설 등을 자주 방문한다”며 “특정 지역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을 다른 지역에 적용해 부동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히 부동산은 시각적인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술이나 디자인 쪽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공부를 해왔다”고 강조했다./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차상윤 대표는…> △1971년 서울 △시카고대 경제학 학사, 국제 정치외교학 석사 △하버드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메릴린치투자은행 서울지사 부장 △도이치은행 홍콩지사 한국 부동산 총괄(이사) △안젤로고든 아시아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 겸 한국대표이사 -
[CEO&스토리-차상윤 안젤로고든 한국 대표] "오퍼튜너티 투자,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게 중요"
부동산 부동산일반 2016.06.13 16:41:16차상윤(45·사진) ‘안젤로고든’ 한국 대표는 ‘부동산’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이다. 부동산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예, 정말 좋아합니다”라는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하는 차 대표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 희열을 느끼고는 한다. 차 대표는 자신의 일이 매일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일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적으로 30조원이 넘는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는 안젤로고든이 한국에서 추구하는 기대수익률은 최소 20% 이상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가장 익숙한 상업용 부동산인 오피스의 수익률이 5%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네 배 이상 높다. 남들과 똑같이, 이전에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일해서는 달성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다. 그런 측면에서 차 대표는 안젤로고든의 투자에 대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측면이 있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우연에서 운명으로, 부동산과 사랑에 빠진 M&A 전문가 사람들은 늘 곁에 있는 대상이나 존재에 대해서는 소중함을 망각하고는 한다. 그런 점에서 차 대표는 부동산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부동산과 인연을 맺게 된 것 자체가 몇 번의 우연이 겹쳐 운명처럼 다가온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안젤로고든 아시아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 겸 한국 대표이사다. 그는 안젤로고든의 아시아 지역 투자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 출신으로는 글로벌 부동산 투자 회사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하지만 차 대표 본인도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을 때만 하더라도 장래에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 전문가로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1994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메릴린치투자은행 미국 본사에 입사하며 투자은행(IB) 세계에 입문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기업 ‘인수합병(M&A)’이었다. 이후 1996년 싱가포르로 옮겨 기업금융과 관련된 일을 맡았다. 첫 번째 우연은 이때 발생했다. 때마침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곧바로 한국으로 발령이 나 국내 대기업들의 자산 매각 업무를 맡았다. 차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잠깐 동안 여유를 갖고 아시아 시장을 둘러본 후 MBA 과정을 밟을 계획이었는데 뜻밖의 사건이 터지면서 당초 계획과 다르게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그 덕분에 한국의 상황에 대해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치고 2000년에 다시 아시아로 돌아왔다. 그 뒤 도이치은행 홍콩지사에서 한국 벤처 투자를 담당했다. 이때 그의 운명을 바꾼 두 번째 우연이 발생한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해당 부서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차 대표는 “바로 옆에 부동산 부실채권에 투자하는 부서가 있었는데 그쪽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부동산을 처음 접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도이치은행의 자기자본으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업무를 하다가 이후에 기관들의 돈을 모은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하는 체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도이치은행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에 부동산 사업부를 만드는 업무를 총괄했다”고 설명했다. 차 대표 인생의 경로가 기업금융에서 부동산으로 전환되던 순간이었다. ●안젤로고든과의 운명적인 만남 기업금융 전문가였던 차 대표가 부동산을 더욱 사랑하게 된 데는 안젤로고든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06년 안젤로고든이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할 당시 합류했다. 차 대표는 본인 스스로에 대해 “너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 정신없어 보일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안젤로고든이 한국에서 추구하는 투자 전략은 차 대표의 개인적인 성향과도 잘 맞아 보인다. 안젤로고든은 한국에서 최소 20% 이상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오퍼튜너티(Opportunity)’ 성격의 자금이다. 이 같은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힘이 필요하다. 