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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한번 밀리면 끝" 위기감…최첨단 제품 출시 서두르다 毒 될수도

'갤노트7 단종' 사태로 본 기술 전쟁

SNS 등 온라인 입소문 빨라져

성공·실패작 몇달만에 판가름

기업간 기술경쟁 불가피하지만

상명하복 국내 기업 문화로는

퍼스트 무버 자리 잡기 힘들어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이 출시됐을 때 업계는 ‘안드로이드 최강 스마트폰’이 출시됐다고 호평했다. 홍채인식, IP68 등급의 방수,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S펜, 삼성페이, 고화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대용량 배터리까지 상용화가 가능한 모든 기술이 탑재됐기 때문이었다. 기술 수준은 숙적 애플의 아이폰을 앞질렀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두 달여 만에 충전 중 소손(화재) 사태로 조기 단종하며 삼성전자에는 3·4분기에만 2조6,000억원, 업계 추산 향후 누적 손실 3조~4조원이라는 큰 상처를 남겼다.

이번 갤럭시노트7 사태는 제조업 분야 최고 기업들 간의 기술 전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아울러 그 속에서 기업과 연구개발진이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한 달이라도 먼저 최신 기술이 접목된 신제품을 양산해 시장을 선점하고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려는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셈이다.

◇한번 밀리면 끝…치열해지는 기술 전쟁=국내 대형 전자업체 냉장고 연구원인 A씨는 최근 경쟁업체가 출시한 제품을 매장에서 실제로 보고 잔뜩 긴장했다. 디자인이나 각종 부가 기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우수했기 때문이다. A씨는 “벤치마킹할 내용을 메모해 회의 때 이야기했고 이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아이디어를 내야 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제조 업체 간 기술 전쟁의 이면에는 ‘한번 밀리면 끝난다’는 불안감이 깔렸다. 삼성전자나 LG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 등 국내 유수의 제조업체들은 세계 시장에서 1~3위를 다툴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달라진 위치만큼 제품에 있어서도 혁신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위한 아이디어에는 한계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점 역시 기술 전쟁 심화의 이유로 평가된다. 성공작과 실패작이 출시 초기 몇 달 만에 판가름난다.

올해 가전 업계의 기술 전쟁 양상이 대표적이다.

폭염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에어컨으로 진검승부를 펼쳤다. 삼성전자는 무풍에어컨이라는 아이디어 제품으로 출시 넉 달만인 6월 초 판매 10만대를 돌파했고 입소문을 타고 두 달 만에 판매량은 전년 대비 두 배로 올라섰다. LG전자는 각종 최첨단 기술이 반영된 초프리미엄 가전 ‘LG 시그니처’를 통해 재미를 봤다. 기술은 곧장 기록적인 영업이익으로 연결됐다.



반도체는 업계의 기술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 시장은 과거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 등 각종 법칙이 존재했다.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D램 시장에서 나노 미세공정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낸드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는 적층 단수에 따른 격차를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단위의 금액을 투자하고 싶지만 시장을 선점한 업체 때문에 수익을 보장 받기도 힘든 게 문제”라며 “6개월만 기술차가 나도 1조원 이상 손실이 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역시 후발주자인 중국 업체들의 도전에 맞서 전략을 고심하느라 머리가 아프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지난 2003년 이후 14년 동안 한국이 지켜온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1위 자리를 중국에 넘겨줄 상황에 처했다”고 최근 보고서를 냈다. 중국이 10세대 이상 LCD 생산을 위한 투자를 가속화하면서 국내 업체를 앞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친환경·스마트카로 패권이 넘어가고 있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기술 전쟁은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 이미 국내 업체들은 2010년 전후로 수입 디젤차에 시장을 내준 아픈 경험이 있다. 디젤 엔진으로 승용세단을 만들지 못했던 경험은 이제 친환경·자율주행차 시장에서 한발 더 나아간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에 탑재된 반자율주행 기능(HDA)은 글로벌 경쟁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상명하복 문화, 기술전쟁 승리 못해=기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많이 투자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과거에는 선도기업을 따라가는 위치였기에 속도가 최고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선도기업이 된 지금 상황에서는 속도 보다는 방향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자율적인 의사소통 속에서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 속에서 개발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더욱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적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기업 간의 기술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며 “상명하복식 국내 기업 문화로는 점점 더 고차원화돼가는 기술 경쟁에 이기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어젠다 제시나 방향성을 조직에서 만들어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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