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위탁한다. 또 기재부의 고유 권한이던 국가 R&D 사업 예산 편성과 부처별 지출한도 설정 작업을 과기부가 함께 맡는다. 연구·과학계는 이번 조치로 R&D 예타 조사 기간이 2년에서 반년으로 대폭 단축되고 당장 성과는 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 예산 지원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11일 정부에 따르면 국무조정실과 기재부, 과기부 등은 이 같은 사항에 합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정과제로 R&D 예타 조사권한을 기재부에서 과기부로 넘기는 작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예산관련 권한이 기재부의 고유 업무이고, 돈을 쓰는 주체인 과기부가 예타 심사까지 맡을 경우 심판이 선수로 뛰면서 정확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에 5개월 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예타조사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 개발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사업 추진 가능성을 미리 검토하는 제도다. 결국 두 부처는 기재부가 과기부에 예타 조사 권한을 ‘위탁’하기로 결론을 냈다. 과기부로서는 실질적인 예타 업무를 가져왔고, 기재부는 완전한 업무 이양이 아닌 위탁으로 끈을 놓지 않는 명분을 챙겼다. 정부 관계자는 “기재부가 과기부의 예타 조사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정도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우원식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발의한 과학기본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대부분 원안 그대로 유지한 채 예타에 대해서만 ‘기재부과 과기부에 예타 조사 권한을 위탁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해 상임위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국회를 통과하면 과기부는 사실상 독자로 R&D 권한을 대부분 넘겨받는다.
올해 우리나라 R&D 예산은 19조4,000억원이다. 정부 예산은 기재부가 유일하게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과기부가 R&D에 한해 예산권을 나눠갖게 된다.
과학계는 R&D 관련 예산 지원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계 관계자는 “그간 기재부가 재정 중심의 관점에서 R&D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다 보니 당장 돈이 안되는 기초과학 분야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려웠고 기간도 오래 걸렸다”며 “앞으로 과학의 눈으로 R&D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우려는 남는다. 과기부가 스스로 자신이 쓸 돈을 결정하는 셈이어서 자칫 감독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충분히 주변 의견이 반영될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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