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국제회계기준(IFRS) 선진국으로 꼽혔던 영국·독일이 잇따른 회계 사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여파로 두 나라 모두 회계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회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일 회계업계와 자본시장연구원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최근 회계감사, 기업 지배구조 감독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개혁의 가장 큰 특징은 ARGA라는 규제 기관 신설이다. ARGA는 FTSE350(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기업 중 상위 350개 기업)뿐 아니라 대규모 비상장 기업까지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수정·설명 요구를 할 수 있으며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감사위원회 보고서, 최고경영자(CEO) 보고서도 검토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영국 정부는 FTSE350 기업에 대해 빅4(PwC·KPMG·딜로이트·EY) 감사인과 소규모 감사 법인 간 ‘공유 감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공유 감사는 빅4 중 한 곳이 감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계감사 용역 중 최소 30%를 소규모 감사 법인에 할당하는 것을 말한다.
회계업계에서는 영국 정부가 고육지책을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계 사고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영국 시설 관리 2위 업체였던 카릴리언이 KPMG로부터 감사 의견 적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산하는 사건이 터졌던 게 대표적이다. 빅4의 독과점 체제가 회계 투명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자본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영국 전체 상장사 중 빅4가 감사하는 곳이 전체의 88%에 달했다.
영국의 회계 개혁은 IFRS의 기본 철학에 적지 않은 도전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은 IFRS 종주국으로 통하는 곳이다. 애초에 IFRS의 ‘원칙 중심 회계’가 영미법적 성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학계에서는 영국의 감독 기구·기업 간 ‘협력적 관계’를 IFRS하 감독 체제의 모범 사례로 거론하곤 했다.
독일 정부는 온라인 결제 스타트업 와이어카드의 대규모 분식 회계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12월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 법률안’을 발의했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의 회계 분식 혐의 감독 권한을 강화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외부 감사인을 10년마다 무조건 교체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또한 회계 법인의 고위·중과실에 무한대의 배상 책임을 규정하는 등 강경책을 내놓으면서 업계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우리나라 감독 당국에서는 독일의 회계 개혁 추이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성문법 체제하에서 IFRS를 도입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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