차 대표는 “저희는 안정적인 코어 자산이 아닌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오퍼튜너티 투자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기존에 있는 것들이 왜 잘못됐는지를 생각하고 그 잘못돼 있는 것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다각적인 시각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안젤로고든의 부동산 투자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안젤로고든은 우선 해당 부동산이 그 장소에 어울리는지를 본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 SC제일은행이 잠실 롯데 인근에 소유하고 있던 전산센터를 사들인 다음 매각한 경우다. 당시 차 대표는 그 자산의 활용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잠실 지역의 특성상 전산센터보다는 오피스나 주거시설이 들어설 경우 부동산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안젤로고든은 SC제일은행으로부터 전산센터를 매입해 철거한 뒤 오피스나 주거시설을 세울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에 현대해상이 높은 가격을 제시해 해당 부지를 매각했으며 실제 현대해상은 현재 그 자리를 오피스 빌딩으로 사용하고 있다. 차 대표는 “부동산 투자 시 최우선적으로 보는 것은 가격이지만 그다음으로 해당 부동산이 그 장소에서 가장 최적화된 성격의 자산인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동산의 성격이 위치와 어울린다고 판단되면 다음으로는 용적률 상향이나 재개발 등 그 부동산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실제 과거 GS건설이 사옥으로 사용했던 서울 남대문 인근의 GS역전타워가 그런 경우다. 당시 GS역전타워는 GS건설 이전으로 100% 공실이 예정된 건물.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기관들은 선호하지 않는 투자대상이다. 차 대표는 “당시 GS건설이 광화문에 들어서는 신축 건물인 그랑서울로 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가격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었던데다 물리적으로 빌딩을 개선해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고 투자 배경을 밝혔다. GS역전타워는 현재 75% 정도 입주가 완료된 상태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매각할 예정이다. ●한국인의 생활 수준에 못 미치는 부동산, 향후 가치 높아질 여력 커 안젤로고든이 추구하는 투자 전략은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흔하지 않은 전략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국내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했을 당시 들어온 외국계 투자가들이 오퍼튜너티 성격의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리기는 했지만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당수가 한국을 떠났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코어(Core) 성격의 자산에 집중하고 있으며 최근 새로 들어오는 외국계 투자가들도 주로 코어 자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 대표는 앞으로 당분간은 오퍼튜너티 성격의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젤로고든이 한국에서 오퍼튜너티 성격의 투자를 고수하는 이유는 여전히 국내 부동산 자산의 수준이 한국 경제와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오피스 시장은 많이 개선됐지만 주거나 리테일 부동산은 아직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에 못 미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가의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 중 하나가 압구정동인데 아파트의 외관이나 내부시설이 생활 수준 대비 상당히 떨어진다”며 “향후 주거나 리테일 부동산도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맞게 변해갈 것이며 이에 맞춰 관련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안젤로고든은 그간 주거와 리테일에 투자한 경험도 갖고 있다. 안젤로고든은 잠실 석촌호수 인근에 약 500가구의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을 공급했으며 한남동에서도 270여가구의 주거시설을 분양했다. 또 가장 최근에는 토지비와 개발비 등 총 450억원 정도를 들여 을지로 명동에 위치한 근린상가를 사들였다. 이 자리에 신축 리테일 빌딩을 지을 계획이다. 그는 “1937년에 지어진 이름도 없을 정도로 낡은 빌딩인데다 용적률이 230%밖에 되지 않는다”며 “매도자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 가격도 적당하게 나온데다 용적률을 800% 가까이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주거시설 분양과 중소형 리테일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김범수 카카오 의장 "대한민국 이끌 '100명의 CEO' 키우겠다"
산업 IT 2016.05.26 15:32:12“이제는 뭐가 되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6일 경기 판교에서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스타트업캠퍼스’ 초대 총장에 취임하며 “청년들이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이 ‘업(業)’을 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00인의 CEO 양성’을 목표로 카카오 내 케이벤처그룹과 100% 자회사인 케이브큐브벤처스, 또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 활발히 투자해왔다. 초대 총장을 맡게 된 배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창업가, 스타트업들이) 의미 있는 실험을 하게 도와주고 그 실험이 좋은 성과를 냈을 때 확산시키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김 의장은 “우리 아이들은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제조와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며 “이제는 직업 하나를 갖고 평생을 사는 시대는 끝났고 제2, 3의 직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5년 내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65%는 현재 세상에 없는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세계경제포럼’의 예측을 인용하면서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기존의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교육 방식으로의 변화를 촉구했다. 10년 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아이폰을 사용하고 실리콘벨리에서 모바일 콘텐츠 온라인 게임분야의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것을 목격했던 경험이 카카오 창업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설명했다. 