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사모투자전문회사(PEF) 운용사인 칼라일(The Carlyle Group)이 ADT캡스 매각을 앞두고 그로스캐피털 본부를 없애고 관련 투자 사업을 중단했다. 한국 현지법인을 설립한 지 18년 만이다. 지난 2000년 한미은행 이후 10여년간 한국에서 이렇다 할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며 수년째 철수설에 휩싸였던 칼라일이 ADT캡스를 성공적으로 매각을 마무리 지을지도 업계의 관심이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칼라일이 철수 전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보안업체 ADT캡스의 매각을 위해 원매자 물색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프라이빗 방식으로 인수자를 찾던 것과는 달리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 이동통신업체를 보유한 그룹 등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B 업계에서는 칼라일이 부진을 만회하지 못하고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통신과 미디어·군사·금융 분야에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칼라일은 국내 시장에서는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국내 최초의 PEF 은행 인수였던 한미은행을 2000년 아시아 1호 펀드를 활용해 인수한 뒤 5년 만에 순수 차익만도 7,000억원 이상 남기며 매각한 후 이렇다 할 거래를 따내지 못했다. 당시 딜을 주도했던 김병주 아시아 대표와 주역들이 MBK파트너스를 만들어 독립하며 칼라일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IB 업계에서는 칼라일이 인력을 만회하지 못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굵직한 딜이 남아 있는 바이아웃 부문은 당분간 남기고 중소형 기업의 지분을 사들인 후 구조조정 등의 과정을 거쳐 되파는 그로스캐피털 부문부터 철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칼라일 글로벌 본사에서도 소형 딜인 그로스캐피털 부문에서는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칼라일의 한국 내 그로스캐피털 본부에서는 토피아아카데미·에프엔스타즈·약진통상 등 알짜 매물의 인수에는 성공했으나 자금회수(엑시트) 단계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권준일 대표 시절 투자했던 현대HCN은 오히려 350억원 손실을 남긴 채 투자자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그로스캐피털 투자란 성장자본형 투자로 지분투자를 통해 차익실현을 거두는 것을 뜻한다. 약진통상의 경우 매각에 실패해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평가가치 하락으로 인해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을 투자하는 바이아웃 부문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용현 전 대표가 취임한 후 금호렌터카·바이더웨이·GS리테일 인수 등을 추진했으나 2년간 한 건의 딜도 따내지 못했다. 2011년 11월 이상현 대표가 합류한 뒤에도 LIG넥스원의 지분 49%, 교보생명 24%, 로엔엔터테인먼트 52%, 맥도날드의 한국 사업권 인수 등을 추진했으나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다. 2014년 5월 ADT캡스를 1조9,800억원에 인수한 뒤 3년 만에 엑시트에 나섰지만 기대금액이 높아 인수자를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내부 인력의 이탈도 사업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바이아웃 부문 대표를 맡았던 정명훈 전무가 CVC캐피탈파트너스 한국 대표로 떠난 후 1년이 지났지만 후임을 찾지 못했다. 칼라일 내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수익이 작은 그로스캐피털 투자를 철수하고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재편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PEF 업계 관계자는 “약진통상 등 그로스캐피털 부문의 투자에서 엑시트나 IPO 등에 번번이 실패함에 따라 결국 부문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며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도 그로스캐피털 투자가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 대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점차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시장이 이전만큼 인수합병(M&A)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상 아시아 사무소와 합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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