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여파로 어려움에 빠진 중국 법인에 결국 3억달러(한화 약 3,400억원)를 수혈한다. 지난 3월 마련한 긴급자금 3,600억원과 더해 6개월 새 무려 7,000억원을 쥐어짠 셈이다. 2차 긴급자금 마련으로 연말까지는 한숨 돌리게 됐지만 그 이후부터는 또다시 살얼음판 경영을 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지 8월31일자 1면 참조
31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롯데쇼핑(023530) 홍콩 지주사인 롯데쇼핑 홀딩스의 자회사 롯데쇼핑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는 이날 수출입은행을 보증사로 삼아 홍콩 금융기관을 통해 3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 자금은 롯데쇼핑 홀딩스를 거쳐 롯데마트 중국 법인에 대여될 예정이다. 3억달러 가운데 2억1,000만달러(한화 약 2,400억원)는 그간 롯데마트 중국 법인이 현지 금융기관에서 단기 차입한 돈을 상환하는 데 사용될 계획이다. 나머지 9,000만달러(한화 약 1,000억원)는 연말까지 운영자금으로 활용된다. 그간 롯데마트가 중국 현지에서 빌린 차입금은 1년 단위 단기인 데 반해 이번에 홍콩에서 조달한 차입금은 3년 장기인 만큼 그나마 한숨 돌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이번 긴급자금 조달을 통해 기존 단기성 차입금을 장기로 전환하게 되면서 안정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롯데마트가 이렇게 중국 법인에 추가 자금 투입에 나선 것은 3월 이사회를 통해 마련한 3,600억원의 긴급 운영자금을 이달 말로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당시 2,300억원의 증자와 1,580억원의 예금 담보 제공(1,300억원 중국 현지 대출)을 결의해 중국 사업 지원 재원을 마련한 바 있다. 당초 이 자금은 7월이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반품 등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아껴 한 달을 더 버텼다.
하지만 영업정지가 지속되면서 결국 2차 자금 수혈 카드를 꺼낸 것이다. 롯데마트는 현재 중국 내 112개 점포(롯데슈퍼 13곳 포함) 가운데 74곳이 영업정지 상태이고 13곳은 임시휴업 중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분위기에 편승한 중국인들의 불매운동까지 더해지면서 그나마 영업 중인 12개 점포 매출도 80%나 급감했다. 이에 따른 롯데마트의 유형 피해는 현재까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연말까지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 공통 시각이다. 영업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언젠가 영업 재개 시점이 올 것을 대비해 일을 하지 않는 중국 점포 직원들에게도 매달 정상임금의 70~80%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피해 역시 커지고 있는 데다 사드 보복이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에 투입된 3,000억원대 자금도 4개월 정도면 또다시 바닥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이 이어지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추가 자금 투입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롯데의 경우 사드 보복으로 온라인 진출 시기마저 놓쳐 버렸다. 알리바바 등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유통시장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제때 편승하지 못할 경우 영업을 재개한다 해도 완전 회복을 꾀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사업 구조조정이나 철수 등의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중국 사업 철수는 현재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구조조정을 검토 중인데 문제는 사드 보복이 어느 정도 풀려야 구조조정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더 박힐 수 있어서다.
한편 롯데그룹 역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면세점의 경우 유커 감소로 지난 2·4분기 2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사태 이후 14년 만에 적자를 냈다. 백화점·롯데면세점 등 사드 보복으로 인한 롯데그룹 전체의 손실 규모는 연말까지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롯데마트가 이번 자금으로 연말까지는 버틸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며 “대기업이라도 중국 시장에서 고사 직전에 빠진 기업이 많아 정부 차원의 갈등 해소 노력이 정말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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