김 의장은 “두 경험을 통해 스마트폰 생태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직관이 생겼고 귀국 후 스마트폰 생태계에 집중한 결과 지금의 ‘카카오’가 나올 수 있었다”며 “경험과 체험이 모여 자신만의 ‘업’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 의장은 지난 2008년 NHN(현 네이버)을 떠나면서 “성공한 선배 기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행은 후배 기업가를 양성하는 것”이라며 “CEO 100인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김 의장은 카카오가 지난 1·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2,425억원, 영업이익 2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 소폭 늘었으나 영업이익이 47% 급감한 것에 대해 기자들에게 “O2O(Online to offline) 사업은 일종의 투자”라며 “실적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경기도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 설립한 스타트업캠퍼스는 스타트업 아이디어 발굴과 사업화, 창업, 성장, 해외진출을 지원한다. 지상 8층 건물 2개 동과 지상 5층 건물 1개 동 등 총 3개 동 5만4,075㎡규모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CEO&스토리]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의 4전5기 "위기 속 교훈이 성장 밑거름 됐죠"
산업 기업 2016.05.02 17:43:36남민우(55·사진)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존테크놀로지의 짐 노로드 대표가 남 회장과 인수합병(M&A)을 논의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노로드 대표는 한달음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남 회장과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 6개월 만에 다산네트웍스는 존테크놀로지를 종속회사로 편입시키면서 우리나라 코스닥 상장사로는 처음으로 나스닥 상장사를 인수하게 됐다. 우리나라 벤처 역사에서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에 남 회장이 다시 한번 큰 발자취를 남기는 순간이었다. 남 회장은 지난 2004년에도 다산네트웍스를 국내 자생기업으로는 최초로 거대 다국적 기업인 지멘스의 계열사로 편입시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남 회장은 2일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다산타워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1991년 창업을 한 뒤 25년째 사업을 하면서 4번의 심각한 위기가 있었지만 그 위기 속에는 항상 교훈이 있었고 성장의 발판이 됐다”면서 “다산네트웍스와 존테크놀로지의 강점과 주력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인수를 계기로 다산네트웍스는 글로벌 통신장비 톱5 업체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M&A 과정에서 남 회장은 특유의 노련함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상대의 요청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협상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다산네트웍스가 존테크놀로지의 지분을 60%를 가져갈 것인지 50%를 가져갈 것인지는 쟁점이었다. 남 회장은 초반부터 협상의 이슈를 선점했다. 기업이 가진 현재 자산 가치만을 가지고 지분 산정을 하자는 단순하고 정교한 논리에 존테크놀로지도 남 회장의 의견을 따르게 됐다. 남 회장이 순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지분을 나누자고 과감하게 협상의 이슈를 선점한 덕분에 존테크놀로지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지분 산정에 포함하려 했지만 남 회장이 제시한 범위 내에서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 회장은 “이런저런 가치를 다 산정해서 협상을 하게 되면 협상이 길어지고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처음부터 현재 자산가치로만 지분을 나누자고 밀어붙였던 게 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M&A의 방식도 새로웠다. 대규모 현금이 없었던 다산네트웍스는 자회사 간 합병과 주식교환방식이라는 카드를 꺼내 현금 없이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하게 된 것. 다산네트웍스는 북미법인인 다산네트웍솔루션즈와 존테크놀로지의 합병목적 자회사인 디에이코퍼레이션을 합병하기로 하고 이 합병된 회사는 존테크놀로지의 종속회사로 편입했다. 그리고 존테크놀로지의 지분 58%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으로 존테크놀로지(자회사)와 새로운 합병회사(손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남 회장은 “나스닥 입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내 벤처기업 대표들이 이 같은 M&A 방식에 주목하고 연락을 해오고 있다”며 “협상할 때 도움을 줬던 자문사를 소개해주고 협상 과정도 설명해 주면서 다른 기업들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인수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게 된 남 회장은 이제 ‘사업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에게도 사업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1991년 코리아레디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수입·판매 기업으로 창업해 6년 만에 IMF 위기가 찾아왔다. 실리콘밸리 소재의 기업에 판매대금을 달러로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환율이 폭등하면서 사실상 부도를 생각해야 했다. 남 회장은 회사 엔지니어들과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상환기한을 연장했고 1년 동안 돈 대신 컨설팅과 개발 용역을 하며 대금을 치렀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도 발견했다. 남 회장은 당시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붐을 목격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통신장비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업은 급성장했고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까지 하게 된다. 