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는 35년 인생을 관통한 키워드였다. 어릴 적에는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손에 닿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앎’의 짜릿한 맛을 경험했다. 책만큼이나 많이 찾은 건 만화책이었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는 맛에 끌렸다. 만화책 주인공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업(業)에 헌신하는 ‘마음의 자세’를 익힌 건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을 시작으로 전 세계 온갖 읽을거리를 섭렵했다. 많이 읽다 보니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를 구분하는 안목도 생겼다. 잘 나가는 컨설턴트로 살다가 유학을 다녀온 후 유료콘텐츠 시장에 깃발을 꽂은 것도 어찌 보면 길고 긴 책과의 인연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콘텐츠 시장에 발을 내디딘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명이 생겼다. 디지털 콘텐츠는 돈이 안 된다는 시장의 편견을 깨는 것이다.
전문가를 섭외해 경제·경영·IT·교육 등의 세계적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디지털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오프라인 컨퍼런스를 주최해 이용자와 저자를 연결해주는 ‘디지털 퍼블리싱 플랫폼’을 열었다. 지적 콘텐츠 시장의 한 획을 그은 퍼블리의 창업자 박소령(36·사진) 대표의 ‘책과 삶’의 이야기다.
◇만화가 가르침을 준 ‘업(業)에 대한 태도’
박 대표는 어릴 적부터 유난스러운 ‘활자중독증’ 환자(?)였다. 집 앞에는 2~3종의 신문이 매일 아침 배달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의 손에 들려왔던 주간지를 정독하는 것도 또래 아이들에게선 볼 수 없는 유별난 취미였다. 도립도서관, 시립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던 경기도 과천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학교 다음으로 많이 간 곳이 도서관이었다. 지적 콘텐츠를 만드는 창업자다운 특별한 유년기였다.
그 중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파트 상가의 만화책 대여점에 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반적으로 엄마들은 자녀가 소설이나 수필 등을 읽는 건 권하지만 만화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이가 원하면 만화든, 게임이든 마음껏 하게 했다. 마침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으로 일본 만화책, 가요, 드라마가 쏟아지던 때였다.
일본 만화책에서 그에게 강한 인상을 준 대목은 일을 대하는 태도였다.
“(만화책 속 주인공들은)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에 애착을 가졌고, 스스로 최선을 다해야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삶의 태도가 배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꼭 거창한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당장 바꿀 듯한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면 만족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맞았다는 설명이다.
야구 만화 ‘H2’ 속 장면들을 설명할 때는 유난히 눈빛이 반짝거렸다.
“공 하나를 던질 때도 그때의 마음의 자세를 묘사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야구에서는 던지는 공 하나하나가 중요한데 공 하나로 스트라이크나 볼이 갈리고, 그게 9회가 끝났을 때 승패에 영향을 미쳐요. 야구 장면을 보면서 헌신한다는 말은 쉽게 쓸 수 있어도 헌신에는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일방적 학교 교육을 싫어했던 아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정말 재미가 없어요. 가뜩이나 다양한 재미있는 책에 빠져 있던 저로선 학교 시험만 마지못해 보는 수준이었죠”
학교 공부를 잘 했지만 좋아한 적은 없었다. 좋아하진 않지만 해야 하니까 마지못해 했던 공부였다. 운도 따르고, 머리도 좋아서인지 서울대 경영학과 00학번으로 진학했다. 입시체제를 벗어나 대학생이 된 순간 노트북이 생겼다.
박 대표만큼 노트북을 잘 활용한 경우가 있을까. 그에게는 단순히 강의 필기도구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여러 나라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열린 통로’였다. 박 대표는 “10대 시절에는 신문과 도서관에서 보는 책이 전부였지만 20대에 진입하는 순간 노트북이 생겼다”며 “뉴욕타임스 등 인터넷을 통해 읽을 수 있는 해외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말했다.
20년간 ‘읽은 것’이 차곡차곡 쌓여 그를 전혀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대학생활부터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선배나 동기, 후배들은 늘 박 대표가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했다.
