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산업의 업황이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전에 국내 철강업체들이 반덤핑 등 비관세 장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철강 업체들이 경영난에 빠지자 각국이 비관세 장벽을 무기로 중국을 비롯한 한국산 철강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국내 업체들의 주요 시장인 북미뿐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인도 등 신흥국까지 수입규제에 가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무역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규제 시행 및 조사) 건수가 총 173건으로 이중 78건(45%)이 철강제품에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국내 최대 철강 수출 시장인 미국의 규제가 16건으로 전체 20%에 달했다.
철강 수입 관련 규제는 지난해 6월 63건, 지난해 말 74건 등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수요 감소로 전 세계적으로 철강 업황이 악화한 가운데 현지 업체들이 너도나도 반덤핑 제소 등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관세 장벽이 철폐되면서 각국 정부가 갖고 있는 수단은 비관세 장벽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형 철강회사의 한 관계자는 “중국의 저가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각국의 현지 철강업체들이 자국 정부에 반덤핑 등에 대한 제소를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중국을 견제하려다 한국 철강사들까지 제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뿐 아니라 국내 업체들이 수출 다변화를 위해 눈 돌리고 있는 신흥시장까지도 최근 들어 비관세 장벽 높이기에 가세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한국산 철강제품으로 개시된 총 5건의 세이프가드 및 반덤핑 조사는 모두 신흥국이었다. 인도에서 2월 한국산 냉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들어갔으며 베트남과 대만도 각각 아연도금강판과 아연합금평면강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2~3월시작했다. 태국은 2월 H형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사를 개시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지난달 24일 도금강판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도 보호무역 강화 차원에서 중국 및 한국산 철강에 대한 견제를 추가로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의 아르셀로미탈 USA 등 3개사는 한국을 비롯해 오스트리아·벨기에·브라질·중국 등 12개국의 철강후판에 대해 덤핑 수출과 불법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미 무역당국에 제소했다. 무역위원회의 산업피해 예비판정은 다음달 말쯤 발표될 예정이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무역규제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수입규제조치는 안 그래도 어려운 철강회사들의 경영난을 악화시키고 있다. 특히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대형사보다 중소형사들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014년 아주베스틸·동부제철·넥스틸·현대제철·세아제강 등은 미국으로부터 유정용 강관에 대해 9.89 ~ 15.75%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 부과 판정을 내렸다. 그 이후 미국향 강관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세아제강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무려 52.5%나 감소한 779억6, 000만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도 456억4000만원으로 40.4% 감소했다. 중견 강관업체였던 아주베스틸은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강관업계 관계자는 “저유가로 셰일가스 개발 거품이 꺼지면서 유정용 강관 수요가 줄어든데다 반덤핑 관세까지 부과돼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며 “재심 판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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