성공의 기쁨도 잠시,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다. 동료 벤처 기업인들 대부분이 무너졌다. 남 회장은 “자신의 치부를 인정할 줄 알아야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며 “분식회계로 숨기고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시 2004년, 이번엔 내부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원청 업체들의 횡포로 매출은 늘었지만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 회장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버리기로 했다. 창업한 회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독일 지멘스사에 넘겨주고 2대 주주와 경영자로 활동하면서 믿고 따라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한 것이다. 그때 남 회장은 3년만 경영하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사업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사업은 역시 그의 운명이었다. 2007년 지멘스가 노키아지멘스로 통합되면서 경영권을 다시 가져가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나는 놀 운명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내가 버림받으면 편한데 내가 누굴 버려야 한다는 것에서 스스로 용서가 안 됐고 책임감과 의리 같은 게 생기면서 재인수에 2008년 8월 계약서에 사인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를 엄습해왔다. 이번에는 해외 시장을 직접 공략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이때 일본 소프트뱅크에 납품을 시작했고 대만과 베트남 등 아시아 대형 통신사들과의 거래를 확대했다. 그리고 올해 나스닥 상장사를 인수해 인터넷의 본고장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나서게 됐다. 위기로 다져진 남 회장은 통신장비 업체로는 처음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존테크놀로지는 미국·중동·유럽 지역에서, 다산네트웍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이 둘의 시장을 통합하면 글로벌 점유율을 업계 상위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또 다산네트웍스의 주력 분야였던 캐리어 분야와 존테크놀로지의 강점인 엔터프라이즈 분야의 시너지 확대로 전 세계 800여 고객사에 토털 광통신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접속장비와 모바일 데이터를 유선망으로 연결하는 모바일백홀, 이더넷 스위치 등을 포함하는 엔터프라이즈 제품군과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로 글로벌 톱 5 통신장비 기업으로 성장할 채비를 갖췄다. 남 회장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라는 책을 보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땅히 행동해야 하는 게 진(眞)이고 선(善)이고 미(美)라고 한다”며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이뤄가면서 선배 기업가들이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처럼 제2의 삼성, 제2의 현대차가 되는 것이 다산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성남=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
[CEO&스토리]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 “창업 동기 순수할수록 성공확률 높아…창업 전문대학 설립할것”
산업 기업 2016.05.02 17:43:31창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제2의 창업 붐이 시작됐다지만 그만큼 실패하는 창업자들도 많다. 더욱이 최근에는 벤처 1세대 기업인인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가 검찰에 구속되면서 창업 생태계도 어수선하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은 이 난마를 풀기 위한 쾌도는 기교나 잔재주가 아닌 진정성 있는 창업 마인드라고 조언한다. 남 회장은 “창업 동기가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성공확률이 높아진다”며 “취직이 안 돼서, 돈을 벌기 위해서 창업에 섣불리 뛰어들면 문제의 본질을 보려고 하지 못하고 기교를 부리게 되고 실패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돼야 지독한 위기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남 회장은 “현재 불편한 것들을 해결해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싶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며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한 번의 파도에도 휩쓸리게 된다”고 말했다. 할 말은 하는 남 회장은 정부에 의존하는 창업 생태계에 대한 날 선 목소리도 냈다. 그는 “우리나라는 민간 자본 축적이 안돼 정부의 자금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 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관 주도의 벤처 투자 문화가 정부 의존도를 높여 민간 중심의 건강한 투자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고 특정 투자사에 큰 권한을 주면서 좋은 취지로 시작한 팁스 프로그램 같은 제도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회장은 이어 “이번 더벤처스 사태를 계기로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필터링 조직을 추가하는 등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고 제도 자체를 없애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회장은 지금도 후배 기업인들의 멘토 역할에 충실하고 있지만 은퇴 후에는 본격적인 후배 기업인 양성에 나설 생각이다. 그는 “교양인을 길러내는 게 아니고 전문 기업가를 훈련 시켜 배출시키는 뱁슨칼리지나 싱귤레러티처럼 창업 전문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며 “다양한 교육 체계 속에서 또 다른 경쟁력이 창출될 수 있도록 후학을 양성하는 게 최종적인 인생의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성남=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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