‘너는 요즘 무슨 책을 읽니’, ‘그 책의 어떤 점이 좋았어’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친구들에게 책 선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구절을 함께 적어주는 게 일상 속 작은 행복이었다. 이 책의 어디가 왜 좋은지를 말하고 추천해주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일종의 ‘가치 제안’을 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퍼블리의 씨앗이 됐다.
박 대표는 트위터의 등장을 지금의 그를 만든 주요 환경 중 하나로 꼽았다. 트위터는 기존에 그가 갖고 있던 ‘치우친(?)’ 시각을 ‘교열’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학교도 직장(맥킨지, T-PLUS)도 남부러워할 만한 곳이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보수적 관점에 노출될 때가 많았다.
그는 “그때까지 어찌 보면 치우친 세계에 살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랬던 그에게 놀라움을 준 건 자신이 생각조차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애정을 갖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들의 존재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새로운 학교에 들어선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컨설턴트의 세계’가 채워주지 못한 것
2005년 대학을 졸업한 후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경영학과 졸업생이 갈 수 있는 직업 중 최고로 쳤던 게 바로 컨설턴트였다. 컨설팅 분야에 몸담으면서 압축적으로 동시에 완성도 높게 일을 해내는 법을 터득했다.
박 대표는 주로 소비재 기업들이 신사업에 진출할 때의 전략 컨설팅을 맡았다. 또 사모펀드들이 회사 인수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회사의 경영상태부터 산업 전망, 성장 전략 등을 한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파악해 의사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의견을 내는 일을 맡았다. 다양한 기업의 다양한 고민을 만났다. 어린 나이지만 전문경영인(CEO)의 시각에서 고민하고, 이들이 간과할 수 있는 점을 제시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당시 경험했던 일들이 지금 퍼블리를 이끌어 가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한다.
“컨설팅은 한두 달 정도 기한이 정해져 있고 팀워크에 기반해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냅니다. 퍼블리에서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비슷한 과정을 거치죠. 그때는 클라이언트가 외부에 있는 경영자였다면 지금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저자가 외부에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컨설팅 업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며 적지 않은 성과도 냈지만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의 노동력을 발판으로 누군가 쉽게 돈을 벌게 해주는 일이 만족감을 주지 못한 것이다. 컨설팅은 내 시간을 다른 이의 사업 성과나 이익을 위해 쓰는 일이었다. 박 대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촉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오래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그래서 20대 초반부터 꿈의 학교로 삼았던 ‘하버드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 가방끈 긴 백수에서 창업자가 되기까지
2014년 하버드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왔다. 돌아오니 ‘석사 백수’였다.
대학원 시절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가 혁신 보고서를 발간하고 기존 미디어들이 몸부림을 치며 변화를 도모하던 때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미디어·콘텐츠 분야 혁신의 대열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기존 업계에서 미디어·콘텐츠 분야에 뛰어들 길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웠던 건 아니었다. 그냥 막막하다는 심정이었다.
“사실 당시에 기존 미디어에 입사할 수 있는 경로는 수습기자 외에는 없었어요. 미디어콘텐츠 시장이라는 ‘판’ 안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기존 조직에서는 저 같은 사람을 뽑아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던 거죠.”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시장에서는 유료 콘텐츠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미디어콘텐츠 시장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어떻게 두드려야 할지 감이 안 오는 시간이 계속됐다.
막막하던 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만남이 있었다. 뜻밖에 창업 권유를 들었던 것.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좋아하는 사람이 풀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적임자”라는 이유였다. 바로 1세대 인터넷 기업가인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였다. 현재는 소셜벤처 육성 기업 ‘소풍’ 등을 운영하며 벤처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재웅 창업자가 박 대표의 콘텐츠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안목을 알아본 것이다.
“사업의 성공은 하늘의 뜻이다.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다음 사람은 제로베이스가 아닌 상태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지적 콘텐츠 시장의 개척자로서의 길이 시작됐다. 창업할 운명이었는지 때마침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박 대표는 백수 시절 ‘대화 파트너’였던 전 직장 동료에게 일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다. 뜻밖에 그의 입에서 ‘제가 할게요’라는 말이 나왔다. 현재 퍼블리의 최고콘텐츠책임자(CCO)로 일하고 있는 김안나 부대표다. 김 이사도 컨설팅 업계를 나와 전자책 전문 플랫폼 리디북스에서 일한 후 전자상거래플랫폼 이베이코리아에서 일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박 대표는 “저희는 오래 알아왔던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어떤 성격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예측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와 김 이사는 상대방을 완전하게 채워주는 파트너다.
그때의 경험으로 창업을 원하는 또 다른 그녀들에게 박 대표가 강조하는 건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투자자가 있을 때 하라는 것. 아무리 세상에 없는 아이디어라도 창업 과정에서 금전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없다면 생존하기가 어렵다는 게 현실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하나는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초창기 팀 멤버를 잘 구성할 것. 창업 과정은 생각보다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데 이때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팀이 없다면 ‘버티기’ 자체가 어렵다고 말한다.
2015년 4월 퍼블리를 창업했다. 퍼블리는 자기계발 의지가 있거나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먼저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구매자가 모이면 이를 진행하는 ‘선주문 후제작’ 형태다. 아무리 좋은 주제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길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과연 사람들이 지적 콘텐츠에 지갑을 열까, 박 대표 스스로도 의구심을 품었다.
퍼블리는 기존 미디어에서 시도한 ‘콘텐츠의 유료화’가 먹히지 않은 이유는 콘텐츠 자체가 사람들에게 완제품으로 다가오기보다 일회성,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솔루션은 타깃은 정확하게 잡는 것. 25~45세 독자 가운데 지적 콘텐츠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싶은 의지를 가진 이들을 겨냥했다.
“제가 그 연령층의 가운데였고 저희는 이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자기계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퍼블리의 이용자들은 본인이 일하는 업계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남보다 빨리 알고 싶어 했다. 영어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출장이나 여행으로 해외를 종종 찾는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경험을 한 후 재구성한, 맞춤형 정보를 원했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고 폭넓은 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영어로 읽으면 3시간이 걸릴 것을 1시간으로 줄여주고 직접 해외에의 전시회, 컨퍼런스 등에 다녀오면 몇 백 만원이 들어갈 것을 아끼는 콘셉트”라며 “신뢰성 있는 전문가가 정보와 시각을 전해준다는 게 저희의 가치제안(밸류 프로포지션)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용자 사이에서 퍼블리는 가장 엣지있고 심도 깊은 주제로, 신뢰성 높은 저자를 선정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권의 책과 같은 콘텐츠의 목차를 보면 전체 콘텐츠를 읽는 데 걸리는 시간, 주제마다 소요 시간을 제시한다. 작은 주제의 경우 3∼4분이면 읽을 수 있는 것도 있다. 자신의 업(業)에 대해서는 기꺼이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퍼블리의 주된 소비자가 된다. 지난해 말 스타트업 트래블코드와 협업해 내놓은 ‘퇴사준비생의 도쿄 여행’은 실제로 퇴사 후 사업 기회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박 대표는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책의 형태로 받아보거나 강연이나 컨퍼런스 티켓으로도 구매한다”며 “소비자만 정확하게 파악하면 상품은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퍼블리가 롤 모델로 삼는 회사는 레진코믹스다. 퍼블리보다 먼저 세상에 나온 레진코믹스가 웹툰을 유료로 팔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미쳤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 포털이 웹툰을 점령했다는 인식도 컸다. 하지만 레진코믹스는 서비스를 론칭한 지 3년 만에 매출액 500억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시장에서 ‘누가 이걸 돈 내고 읽어?’라는 반응을 보일 때 정말 나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면 돈을 내고 사는 패턴이라는 걸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도 적용시키고 싶습니다. 유료 콘텐츠는 시장이 형성돼야 더 똑똑한 사람이 많이 들어오고 자본도 들어와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믿어요. 퍼블리가 유료 지적 콘텐츠 시장에서 그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퍼블리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박소령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는 또 다른 그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박소령 대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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